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유치하지만 나에게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버킷리스트라고 해봐야 딱 한 줄이지만 나는 죽기 전에 그 한 줄의 소망을 꼭 이루고 싶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매년 8~9월 미국 네바다 주의 뜨거운 사막 블랙록에서 1주일 동안 열리는 ‘버닝맨(Burning Man)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소망을 위해 10년 전쯤부터 매달 3만 원씩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 통장을 보면 흐뭇하다. 돈이 쌓여서 흐뭇한 게 아니라, 오랜 꿈이었던 버닝맨 축제에 참여할 그날이 다가오는 듯해서 흐뭇한 것이다. 

1986년에 시작된 이 축제에는 매년 수만 명의 인원이 모인다. 축제 마지막 날 거대한 사람 조형물을 태우는 행사 때문에 ‘버닝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버너(Burner)라고 부른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수만 명의 버너들이 텐트를 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진짜 세상

버너들은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본다. 하나는 디폴트월드(Default world)라는 것인데, 태어나보니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속해있는 세상을 말한다. 나는 경쟁적 자본주의에서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보니 세상이 자본주의였던 거다. 이게 바로 디폴트월드다.
다른 하나는 리얼월드(Real world)다. 리얼월드는 ‘내가 선택해서 사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리얼월드는 경쟁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협동과 연대가 가득한 공동체다.

황량한 사막에 모이는 버너들은 바로 이 리얼월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축제의 슬로건은 ‘창조와 자유, 무소유’다. 버너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쓰러뜨리는 무자비한 경쟁 사회가 아니라 무소유에서 삶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연대의 공동체를 창조한다. 그들에게 이런 공동체는 고향과도 같다. 버너들이 황량한 사막에 도착하면 “웰컴 홈!(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이라는 정겨운 인사를 나누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내가 이곳을 꿈꾸는 이유는 나의 오랜 꿈인 경제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버너들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돈을 주고받는 상업행위가 99% 근절된다. 유일하게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은 주최측이 제공하는 얼음뿐이다. 

물건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낭비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혹시 ‘사막이니까 쓰레기를 몰래 묻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헛된 상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행사를 마친 뒤 주최측이 땅 속을 샅샅이 뒤져 쓰레기를 다 적발하기 때문이다. 쓰레기 투기가 걸리면 다음해부터 참가 자격이 박탈된다. 

돈으로 뭔가를 살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의 규칙’이 작용해야 한다. 버너들은 부족한 것을 옆 텐트에서 얻는다. 공짜로 달라는 건데 잘 주냐고? 엄청 잘 준다. 나에게 남는 것을 남에게 공유하는 것은 버너들에게 기초적인 상식이다 

물론 얻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이웃이 부족할 때 당연히 그들을 도와야 한다. 여기서 “이건 내 거고, 저건 네 거고” 이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븅딱 취급 받는다. 

그게 잘 되냐고? 엄청 잘 된다. 화폐가 아니라 염치와 고마움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환경을 훼손하지도 않고, 과도한 소비로 지구를 병들게 하지도 않고, 심지어 심심하지도 않게 즐겁게 지낸다. 

가끔 엄청나게 긴 줄이 있는데, 버너 한 명이 수프를 끓여서 나눠주는 줄이다. 수프를 얻어먹는 조건은 ‘한번 웃기기’다. 참 유쾌한 사람들이다. 나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저질댄스를 추고 수프를 얻어먹을 생각이다. “춤 잘 추세요?”라고 묻지 말아달라. 더럽게 못 춘다. 그런데 못 추면 또 어떤가? 어차피 웃기려고 추는 거다. 못 추는 게 더 웃기지! 

연대의 저축이 만들어가는 세상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 듀크 대학교 교수도 이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가 『상식 밖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곳을 소개한 대목을 읽어보자.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음식을 준비한다. 심리학자는 무료로 상담치료를 해준다. 마사지하는 사람은 앞에 누운 사람을 마사지한다. 물을 가진 사람은 샤워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음료수와 직접 만든 장신구를 나눠주고 포옹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MIT 소품가게에서 퍼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풀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매우 생소했지만, 얼마 있지 않아 버닝맨의 규범에 적응이 되었다. 놀랍게도 버닝맨은 내가 겪어본 곳 가운데 가장 포용력 있고 사회적이며, 서로를 배려하는 공간이었다.” 

참 멋진 사회 아닌가?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는 이런 사회가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될 것이라 믿는 공상주의자가 아니다. 무소유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법정스님이나 테레사 수녀님처럼 살 수도 없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경제적 소유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버닝맨 축제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지향하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힌트다. 나는 적어도 우리의 삶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존재고, 실제로 7,00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버닝맨의 삶을 현실에 적용하자”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꿈꿔야 하는지를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지어낸 말 중에 ‘사회적 연대의 저축’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미래가 불안해서 저축을 한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 저축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그게 바로 연대의 저축이다. 
내가 여유가 있을 때 누군가를 돕는다. 그러면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언젠가 여유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 도움의 손길이 꼭 나를 향할 필요는 없다. 부족한 사람 누군가에게 내밀면 된다. 

시장 규범에 의하면 이건 바보짓이다. 나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데도 누군가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나의 연대는 사회라는 계좌에 저축이 된다. 이렇게 저축된 연대는 내가 언젠가 부족할 때, 혹은 내 자녀들이 부족할 때 누군가가 나와 내 가족을 도와주는 보험이 된다. 장담하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연대의 이자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보다도 훨씬 높을 것이다. 

우리는 뭘 먼저 저축해야 할까? 나는 이 사회가 버닝맨 축제처럼 연대를 저축하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나의 미래가 불안한가? 연대가 나의 미래를 대비해 줄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나는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4년 반 동안 방송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에 대한 연대를 호소했을 때, 수많은 시민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아준 것이었다. 이런 훌륭한 시민들과 나는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꿈꾸는 사회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절망할 이유를 하나도 찾지 못하겠다. 

꿈만 꾸는 사람이라고 욕해도 좋다. 나는 여전히 버닝맨 축제에 참여할 꿈을 꿀 것이고, 내가 선택하는 연대와 협동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을 소망할 것이다.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저질댄스 연습도 열심히 할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축제에서 무엇을 타인에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일은 바로 이런 사회적 연대를 꼬박꼬박 저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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