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존스 교회 깜짝 방문·인증샷,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세인트 존스 교회를 방문해 성서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이 같은 행위는 정치적 퍼포먼스로 보인다. (출처=워싱턴포스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강압적 체포과정에서 숨지자 미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일고 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돌출행동으로 논란을 부채질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어 백악관 건너편에 있는 세인트 존스 성공회 교회를 깜짝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교회 앞에서 성서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증샷은 얼핏 뜬금 없어 보이지만 실은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다. 올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린다. 경제 호전 덕에 1월 까지만 해도 재선은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닥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처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전시 지도자'라 칭하며 위기타개에 앞장서는 듯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사망자도 1일(현지시간) 기준 10만 4천 명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 침체 징후가 뚜렷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 상황이 이어지면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결국 트럼프는 백인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이에 백인 지지자들은 경제를 재개하라며 주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여기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 전역이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는 시위 참가 시민들을 ‘폭도’로 지칭하며 강경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가 성서를 들기 전날, 백악관 경호를 맡은 ‘시크릿 서비스’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했다. 트럼프로서는 또 하나의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다시 한 번 지지층 결집이 필요했다. 트럼프가 성서를 든 행위는 이 같은 정치적 전략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부터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긍정의 힘>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조엘 오스틴도 트럼프를 지지했다. 조엘 오스틴은 트럼프를 '좋은 사람', '소통의 달인'이라며 한껏 치켜 올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복음주의자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설교자들 대부분은 주류 복음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펜테코스트파(20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근본주의 분파 - 글쓴이)에 속한 TV 설교자들로 이들은 소위 '번영 복음'을 설파했다. (중략) 트럼프의 경제적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지지자들이 그의 세 번의 결혼과 낙태 옹호 전력, 그리고 참회 거부 등 복음주의자들에겐 전통적으로 흠결로 여겨졌던 것마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끔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016년 6월 미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뉴욕으로 불러 들여 "나는 기독교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나는 살면서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중에서 복음적 기독교인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이곳에 선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7월 복음주의 목회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볼 때, 트럼프가 성서를 들고 인증샷을 찍은 행위는 지지층인 복음주의자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인 셈이다. 

대권을 위해선 복음도 수단일 수 있다  

이 같은 행위가 과연 복음적일까?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벌어지자 미국 흑인들은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빈곤과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무엇보다 흑인이 경찰 등 공권력으로부터 용의자로 몰릴 경우 가혹행위를 당하기 일쑤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은 이 같은 미국 사회의 부조리가 폭발한 결과다. 

성서는 인종차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공권력에 부당하게 탄압받는 이들을 긍휼히 여겼고, 이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다.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인종차별은 반그리스도적이다. 목회자 마틴 루서 킹이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선 이유도 인종차별이 예수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있어서다. 

미국 종교계 주요 인사들은 즉각 트럼프의 '성서 인증샷'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저술가인 조너선 윌슨 하트그로브와 빈민 운동가 윌리엄 바버 목사는 3일자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문에서 “트럼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건 처음이 아니다. 이는 음탕한(obscene)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앞서 미국 성공회 워싱턴 교구장 매리언 버디 주교는 2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을 담은 성스러운 책인 성서와 워싱턴 교구에 속한 교회를 아무런 허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반동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마이클 커리 미국 성공회 의장주교도 “성서와 교회 건물을 당파적인 목적으로 이용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아직 백인 복음주의권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트럼프를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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