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계의 낙태 반대 주장, ‘성차별 온상’ 자신의 들보부터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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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임박했습니다. 현행법은 낙태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낙태를 시술한 의료인 등 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이미 실효성을 상실했습니다. 최근 3년간 낙태죄로 정식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한 해 평균 15건에 불과하고, 절대다수가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 형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낙태는 공공연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1953년 제정된 이래 66년간 유지돼왔던 낙태죄는, 2012년 합헌 결정으로 연명하고 있지만, 시대가 바뀌어 폐지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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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수 개신교계는 연일 대대적인 '낙태죄 존속'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승희 박종철 김성복, 한교총)은 지난 3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의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는 논평을 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죄의 완전폐지를 결정하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앞서 한국교회언론회(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는 지난 3월 3일 낙태죄 폐지 반대 논평에서, "낙태는 생명?주권자에?대한?도전이며,?명백한?살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언론회는 한 발 더 나가, 만일?낙태를?죄로?취급하지?않는다면,?"생명?경시?현상?가중에 더해 많은 생명이 합법적으로 죽어갈 것"이란 우려를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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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수 교계는 낙태를 통해 고통받는 주체가 여성이고, 이 여성이 육체만 아니라 심리적 고통마저 도맡아 해야 하는 현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낙태죄를 없애면 성도덕의 문란이 가중된다는 남성 중심적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임신중절의 고려 사유는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가 46.9%로 가장 높았습니다. 또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이 44%,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42%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해당 결과에서도 나타났듯, 출산과 육아에는 노동, 보육, 교육, 주거 등 모든 문제가 중첩돼 있습니다. 낡은 법에 묶일 것이 아니라 임신중절 사유들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 구축이 더 시급해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수 교계는 사회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단선적 주장만을 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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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낙태의 법적 허용과 낙태율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핀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낙태 합법화 국가에서 낙태율이 낮게 나타나고, 낙태를 처벌하는 루마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높은 낙태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성차별이 심한 국가일수록 낙태율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 교계는 목숨 걸고 생명 경시 현상을 막겠다는 선동에 앞서, 남성 목사 등의 성폭력에는 관대하고, (예수교장로회 합동 등 일부 교단의 사례로서) 여성 목사 금지 원칙을 고수하며, 교단 내 ‘성범죄처벌법’ 제정이 불발되는 등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인 교회 관행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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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반대라는 일방적이고 완고한 주장은 불통의 이미지를 강화할 뿐입니다.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보수 교계는 이원론적 태도에서 벗어나 해법 중심의 대안 제시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낙태 비범죄화와 낙태 반대가 한 데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앞서 지적한 성차별을 지양하고, 임신 출산이 고통과 절망의 출발점이 아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여성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과 경력단절 해소, 사회적 편견 일소를 위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가 추구해야 할 생명존중의 원칙은, 억압과 강요만으로 풀어낼 수 없습니다. 평화나무는 보수 교계의 진정성 없는 '낙태죄 존속' 주장에 선을 그으며, '낙태 없는 세상'을 향한 책임 있고 대안 있는 행동을 추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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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사단법인 평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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