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소통방식' 고민 필요한 지점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기독노동조합 결성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보수 개신교 내에서는 노동조합을 매우 불온시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내심 노동조합 추진이 어그러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기독노조 설립이 예고된 후 지난 8월 3일 논평을 통해 “성직자들의 기독교 노조 설립은 옳지 못하다”며 대놓고 비판했다.

이처럼 고난이 예상되는 노조 설립을 예고한 것은 ‘부교역자 인권찾기’라는 신생 단체를 이끌고 있는 엄태근 목사다. 엄 목사는 14일 “경기도로부터 기독노조 설립증을 11일 받았다”며, “향후 전국단위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연, 기독노조는 순항할 수 있을까. 

 

기독노조의 필요성은?

기독노조 설립의 출발점이 됐던 ‘부교역자 인권찾기’의 탄생부터 짚어보자. 한국 개신교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속인 엄 목사 역시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불합리함에 직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예장합동의 경우, 교단헌법으로 교회 담임을 맡은 위임목사의 정년은 70세로 보장해주지만, 부교역자는 1년 임시직이다. 사실상 담임목사 말 한마디에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현실에 처해있고, 부교역자들의 아슬아슬한 부당하고 아슬아슬한 노동 현실은 한국교회 전체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담임목사가 어떤 부정한 짓을 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담임목사의 소위 아바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역시 합동교단 내 한 부목사가 담임목사의 상습적 표절 문제를 지적했다가 노회 재판에서 영구 정직됐는데, 당시 재판 국장을 맡았던 목사의 발언은 한국교회 내 부교역자의 현실을 아주 잘 드러내 준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부교역자가) 교회를 떠나는 것이 마땅하다. 나도 목사가 서른 명이 넘어도 교회에는 목사가 한 명뿐이라고 배웠다. 부목사는 담임 목사의 직을 맡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목회 윤리다” 

담임목사는 부정을 저질러도 구제받지만, 담임 목사의 부정을 고발한 부목사는 설 자리를 잃는 현실.

그것을 목회 윤리고 상식이라고 말하는 비상식이 뿌리 깊은 교회의 현실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좋을지 가늠도 잘되지 않는다. 위의 발언을 한 목사가 그나마 꽤 진보적인 목사로 평가되어왔다는 점은 더욱 기대를 접게 만든다. 

날마다 마지막 잎새와 같은 심정. 한국교회 부교역자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교역자의 현실이 이 정도이니, 전도사나 교회 관리 집사 등의 노동 현실은 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기독노조의 출범이 교회 문제의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기독노조의 출범이 의미깊게 보이는 이유다. 변화와 개혁은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그러나 그 방향성은 매우 불분명해 보인다. 애초에 기독노조는 ‘부교역자 인권찾기’를 응원하며 모이기 시작한 노동운동가, 법률가, 신학생 등이 함께 참여해 민주노총 가입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노동조합 설립도 전에 구성원들은 쪼개져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갈등의 쟁점은 당시 민주노총 가입을 염두에 둔, 전국민주기독노동조합추진위원회 명의로 낸 성명서 하나가 화근이 됐다. 다름아닌,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 재판에 회부된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성명을 낸 것이 문제가 됐다. 성명을 낼 당시에는 침묵했던 부교역자들이 막상 성명이 나가자, ‘동성애는 찬성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 이는 결국 기독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을 돕겠다며 의기투합했던 활동가들(부교역자 아닌 활동가)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한 활동가는 “처음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동환 목사님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일이 적극적이었던 대표 목사가 한순간에 (목사들이) 동성애는 찬성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동성애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싶어 하는데, 이것을 왜 동성애 문제로 결부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상 이동환 목사 지지 철회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저한테 나가라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이런 방향으로 교역자들끼리 의논 중이다’, ‘침묵하고 기다려 달라’, ‘대외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며 “본인들이 염증을 느끼고 나온 교회의 소통방식을 반복하는 것인데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말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꿈꿨던 일들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절망감만 더해진 느낌”이라며 했다. 

이에 대해 엄 목사는 “역량 부족”이라고 답했다. 부교역자 인권찾기 일만 해도 할 일이 많고 애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있는데 자신이 성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외부 활동가들에게도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부교역자들을 대표한 엄 목사와 외부 활동가들 간의 갈등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활동가들은 엄 목사가 단체 홍보를 위해 이동환 목사의 안타까운 상황을 이용만 한 꼴이라고 했다. 또 보수 목사들의 이익 단체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신생 단체의 성급함일까, 한계일까 

사실 엄 목사의 말대로 아직 조직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단체가 외부의 사건에 연대부터 해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확인 결과 외부 활동가 한 사람이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자고 제안했으나 조직도 갖추지 않고 연대 성명부터 내는 일이 성급하다는 생각은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향후 기독노조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교회 내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이야기하거나, 심지어 동성애 옹호법으로 둔갑시킨 차별금지법 제정에 공감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목소리를 못 낼 공산이 커 보이는 탓이다. 

한국교회 내 ‘잠잠하라’는 목사들의 가르침을 떠받들었던 교회 내 일꾼들이 서로의 의견을 청취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도 기독노조의 앞날을 불안하게 전망하게 되는 이유다. 어쩌면 현재 벌어진 문제의 핵심도 '소통'이다.
 
누군가는 이제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기에게 성인 수준의 뜀박질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 노동 문제에 있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함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엄 목사도 “이제 배워가는 상황이라..."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해를 구했다. 

이런 조언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독노조의 설립 전에 우리는 소통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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