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경북 상주에서 열린 '청교도 말씀학교' 집회 장소에 마련된 잠자리. (사진=평화나무) 

3년 전, 광화문을 방문했을 당시 ‘박근혜 하야 웬 말이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십 년이 넘도록 해외에서 거주했던 터라 나라의 얼굴인 대통령이 불미스러운 일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현실은 부끄러웠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척도가 된 촛불집회는 자랑이었기에 국민이 민주적 시위를 통해 탄핵시킨 대통령을 다시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 3년 뒤 다시 광화문 수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이번에는 ‘문재인 빨갱이 하야하라!’ 외치는 무리를 마주했다. 충격이었다. 3년 전 내 가슴에 불을 지핀 촛불의 물결이 일던 광화문이 막말과 거친 욕설, 괴성으로 물들어 있었다. 더 기암할 일은 그 괴기스러운 현장에 찬송과 십자가가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전광훈 씨를 보았다. 수만 명을 광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잔상이 머릿속에서 잊힐 때쯤 평화나무 활동가로 일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전광훈 씨가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5월 18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경북 상주에서 열린 '청교도 말씀학교' 집회 (사진=평화나무) 

 

전광훈 집회의 하이라이트...기승전 ‘헌금’  

나는 지난 5월 18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상주 열방센터에서 열린 전국 청교도 말씀 학교 집회와 8월 27~29일 사랑제일교회에서 진행되는 집회 총 2번을 참가했다.

서울에서 상주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에 오르던 날, 첫 느낌은 씁쓸함이었다. 셔틀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60대 어르신들의 신앙적 열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주의 기복신앙에 물들었거나 정치적 성향만이 다가 아니었다고 느꼈던 것. 그야말로 훌륭한 부흥 강사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기도하고 싶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혼자 앉아 있는 내게 이것저것 물으며 본인이 가져온 간식까지 나눠주고 함께 은혜받고 가자고 하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3시간여 시간을 달린 끝에 상주에 도착했다. 4-5천여명이 집결한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다. 같은 교회에서 참석한 분들은 서로를 부르며 자리를 잡기 바빴고, 안내원 10여명이 앉아 있는 등록 데스크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먼저 등록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앞자리 사수를 위한 경쟁이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지자체에서 나왔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주체측에서는 모였던 사람들을 다 흩으며 접수창구 문을 닫아버렸다.

주최측은 4천명이나 되는 참석자들에게 “주변이 다 야외이니 건물 안에 들어가지 마시고 방역 당국에서 돌아갈 때까지 돌아다녀 달라”고 권했다. 참석자들이 말을 듣지 않자, 집회가 열리는 건물의 문을 아예 걸어 잠그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예배당에서는 강의가 시작됐고, 등록을 채 못한 사람들은 강당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질서와 혼돈의 현장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서야 등록절차가 재개됐다. 등록비 10만원을 입금했는지와 이름, 전화번호, 주소, 출석교회를 확인 후 숙소를 배정받고 등록을 완료할 수 있었다.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인파에 휩쓸려 강당에 들어갔다. 편안한 의자를 마다하고 넓은 홀 앞 마룻바닥 앞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또다시 경쟁이 시작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은 아니었다. 결국 의자를 밖으로 빼내고, 서로 양보하듯 끼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요란한 반주에 맞춰 찬양이 시작되자, 일부 어른들은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이미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은혜받을 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강단에서 어떤 말이 나와도 아멘으로 화답할 준비가 되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집회 시간, 전광훈 씨가 등장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었다. 무슨 교주를 모시는 집회를 보는 듯했고, 전광훈 씨가 한 마미 한 마디에 모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열광했다. 예상대로 무슨 말을하든 상관없었다. 무조건 아멘을 외쳤다. 전광훈 씨는 회중을 끌어모으는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그의 막말과 욕설마저도 지지자들에겐 열광케 하는 요소였다. 더욱이 그의 간증은 지지자들의 가슴 속에 희망까지 심겨주는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고, 잘난 것 하나도 없는데 보십시요! 하나님이 하시면 여러분 보세요? 여기 몇 명 모였어요? 제가 하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세요! 하나님이 하시면 이 전광훈이처럼 여러분도 될 수 있습니다. 저요, 학교 뒷문으로 들어갔어요! 공부를 어찌나 못하는지 동생이 시험도 봐주었어요!” 하는 식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전 씨의 발언은 순진한 신앙인들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되고,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사람의 심리와 군중 카타르시스를 절묘하게 이용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헌금함이 등장했다. 

5월 18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경북 상주에서 열린 '청교도 말씀학교' 집회 (사진=평화나무) 

 

열악함의 끝판왕...코로나를 잊은 사람들 

잠자리는 열악했다. 미리 준비해 온 개별 침낭에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닥다닥 간격 없이 깔려 있는 침낭을 보며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 맞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아침이면 세수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줄을 서서 머리를 감고, 발을 올려 씻고.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거리 유지 없이 붙어서 자고, 씻고, 먹고. 과거 피난민 수용소가 이랬을까 싶었다. 

주변에 변변한 식당도 없어, 밥 차에 배식을 받아 길바닥이나 계단에 앉아 교대로 끼니를 떼웠다. 그런데, 이 시설은 7월 27일에 참석했던 사랑제일교회 시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시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7월 말 집회에서는 특히 코로나조차도 현 정권이 조작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현 정부를 의심하고 비방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비방 수위는 5월 열린 집회보다 한 층 더 강화돼 있었다. 2천-3천명이 모여 숙박을 하기엔 터무니없는 장소였고, 예배드릴 장소도 부족해 복도 계단, 식당 심지어 주차장에까지 앉아야 했다. 세면장이며 식당이며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았다. 화장실 바닥은 물로 흥건했고, 휴지는 내 정신 줄 마냥 풀려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를 데려온 참가자들도 보였다.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기겠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에 답답함이 몰려 왔다. 

식사시간 참석자들은 주차장이나 길가에 앉아서 겨우 식사를 했고, 운 좋게 길가에 펼쳐 놓은 간이 테이블에 일회용 접시를 놓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뒤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비워주는 실정이었다. 저녁 예배를 마친 후 교회 측은 교회에서 잠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줄 세워 찜질방으로 안내했다. 문득, 전광훈 씨는 어디서 잠을 잘까 궁금해졌다. 생고생은 철저히 지지자들의 몫이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

전광훈 씨는 5월 첫날 집회에서는 그나마 정치적 발언을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둘째날 부터는 대통령을 ‘빨갱이’라 부르며 정치적 발언과 막 말을 해댔고, 7월 집회에서는 막말 수위는 한층 더 강화됐다. 집회마다 유명인사들을 모아 애국, 구국, 주사파, 건국역사라는 주제로 마치 계몽이라도 하겠다는 듯 집회를 이어갔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현 정권이 무너져야 한다는 사상을 끊임없이 주입시켰고, 역시 기·승·전 ‘헌금’으로 귀결됐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을 후원하는 천만 조직이 필요하며, 그 천만 조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변에서 10명씩 참여시키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변호사·교수·전 국회의원 등의 명함을 달고 나오는 강사들의 말이 진리라는 듯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석자들의 눈빛은 사명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특히 7월 집회에서는 코로나조차도 정권 유지를 위해 조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현 정부를 의심하고 비방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했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골적인 정치 발언에 지치고 마음에도 없는 호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전광훈 씨는 순진한 교인들에게 정부와 사회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끊임없이 심어주었고, 열악한 상황에서 기도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인 양 주님의 뜻을 오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단언컨대, 전 씨의 주장 속에 하나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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