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사업장서 반복되는 산재사망…“실제 권한 있는 원청 책임자 처벌 필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법안설명회에서 피해자 동료와 가족들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법안설명회에서 피해자 동료와 가족들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되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2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반복되는 죽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를 주제로 법안설명회가 개최했다. 운동본부는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통해 법 제정에 나설 계획이다.

 

"원청업체 최고 책임자 처벌하라!"

한국의 산재사망의 특징은 추락, 끼임 등 재래형 사망과 동일 사업장의 반복 사고 비중이 높다.

특히 하청 비정규 노동자의 사망 비율이 전체 산재사망의 45%에 달한다. 건설업에서는 하청 노동자의 사망비중이 90%를 차지한다. 매번 산업재해나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의 대책이 쏟아지고, 국회는 법 개정을 약속하지만 기업이나 원청은 책임을 지지 않고 현장 관리자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이 법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한다거나 최소한의 안전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만이 감내하고 있다.

운동본부가 준비 중인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법률안’에서는 중대재해의 정의를 명시하고 안전 조치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만든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담긴 것이 핵심이다.

또 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다단계 하청 노동자 등 특수고용, 다단계 하청을 비롯한 종사자 전체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사회적 참사로 인한 시민들의 죽음에도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에 벌금을 가중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명시했다.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게 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노동자나 시민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법인에게도 1억원 이상 2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법원은 법인에게 ▲영업허가 취소 ▲5년 이내의 영업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한 영업정지 ▲5년 이하의 이행관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계약에서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입찰자격 제한 등을 처벌할 수 있다. 안전관리나 보건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공무원도 처벌받는다. 관련된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이날 운동본부가 발표한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산업재해 판결 분석 결과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범죄 재범률은 일반 형법 범죄(43%)와 비교해 2배 이상 높은 97%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발생건수도 2007년 1,752건에서 10년 뒤인 2017년에는 약 3.5배 증가한 6,439건으로 나타났다. 또 2017년 처리된 총 13,187건 중에서 구속된 건수는 1건(0.007%)에 불과했다.

공소 제기된 사건도 정식 기소된 경우는 613건(4.64%)에 불과했고, 약식명령 청구된 건수는 1만934건(82.91%)에 달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의 직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말단 관리자만 처벌된 것으로 드러났다. 운전기사, 근로자, 사원, 안전담당자, 하수급 책임자 순이었다.

최명선 상황실장(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민주노총 노안실장)은 “지금도 같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처벌도 말단 관리자에게 그치고 있다”며 “최고 책임자나 기업 법인에게 실제 처벌이 이뤄져야 이런 반복된 사고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처벌강화보다 예방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산안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이 감소되지 않는 원인을 살펴보면 법제도 개선이 실질적인 산재사망 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상황실장은 “처벌이 담보되지 않는 대책이라는 것은 사실 유령대책이나 마찬가지”라며 “개정을 거듭한 산안법을 지키는 사업장이 오히려 기업경쟁력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법을 준수하도록 획기적 개선이 전제돼야 법제도 개선이나 감독 강화 같은 기존 대책의 실효성도 담보될 수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 일부 전문가와 단체들이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근거로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한국과 사회적 맥락도 다를뿐더러 법 제정 이후 산재사망 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이 대폭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 산재사망 자체가 우리나라에 비해 11배나 적고, 국제적으로도 산재사망 만인률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최 상황실장은 “산안법에 원청 책임 부여가 법제화됐지만, 원청 기업의 최고책임자와 기업법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라며 “이런 점을 해결해서 하청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재발방지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고 했다.

 

“실제 권한 있는 기업 책임자 처벌해야”

산업재해 피해자와 동료,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도 한 목소리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박철희 씨는 지난 2017년 노동절에 벌어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다. 박 씨는 이 사고로 인해 함께 일하던 동생을 영영 떠나보내야만 했다.

당시 크레인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박 씨는 “노동자가 가장 존중받아야 할 그날이 저희에게 가장 불행한 날이 됐다”며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은 동생을 비롯한 6명 노동자의 삶을 영영 빼앗아 갔다”고 했다.

하지만 사고를 책임지는 사람은 적었다. 박 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여전히 고통 받고 있지만, 1심 재판부는 별 권한이 없는 노동자와 현장 반장만 처벌했다. 그나마 항소심을 통해 조선소 소장과 하청업체 대표가 유죄를 받았다”며 “하지만 정작 삼성중공업 대표는 아예 기소도 되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질 수 있게 만들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용균 씨의 비정규직 동료인 최성균 본부장(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본부장은 “저는 여전히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다. 무엇보다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용균이를 죽게 만든 사람 그 누구도 아직 처벌받지 않았고, 재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8년간 열두 번 있었던 산재사고에서 배웠다면, 28번의 안전을 위한 시정요구가 무시되지 않았다면, 용균이는 지금도 저희와 함께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최 본부장은 “용균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던 사람들은 사고 전에도 사고 후에도 너무나 안전하다. 실제 권한이 있는 원청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노동자가 죽으면 원청 책임자도 처벌된다는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집행위원장(4ㆍ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모든 재난참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이 희생되고 남은 가족들은 피해자, 유가족으로 평생을 살아내야만 한다는 점에서 비극”이라고 성토했다. 

아울러 “대부분 사회적 재난 참사에는 기업과 정부의 잘못이 공존한다"며 "그래서 가족협의회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책임자를 가려내 엄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지지한다"고 힘을 실었다.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 된 바 있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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