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신학교 세운 신학생 "성 밖에서도 삶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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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신학교 세운 신학생 "성 밖에서도 삶은 이어졌다"
  • 김준수 기자
  • 승인 2020.08.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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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6개월 정학ㆍ근신 징계
지난 3월 배움공동체 ‘무지개신학교’ 활동 시작
지난 11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서총명, 오세찬 씨. 학습공동체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배움의 장을 만들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지난 11일 평화나무와 인터뷰 중인 서총명, 오세찬 씨. 학습공동체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배움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그 사건이 없었다면 여느 신대원생과 다를 바 없이 신학 공부에 여념이 없었을지 모른다. 또 군종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6개월 정학과 근신. 서총명ㆍ오세찬 씨가 학교로부터 받은 징계다. 무지개 색 옷을 맞춰 입은 사진 한 장을 SNS에 게시해서 벌어졌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삶의 여정에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징계 무효 소송을 통해 부당한 징계는 철회됐지만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더 이상 마음을 내어줄 수 없게 됐다. 이들이 “배제되고 쫓겨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하고 선명한 공간”인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배움을 추구하게 된 이유다.

무지개신학교는 지난 3월 9일부터 5월 1일까지 1학기 수업과 계절 학기를 마무리 하고 숨고르기 중이다. 1학기에서는 기존의 신학교에서 다루지 않거나 다루기 어려웠던 ▲몸(여성, 장애, 퀴어)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구약, 젠더GENDER 하기 ▲한국교회 정상 이데올로기 해체: 연애, 가족 ▲생명들의 연결된 이야기(생태, 동물권, 비건, 탈핵, 기후) 등의 주제로 강좌를 꾸렸다. 계절학기에서는 ‘코로나 이후 OO’에 주안점을 두고 국가체제, 질병권, 생태, 폭력, 교회, 혐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는 청어람ARMC의 ‘성소수자와 그 곁의 삶은 어떻게 ‘사건’이 되었나? - 사건 이후, 지속과 동행의 언어 찾기’ 정기강좌에도 참여했다.

서총명ㆍ오세찬 씨를 성소수자와의 연대로 이끈 것은 특별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암하아레츠 도시빈민선교회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 비정규직, 장애인들의 아픔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인권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서총명 씨는 “노숙인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갔던 세계들과 맞닿는 경험들이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연한 계기로 성소수자와의 만남도 있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며 “지금의 신학체계나 교단의 입장 가운데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건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라는 한 단면만 바라보지 않고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보면서 그들과 연대하는 일도 큰 결심이 아니었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고 했다.

애초에 일을 키우고, 문제가 아닌 일을 문제로 둔갑시킨 것은 반동성애진영의 압박에 굴복한 학교 당국과 한국교회에 만연한 동성애 혐오였다. 오세찬 씨는 “‘함께 살자’는 피케팅을 할 건데 동아리 소속이 아니더라도 같이 할 마음이 있으면 함께하자고 SNS에 올렸다. 거기서부터 제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절대하지 말라고 했다”며 “동성애를 옹호하자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자, 누구든 간에 같이 살자’는 취지에서 진행한 일이었고, 피케팅을 못하게 됐으니 옷이라도 입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온갖 비난과 상처는 무지개 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석해 징계를 받았던 학생들이 감내해야만 했다. 책임 있게 나서는 어른이나 선생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징계를 당했던 학생들은 지난해 7월 19일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이고 예배했을 뿐인데, 예배 참석은 ‘퍼포먼스’가 되었다”며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를 잠시 떠났거나, 학교에서 쫓겨났거나. 우리는 각자 시간을 보내며, 정신없이 흘러간 날들을 되돌아보았다. 남들이 마음대로 쥐고 흔든 소중했던 시간을. 앞으로의 시간마저 빼앗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우리 길과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은 “징계는 부당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빼앗긴 우리 시간과 건강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희망을 마주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 곁에 있었던 모든 분과, 또 예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또 걷고 견딜 수 있다. 춤출 수 있다. 우리 저항과 평화의 움직임은 축제일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정상의 궤도에서 멀어지고 자칫 표류할 뻔 했던 서총명ㆍ오세찬 씨에게 무지개신학교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중심이 아닌 경계 밖에서도 얼마든지, 또 보란 듯이 신학 공부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무지개신학교를 통해 새로운 꿈도 꾸게 됐다.

