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치유 이야기 사이 사건

마가복음서 8:22~26, 10:46~52를 보면 예수님이 시각장애인 고치는 두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8장 부분은 마가복음에서만 나온다. 마가의 서술 기법 중 하나의 주제에 앞뒤로 샌드위치같이 덮은 이야기를 종종 본다. 그런데 8장과 10장은 간격이 꽤 돼 이 기법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운데 이야기는 무엇인가? 두 시각장애인 고친 이야기 사이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앞 부분 시각장애인 치유 부분을 보자. 눈 먼 사람 고치는 이야기이다. 눈에 침 뱉고 손을 얹는다. 이게 벌어진 장소가 어디인가? 벳세다이다. 이는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다.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책망하신다. “너희가 알긴 아는데 제대로 모른다”라고. 그러면서 세 번이나 자신의 수난을 예고한다. 특히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자신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만 꾸짖는다. 

‘성공한 메시아’ 추종한 제자들

마태복음 16장에 같은 장면이 나오지만, 그때는 베드로를 격찬하신 걸로 돼 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안 된다”라며 “이를 말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러면서 죽음을 예표 하자 베드로는 끝내 예수님을 ‘꾸짖는다’. 베드로는 메시아일 예수님이 힘 빠진 모습으로 허망하게 죽는다고 하니 용납이 안 됐다. 이때 쓰인 그리스어가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ω)이다. 이는 회당의 더러운 영, 파도 등 악한 영을 꾸짖을 때 썼던 말이다. 
이 이야기가 앞뒤로 눈 먼 사람을 보이게 한 기적 사이에 삽입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결국 제자의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한다. ‘제자인 너희가 나의 이적과 기사를 보면서 세상적 기득권을 가지려고 하는데 욕망을 다 비우고 십자가 지면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우리에겐 감동적인 메시지이지만 세속의 헤게모니를 추구하던 당시 제자로서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예수님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오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라고 하더니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구할 것”이라고 했다. 마가복음 이 구절에서 ‘현재 목숨을 잃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마가 공동체 사람들이다. 
수난 예고는 9장에도 나온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하지만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했다. 못 묻는 이유는 앞서 8장에서 예수님의 약한 모습을 봤고 이에 항거한 베드로가 혼났기 때문이다. 걱정이 깊어졌을 것이다. 9장 33절을 보자. 그 와중에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두고 다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했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 고난 예언에도 “한자리 달라”

10장 32절에 세 번째 수난 예고가 나온다. 예루살렘 입성을 두고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도 철딱서니 없는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 달라”라면서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달라”라고 했다. 거듭된 수난 예고에, (고난) 동참 호소를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답이 없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설교를 통해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칠을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라고 했다. 
예수님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은 제자는 실패한다. 그리고 예수는 여리고로 가는 길에 바디메오라는 눈 먼 자를 고치신다. ‘행인’ 정도인데 그의 이름이 나왔다. 이는 분명히 초대 교회의 일원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 제자 일원이 된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보라. 예수님 가시는 길은 이제 무슨 길인가? 영광의 길인가, 아니면 고난 즉 십자가의 길인가? 열 두 명의 제자는 도망쳤지만, 바디메오는 예수님 고난 때 따라갔을 것이다. 

끝내 십자가 함께 진 사람은 제자 아닌

마가복음에서 구레네 사람이 시몬이 나온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그 사람은 예수님과 고난을 함께 했다. 그도 나중에 초대교회 교인이 됐을 것이다. 열두 제자도 아니고 배불리 먹인 사람도 아니고 그 고침 받은 사람도 아닌 시몬이 십자가를 진다면 우리에게 경고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과연 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것인가. 그러나 그 십자가를 따라갈 때 부활의 영광도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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