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을 강요하는 자, 그 이름은 팬티목, 아니 참, 전광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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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을 강요하는 자, 그 이름은 팬티목, 아니 참, 전광훈입니다
  •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승인 2020.08.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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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거의 매일 학교에서 암송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다. 요즘은 맹세의 문구도 조금 바뀌었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암송하지는 않는 것 같던데 나 때에는 정말 저걸 거의 매일 암송했다. 

그런데 진짜 웃긴 건, 나는 저 맹세를 암송하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런 맹세 따위에 몸과 마음을 바칠 생각이 들 정도라면, 그건 충성심이 강한 게 아니라 자아 개념이 부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Eric Felten)은 저서 『위험한 충성』에서 복종하는 충성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의 차이에 대해 역설했다. 복종하는 충성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 모두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전자는 강요받는 것이고, 후자는 자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종하는 충성이 아니라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이라는 이야기다. 

팬티 목사님의 충성심 강요

펠턴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펠턴은 말한다. 
“리더가 충성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에는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대개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둘째,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거의 예외 없이, 충성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군사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바실 리델 하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상사에게는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하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왜 어떤 리더들은 부하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할까? 펠턴에 따르면 그 리더가 사악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고 있으면 부하들이 알아서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을 베푼다. 그런데 구린 일을 하고 있으니 우정에 기댈 수 없고, 그러다보니 “나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펠턴이 인용한 바실 리델 하트(Basil Liddell Hart, 1895~1970)는 영국을 대표하는 군인이자 군사이론가였다. 충성 맹세가 난무하는 군 생활을 경험한 하트에 따르면 “나를 따르라!”라고 강요하는 놈들일수록 절대로 윗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여서 재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볼수록 명문장이기에 다시 한 번 인용해보자. 2005년 전광훈 목사가 대구 집회에서 했다는 말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사인 나를 위해 죽으려는 자가 70% 이상이다. 내가 손가락 한 개 펴고 다섯 개라 하면 다 다섯 개라 한다. 자기 견해 없이 목사를 위해 열려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목사는 교인들에게 교주가 되어야 한다"

"이 성도가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또 하나는 인감증명을 끊어 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아니다"

손가락을 한 개 펴고 "이게 다섯 개다"라고 주장하면 그 앞에서 "야 이 미친놈아"라고 정정해줘야 정상이다. 그런데 전광훈의 신도들은 "어이쿠, 목사님. 손가락이 다섯 개나 되십니다" 이러고 있단다. 빤스를 내리라면 내리고, 인감도장을 가져오라면 가져온단다. 전광훈 목사는 왜 이런 짓을 할까? 이 질문에 펠턴이 답한다. 전 목사가 사악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전 목사는 2019년 10월 집회에서 “나는 하나님 보좌를 잡고 산다.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멍멍이 소리를 시전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래서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절감했다. 

군사전문가 하트가 이미 오래 전에 예견하지 않았던가? “부하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은 정작 윗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나에게 충성하라”고 말하는 목사는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단언컨대 그 목사는 하나님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님, 친구를 사귀세요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2년, 일제가 저지른 만행 중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이라는 것이 있었다. 필리핀을 침공한 일제는 바탄반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필리핀군과 미군 등 연합군 7만 6,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일제는 이들을 무려 120㎞나 떨어진 내륙 수용소로 이동시키면서 수많은 포로를 학대했다. 물도, 식량도 주지 않고 벌어진 잔인한 행진에서 수많은 포로들이 낙오했다. 일제는 낙오된 포로들을 총검으로 살해했다. 이 죽음의 행진에서 무려 1만 명의 포로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과 잃은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펠턴에 따르면 그 차이는 바로 ‘믿을만한 벗이 있느냐’ 여부였다. 포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의지할 친구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반면 우울한 기분을 풀어줄 수 친구,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줄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버텨내지 못했다"

이게 바로 우정에 기반을 둔 충성이다. 등 뒤에서 나를 지켜줄 벗의 존재는 “팬티 내려라” “아, 네 당장 내리겠습니다” 따위의 복종 강요로 절대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벗이 있으면 죽음의 행진에서도 버텨낼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전광훈 목사님은 이제 진짜 친구를 좀 사귀셔야 한다. 친구는 없고 팬티 내리는 사람만 있으면 그 삶이 참 피폐해진다.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광훈 목사에 대한 3차 공판이 열린 모양이다. 사단법인 평화나무 김용민 이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고 해서 모처럼 관심 있게 뉴스를 지켜봤다. 전 목사 측의 다양하고 한심한 발언들, 매우 재미지게 잘 봤다. 

그리고 이번 원고 주제를 ‘전 목사와 충성심’으로 잡았다. 귀한 지면을 팬티 목사 이야기로 낭비하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김용민 이사장이 나의 벗이기 때문이다. 거대 교회 목사에 맞서 분투를 하는 그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전 목사님, 잘 보시라. 이런 게 벗의 존재다. 당신이 팬티 내리라며 충성을 강요할 때, 우리는 우정을 바탕으로 연대할 것이다. 벗이 싸울 때 나는 그 뒤에서 응원하겠다. 이런 마음이 벗들을 연대의 넓은 바다로 이끈다. 그리고 이 연대가 우리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평화나무에 축복을! 팬티 목사에게는 속옷을!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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