오세찬 씨는 “무지개신학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제가 디디고 서있던 삶의 기반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던 시기였다. 내가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터전이 필요했었다. 무엇보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다”며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예수의 정신을 따라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성 밖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서총명 씨는 “무지개신학교가 어느 순간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지개신학교를 경험했던 기획자들, 수업을 들었던 이들이 10~20년 뒤에도 우리가 함께 나눴던 고민의 지점을 계속 발전시켜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여기에서 퀴어 신학자, 환경 신학자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다.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공부해보자는 마음이다. 기존의 신학교가 길러낼 수 없는,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발견해내고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무지개 색 옷을 맞춰 입은 사진을 SNS에 게시했다고 학교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사회였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오세찬 : 가정해보면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차별금지법에서 이야기하는 게 네 가지 영역에서 차별금지이지 않나? 그 중에 교육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교단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더라도 교육 안에서는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아마 학교 안에서 퀴어 분들이 많이 자신을 드러내서 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이런 어떤 퀴어에 대한 인권을 같이 고양하고 응원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정도로 학교 안에서 저희들을 향한 개인적인 공격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우리를 배제하는 모습보다 학생들이 서로 응원하는 모습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서총명 : 저는 교단이나 혐오 발언을 하는 목회자들이나 많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없기 때문에 무지해도 되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거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실 시작이다. 그때부터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최소한 처벌받지 않고 제재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도 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교단이나 차별에 앞장서는 목사들에게 경고의 의미도 될 것 같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창궐한다’고 하는데, 이 법 자체가 우리 안에 있는 차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자는 취지 아닌가? 한국교회는 단순히 종교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사회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복지, 어린이집, 신학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제라도 교회가 공적영역에서 어떤 발언을 하고, 책임을 져야하는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 결의된 것이지만 동성애자 옹호자 신학교 입학 금지, 성소수자는 신학교 직원 채용 금지하는 그런 부분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까지 당연시해왔던 차별을 돌아보고, 드러내면서 사회 안에서 종교와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사실 제정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차별금지법을 마주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제정 여부를 떠나 한국교회의 변화가 가능할지 암담해진다.

: 기대도 있고 무서움도 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 중에는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혐오를 조장하는 말들만 넘쳐난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과연 교회 안에서 가짜 정보를 거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오히려 이렇게 공포를 조장하는 말들에 휘둘리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사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한들 당장 기독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 설교를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난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차별금지법이지만 나중에 다른 이슈가 교계에 대두됐을 때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우려된다. 기독교가 13년 동안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왔다. 차별금지사유 중에서 성적지향만을 가지고 ‘동성애법이다’, ‘동성애 조장법이다’ 몰아세웠다. 기독교가 성적지향이라는 네 단어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 차별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차별금지를 보장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맥락을 한국교회가 고려했으면 하는 좋겠다.

: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팩트체크를 해도 믿지 않는다. 서로 논의의 장으로 나와서 함께 고민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굴복하는 길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한국교회가 웅크러지는 길로 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성장만 중요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그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못하는 곳이 돼버렸다.

장신대 교수님들이 쓴 ‘동성애 문제 교육 지침’을 본적이 있다. 교수님에게 성소수자를 만난 본 적은 있으시냐고 물었고, 어떻게 만나보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쓰셨냐고 말했다. 그들의 존재를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방인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예수를 따르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과연 이게 교회인가 싶었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조장법’이 아니라 성소수자가 이미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든 찬성하든 이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지 말자는 것이 법의 취지인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어떤 계기로든 소수자가 될 수 있고, 자신이 평범하고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무수한 차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Q.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도시빈민선교회에 들어갔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냐고 한다면, 그동안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녔을 텐데 지하철 안에 노숙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개념적으로 알고 있었고, 보기도 했었겠지만 그분들이 나의 세계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나의 이웃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거다. 새로운 세계와 이웃들을 발견하는 경험들을 계속 했었다. 노숙인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그동안 나의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무심코 지나쳐갔던 세계들을 하나씩 만나가는, 세계가 맞닿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연한 계기에 성소수자도 만나게 됐다. 만남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됐다.

