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한국교회의 ‘이웃 사랑’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 6월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이후 최근까지의 모습만 지켜보자면 이번에도 낙제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당대에 차별받고 소외됐던 이들의 친구를 자처했던 예수님의 삶과 정신을 한국사회에 구현해달라는 당부는 한국교회에게는 지나친 요구일까.

사실 모처럼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제정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이 최초로 발의된 이후 무려 13년 동안 반복된 현실이다. 반대의 중심에는 늘 한국교회가 있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대형교회나 작은교회, 연합기관, 교계 언론, 한국교회의 장자권을 다투던 교단들마저 한마음 한뜻으로 연일 가짜뉴스와 차별금지법 반대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국교회의 대통합도 조만간 이뤄질 기세다.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체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야말로 차별금지법 반대 기치를 내걸고 전 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기존에 동성애 반대 주장을 펼치던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법조인, 전ㆍ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 ‘복음법률가회’, ‘위장된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 기도회’ 등의 단체들이 설립됐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차별 받는 이들의 목소리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들어보려는 의지는 고사하고 관심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목회자와 법조인들의 말만 넘쳐나고 그저 한쪽으로 치우친 성경해석과 가짜뉴스를 근거로 실체 없는 공포만을 조장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1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서총명, 오세찬 씨. 학습공동체 ‘무지개신학교’를 일구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지난 11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서총명, 오세찬 씨. 학습공동체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배움의 장을 만들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성소수자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받은 서총명ㆍ오세찬 씨

한국교회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려는 목소리도, 이들에게 축복하는 행위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찍어 누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연대에 나선 이들을 ‘동성애 옹호자’로 낙인찍고 핍박하는 모습은 오히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만을 부각시키고, 한국교회가 이웃 사랑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드러내게 된 계기가 됐다.

‘무지개신학교’라는 학습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서총명ㆍ오세찬 씨가 대표적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생었던 이들은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채플이 끝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해 SNS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각각 6개월 정학과 근신 징계를 받았다. 오세찬 씨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단의 정체성을 수호해야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목사고시에 합격하고도 탈락 처리가 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하 예장통합)은 ‘총회 헌법 제2장 정치 제26조의 12’에서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계 무효 소송을 통해 부당한 징계는 철회됐지만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신학교에 더 이상 마음을 내어줄 수 없게 됐다. 이들이 “배제되고 쫓겨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하고 선명한 공간”인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배움을 추구하게 된 이유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사회였다면 서총명ㆍ오세찬 씨가 겪어야만 했던 부당한 경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난 11일 기자와 만난 이들은 적어도 신학교 내에서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 환경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오세찬 씨는 “가정해보면 분위기가 많이 지금보다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 안에 있는 성소수자 분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부담이 덜했을 것 같다”며 “성소수자 인권을 개선하고 응원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도 지금처럼 학교 안에서 저희들을 향한 공격, 공동체 안에서 배제하는 것보다 서로 응원하는 모습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한국교회에 만연한 동성애 혐오가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변화되길 기대하는 마음도 전했다. 무지해도 되는 권력에 안주해 엄연히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애써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공부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서총명 씨는 “차별금지법은 우리 안에 있는 당연시해왔던 차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며 “한국교회는 단순히 종교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사회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복지, 어린이집, 신학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 않나? 이제라도 공적영역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세찬 씨도 “기독교가 성적지향이라는 네 가지 글자를 붙잡고 있는 동안 차별금지를 보장받아야 하는 분들은 차별에 노출되고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맥락을 한국교회가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한국교회도 일방적인 반대를 앞세우기보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총명 씨는 “이방인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예수를 따르는 종교가 기독교 아닌가?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이게 ‘동성애 조장법’이 아니라 성소수자가 이미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라며 “동성애를 반대하든 찬성하든 이들이 어떤 영역에서 차별받지 말자는 게 법의 취지인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어떤 계기로든 소수자가 될 수 있고, 무수한 차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총명 씨는 “노숙인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갔던 세계들과 맞닿는 경험들이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연한 계기로 성소수자와의 만남도 있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며 “지금의 신학체계나 교단의 입장 가운데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건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라는 한 단면만 바라보지 않고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연대하는 일도 큰 결심이 아니었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고 했다.

 

지난 12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회부된 이 목사의 첫 재판은 21일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평화나무)
지난 12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회부된 이 목사의 첫 재판은 21일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평화나무)

 

성소수자 축복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회부된 이동환 목사

가장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인천 퀴어 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 재판에 회부된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사건을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회)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주목했던 이유는 이 목사가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동성애를 옹호했다’는 명목으로 목회자 자격 박탈 여부를 논의하는 최초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감리회 헌법인 교리와 장정 일반재판법 3조 8항에서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를 범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면 이 목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징계는 정직, 면직, 출교 외에는 없다. 또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임이 정지돼 담임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심지어 현재 감리회 내부에서는 이 목사를 면직, 출교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감리회 동성애대책위원회(이하 동대위)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 목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출교시키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동대위는 “이동환 목사가 목사 가운을 입고 인천 퀴어 축제에 참가하여 동성애자들을 위해 축도한 행위를 반(反)기독교적 행태로 규정한다”며 “이것은 목사 가운을 입고 n번방이나 음란물 제작 촬영현장으로 달려가 축도한 행위에 준한다. 이와 같은 범죄행위를 멈추고 회개하기를 촉구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2일 평화나무 기자와 만난 이동환 목사는 여전히 감리회 목회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성소수자 교인이 상처받지는 않을지 가장 염려했다. 또 국가보안법을 방불케 하는 상식적이지 못한 교단법으로 인해 재판까지 회부되고, 부당한 압력과 비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감리회를 사랑하고,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감리회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이 목사는 “사실 지금의 상황을 후회하고 있지 않다. 목사로서 가야할 곳에 갔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직임을 따라 해야 될 일을 했다”며 “당시 축복식 할 때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엄청 굳어있다. 만약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네가 목사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했으니 너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웃는 얼굴로 마음을 다해 축복을 해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우리가 대체적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관념적으로는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 배우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각 영역에서 수많은 차별이 벌어지는 현실”이라며 “이런 부분들을 바로잡고 누구나 존엄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차별 없는 사회가 갑자기 이뤄지지는 않을 거다.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이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보기보다 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목사는 “예수님은 늘 약한 이들의 편에 서신 삶을 살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 그대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지리적 개념일수도 있지만 우리의 심리나 인식의 땅 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땅 끝에 있는 벽을 무너뜨리면서 우리의 인식과 사랑의 지평을 확장해나가야 된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받게 된 이 목사지만,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성소수자 교인이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했다. 이 목사는 “우리 교회는 20명 안팎에 작은 교회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성소수자 교인이 없을 수가 없다. 강단에 서는 설교자라면 이분들에 대한 공부와 배려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앞으로 재판 과정을 통해 감리회 내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목회적, 신학적 논의가 시작되는 마중물이 되길 희망했다. 이 목사는 “2015년에 감리회 동성애 조항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가면을 쓰고 반대시위를 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명서를 내주고 있다. 또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다. 변화가 느릴 수는 있지만, 저는 여전히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목사의 첫 재판은 감리회 경기연회 본부에서 21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사회적 상식에 발맞추지 못하는 현재 분위기로 보아서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더라도 한국교회는 그 사회적 함의를 수용해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차별과 혐오, 배제를 넘어 평등과 존엄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대열에 앞장서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까.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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