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어느새 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훌쩍 지나가버린 50년이란 세월.
다가오는 11월 13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50주깁니다.

지금까지 전태일 열사의 사상과 활동의 기반이 됐던
그의 신앙적 면모는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요.

‘전태일 실록’ 출간을 앞둔 최재영 목사를 만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준수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전태일 열사와 기독교와의 만남은 당시 교회가 운영하던 공민학교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늘 배움에 목말라했던 전태일 열사는 기회만 있으면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학업을 위해 다니기 시작했던 교회였지만, 신앙은 전태일 열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전순옥 전 의원 / 더불어민주당,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일 제 오빠는 정말 인간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해서 이렇게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신앙적인 면에서
(기독교 정신을) 몸으로 실천했다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하지만 신앙이 자라갈수록 유독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부조리한 현실에 점점 눈을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면서 일요일도 제대로 쉬지 못해 주일성수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은 그를 고민에 빠뜨리게 했습니다.

또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던 평화시장 업주들의 이중적인 신앙행태에도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재영 목사 /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전태일 열사는 50년 전 당시에 300만명의 노동자들을 대변해서 자기를 희생한 거잖아요?
당시에도 한국교회는 그 아픔을 함께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는 전태일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가해자격이 돼버린 거죠.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볼 때 많이 변했느냐?
제가 볼 때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열악하게
한국교회가 노동 문제를 대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부르짖었던 배경에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만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질타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적어도 주일만큼은 마음 편히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단 소박한 바람도 있었던 겁니다.

또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로 결심하기까지 수도원 건축 봉사를 하며 십자가에 달리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던 예수님처럼 기도했습니다.

수도원을 찾아온 목회자들에게 평화시장 노동문제를 상담했지만 돌아온 것은
“기도생활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철저한 무관심이거나
“노동문제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핀잔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참담한 노동 현실을 외면하는 한국교회를 질타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까지 불사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한국교회의 반응은 크게 갈라졌습니다.
그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도 있었던 반면,
정권의 사주를 받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유가족들을 회유하려고 했었던 이들도 있었던 겁니다.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노동에 임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 받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청년 전태일.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5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전태일 실록 출간을 앞둔 최재영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소외된 이웃과 함께했던
예수님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단 당부를 남겼습니다.

5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작은 예수 전태일.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한국교회를 질타했습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그의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나무 뉴스 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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