지금의 신학체계 안에서 교단의 입장 가운데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과연 그 세계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 세계가 내게로 들어왔고, 보게 됐고, 만났는데 말이다. 그건 솔직히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존재에 대한 관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다. 만나고보니깐 그 사람의 일부분, 입체적인 한 부분이 성소수자였던 것뿐이다. 그 사람을 이루는 다양한 이름, 요소 중에 하나가 성소수자일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연대하는 일도 큰 결심은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 사건 전에도 교회 안의 노동자와 연대하는 활동도 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이렇게 일이 커지는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Q.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 주변에 성소수자 지인이 없다.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들의 삶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 성소수자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밝히게 된 것이다. 제 지인 중에도 성소수자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저는 없는 게 아니고 성소수자임을 그만큼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성적지향을 말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차별도 심하고 시선도 따갑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만났던 분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었다. 이 사회 자체가 성소수자들에게 치열한 삶을 강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애자에 비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다. 그분들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의 충돌이 생기면 교회를 떠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신앙을 계속 붙잡기 위해 충돌이 생기는 지점을 어떻게든 이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수많은 어려움, 쏟아지는 비난과 혐오 속에서도 말이다. 셩경 해석 자체를 혐오의 말로 하지 않나? 성경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에 늘 감동을 받는다. 그 누구 이렇게까지 성경을 읽고, 붙잡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 그분들이 충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Q. 무지개신학교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 무지개신학교를 시작했던 계기는 그걸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워낙 심리적으로 불안하기도 했었고 제가 디디고 있던 삶의 기반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던 시기였다. 내가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터전이 필요했었다. 무엇보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었다. 그래서 거창하지만 신학교라는 이름으로 교육, 학습공동체를 꾸려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매순간 재미있다. 27살이지만 아직까지도 교회에 가면 아이의 입장일 때가 많은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설교마저 검열당할 때가 있다. 내 말의 온전히 책임을 질수도 없는 위치라는 것이 괴로웠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책임을 지면 되는데 그 책임조차 나한테 있지 않고 부목사나 담임목사에게 있다. 그런 답답한 구조 속에 살아가다가 온전히 나 자신이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내가 추구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신 앞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고 솔직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게 좋다.

무지개신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분들 중에서도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때가 많다. 이미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예수의 정신을 따라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걸 보면서 성 밖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가 여기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삶은 이어진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아무리 우리가 새로운 신학을 공부하려고 해도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무지개신학교라는 안전한 공동체에서 각자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나누고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무지개신학교가 언제든지 없어져도 된다고,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지개신학교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더 중요하지, 단체는 중요하지 않다. 무지개신학교 기획자들, 수업을 들었던 이들이 여기에서 경험했던 걸 통해서 10, 20년 뒤에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함께 나눴던 고민의 지점을 계속 발전시켜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무지개신학교를 경험했던 이들 중에서 퀴어 신학자, 환경 신학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공부해보자는 마음이다. 기존의 신학교가 길러낼 수 없는,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발견해내고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현실이 어렵다는 걸 느낀다.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10명 정도는 수강을 해야 강의하시는 선생님에게도 소정의 비용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신학교를 하면서 현실을 많이 배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강좌를 들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무지개신학교가 3~4년 정도 계속 유지돼야 안전한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한지 이제 1년 정도라 신뢰감이 없을 수도 있고,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지속되고 유지해야 이름만으로도 안정감, 신뢰감을 줄 수 있겠다 싶다.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11월에는 2학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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