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2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진짜 웃기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먹고 살게 해줬더니 은혜를 모르고…” 운운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은혜 어쩌고 하는 것은 이 나라 보수 세력의 종족 특성인가보다. 2016년 홍준표 씨가 경남도지사였을 때 주민들이 도지사 주민소환에 나서자 “배은망덕하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나?”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보라. 배은망덕이라지 않는가? 홍준표 씨는 자기가 도지사로 있는 것이 도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뭐 이런 자가 한 도의 도지사를 맡았단 말인가? 참으로 ‘개 같은 경우’가 아닐 수 없다. 

한일 무역분쟁이 시작된 지 10개월이 지났다. 예상했던 대로 이 분쟁은 일본이 자기 발등을 찍는 모양새로 진행 중이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불화수소 등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스텔라케미화의 작년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18%나 줄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그 이유로 “한국에 수출이 잘 안 돼서”를 꼽았다. 

역시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모리타화학공업도 수출규제 이전과 비교해 판매량이 30% 정도 줄어들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번 뺏긴 것은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푸념했다. 

“나 기분 나빠서 우리 제품 안 팔아!”라고 외칠 때는 좋았겠지만, 이런 무역규제는 애초부터 될 일이 아니었다. 너희들이 안 팔면 우리는 딴 데서 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좀 불편하고 시간도 걸린다. 하지만 상대가 물건 안 팔겠다는데 굳이 거기 집착할 이유도 없다. 한국 기업들은 당연히 다른 수입처를 찾아나갈 것이고, 지금 그렇게 하는 중이다. 아베 정권은 번지수를 완전히 잘 못 찾았다. 

일본의 몰락과 ‘온’ 문화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일본 국민들은 이런 멍청한 정부를 제대로 응징하지 않을까? 중세부터 각종 민란을 경험한 우리와 달리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의 왕통은 영원히 같은 혈통이 계승한다는 뜻)의 전통을 가진 일본은 지도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복종적이었다.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에 관해 가장 뛰어난 연구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책 <국화와 칼>을 인용해보자.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에는 ‘온(恩)’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온을 입은 자는 반드시 그 온을 갚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은혜를 잘 갚자” 정도의 말인데,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온은 은혜나 ‘마음의 빚’과 다를 뿐 아니라 충성심(loyalty)이나 의무감(obligation)과도 차이가 있다.  

일본인에게 온은 반드시 윗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베푸는 호의는 온이 아니다. 아니, 일본인들은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입으면 그것을 되레 불쾌하게 생각한다. 베네딕트의 설명이다. 

온의 여러 용법을 모두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윗사람이 아니거나, 적어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게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를 베푼 사람을 온진(恩人)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감염병 사태를 맞아 우리가 아무리 인도적인 마음으로 일본을 돕는다 해도 그들은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전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모를까, 아랫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그들은 불쾌한 열등감을 느낄 뿐이다. 
둘째, 윗사람이 온을 베풀면 아랫사람은 그것을 갚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온이란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지배자들은 이런 감정을 철저하게 통치에 이용했다. 베네딕트는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정서를 일본 왕에게 집중시켜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목숨을 걸고 일본 왕의 온에 보답해야 했다. 가미카제(神風)로 불리는 자살 특공대가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왕이 베푼 온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은혜를 모른다고?

그래서 베네딕트는 “일본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어간다고 느낄 때, 언제나 그것을 한 사람이 내려준 은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모든 역사 시대에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한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기가 안락하게 살아있는 이유가 최고 윗사람의 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노동자들은 회사 경영진의 비리에 매우 관대하다. 경영진이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우리에게 온을 베푸신 분인데 그 정도는…’ 하고 넘어간다.  

한일 무역분쟁 같은 황당한 짓을 했는데도 아베 정권이 살아남는 이유도, 패전 이후 자민당이 늘 득세한 이유도, 일본 민중들이 투쟁하지 않는 이유도, 일본에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이유도 모두 이 이론으로 설명이 된다. 그들은 최고 지도자가 베푼 온을 갚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최고 지도자에게 결코 대들 수 없다.
일본은 그렇게 살다가 태평양에 빠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자. 문제는 이 황당한 문화가 한국 기업에도 깊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민중들이야 투쟁을 일상생활로 여겼지만 기업들은 다르다. 한국 재벌들은 형성 초기부터 일본의 이상한 기업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은 걸핏하면 “너희들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라며 똥폼을 잡는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다) 꼭 하는 말이 “먹고 살게 해줬더니 은혜를 모른다”는 것이다. 

진짜 웃기는 이야기 아닌가? 재벌 너희들이 자선사업 하려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줬냐? 은혜 베풀려고 사업을 했냐고?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자선사업이나 좀 하고 그런 소리를 하면 말도 안 한다. 자선사업은커녕 횡령에 배임에 탈세에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은혜를 운운하고 있으니 이게 웃긴가, 안 웃긴가?
한국 기업들이 이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일본 꼴이 날 수밖에 없다. 리더가 엉망진창인데 아무도 조언을 안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리더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리더가 비리를 저질러도, 탈세를 해도, 횡령을 해도 눈을 감는다. 그 기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있겠나?

리더가 잘못하면 저항해야 한다.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이러면서 쳐다보고만 있으면 그 조직은 생기를 잃고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이것이 바로 수십 년 이어진 일본의 경제 침체와 국가 위상 하락의 원인이고, 왕처럼 군림하는 한국 기업 지배자들에게 남기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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