시각장애인 고친 예수님

시각장애인을 고친 이야기인 요한복음 9장은 41절까지 전체가 완벽한 한 편의 단막극이다. 이 사연은 요한복음을 만든 요한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주목되는 것이 치유 대상자의 요청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먼저 고쳐주신 것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가능한데 굳이 침을 뱉고 진흙을 개어 발라주고 치유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당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죄인 취급했다. 본문의 시각장애인은 게다가 타고났으니 정죄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제자들이 묻는다. ‘누구의 죄 때문이냐’라고. 장애의 배경이 되는 죄는 당사자가 아니라 조상 특히 부모의 몫을 감당하는 예도 있다고 당시에 믿었다. 출애굽기 20장 5절(“(...)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죗값으로, 본인 뿐만 아니라 삼사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을 보면 한 명이 죄지으면 그 영향력 그리고 고통이 후손 전체에게 미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은 대가족 아니었던가. 아비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가정폭력을 행사하면 아내가 타격을 입고 아이는 숨고 집안 전체에 악의 기운이 뻗친다. 근데 이를 문자적으로 읽다 보니 “3~4대자손에까지 벌을 내린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물론 심리학에서 부모의 죄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장애는 본인 또는 가족 죄 인증하던 때 

본문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은 날 때부터 얻은 장애이다. 이 사람에 죄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불행이 찾아온 걸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죄 때문이라는 인과론으로 말할 수 있을까? 천재지변은 말할 것도 없고 부실시공이나 안전관리 미흡 등 사고 원인이 명징하게 규명되는 참사를 두고 ‘너의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피해당하고 고통당한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근데 그걸 하나님께 죄지어서라고 설교하는 목사가 많다. 안 된다. 제자들은 지금 ‘죄 책임’을 거론하며 전통의 지혜를 대변한다. 이건 죄에 대한  심판을 강조하는 신명기 역사서(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의 역사관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오.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이게 정답이다. 인과론을 빼셨다. 이제 더 이상 운명적 불행을 겪는 이에게 ‘네가 죄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여기서 하나 묻자. ‘하나님이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을 수단으로 삼으시는 분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시는 분인가?’ 후자이다. 사랑과 은총을 베푸시는 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노리개처럼 여기는 분일 수 없다. 본인이 당한 고통을 이러한 이해 속에서 소화한다면 다행이다. ‘내가 이 고통을 이기고 나면 분명히 더 나은 자아를 형성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괜찮다. 예수님은 결국 이 사람을 고쳤다. 그 전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 빛이다’라고 하신다. 태초에 하나님이 제일 처음에 빛을 창조하셨다. 빛이야말로 성서 내내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빛이 없으면 못 산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파라오에 내린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이었다. 이는 죽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진흙을 개어 시각장애인 감은 눈에 붙이신 예수님의 행위도 창조 원리를 닮았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진흙을 개어 인간을 만드셨다. 세상의 빛으로 생명을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서사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이다’가 7개 나온다. ○○ 자리에 떡,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 참포도나무가 나온다. 이중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빛이 돼 실제적 고통을 해결해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이 사람을 보낸다. 바로 요한 공동체를 말이다.

요한 공동체의 고백 담긴 요한 9장 

요한 공동체는 요한복음을 쓰면서 자기네 공동체 상황을 이야기한다. 거론된 시각장애인 이야기야말로 자기들의 신앙고백이다. 자신은 원래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이라 어두웠지만 그를 만나고 눈이 뜨였다. 처음엔 그가 예언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이야 말로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각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주님을 믿는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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