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우리 언론의 '젠더 저널리즘'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계 다양성이 사라지고 일부 급진적 페미니즘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일부 여성주의 내의 언어가 언론계에 원칙으로 자리 잡고 심지어 여기에 저항하는 언론인은 징계를 당하거나 글을 쓸 권리마저 박탈되고 한다. 

언론이 왜 이렇게 된 것일요. 보수언론은 최근 여권 인사들에게서 잇따라 벌어진 미투 폭로를 활용해 적대적 정치집단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페미니즘을 활용하는 듯하다. 다만 중도·진보성향의 언론사 기자들까지 페미니즘을 저널리즘 일반의 이론처럼 과도하게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더 큰 문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지금까지 이른바 '젠더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언론학계에서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2018년 갑자기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시작됐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편에 언론이 서 있어야 한다는 심정적 공감대같은 것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벌어진 현상으로 분석한다. 

JTBC의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미투 폭로자(김지은 씨 등)를 인터뷰할 때 보였던 온정적 시선에 대한 저널리즘적인 고찰이 없는 상황에서 잇따라 미투 사건이 추가되면서 손 앵커가 보여줬던 태도가 언론 일반의 관행처럼 자리 잡은 탓도 있다.

본인은 페미니즘과 저널리즘을 혼동하는 이러한 언론의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미디어 연구가들에게 자문을 들어보았지만, 이와 관련한 문제들을 연구한 자료가 국내에 일천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중적 여성운동의 급속한 확장과 미투 운동 모두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여성학자들이 여성계의 권위를 활용해 방송과 언론 등에서 미디어의 원칙까지 제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엄연히 페미니즘과 저널리즘은 그 영역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학문의 분야는 상호보완하는 관계로서 적당한 거리 두기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치 페미니즘이 저널리즘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오인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저널리즘적으로 위험하다. 저널리즘적 올바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진영 주의처럼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위험 수위에 있다.

리포액트(대안행동탐사매체)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젠더 저널리즘' 연구를 시작했다. 해외 권위지의 미투 관련 기사들을 분석하고 기자들은 어떻게 미투 관련 보도를 해왔는지 분석하고 있다. 연구결과들은 언론비평매체 쩌날리즘에서 연재하도록 하겠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언론이 미투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단정적으로 사용하는 '피해자'라는 용어의 적절성에 대해 다루겠다. 

지난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타계와 이어 나온 '성폭력 사건 고소인'의 주장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한국방송>(KBS)은 '한국방송 성평등센터'의 자문받아 '고소인'을 '피해자'로 부르겠다고 선언한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겉으로는 자문의 형태였지만, 저널리즘 영역에 여성주의가 원칙처럼 자리 잡는 사회적 분위기의 신호탄이었다.

한국방송의 이러한 결정은 이때 까지만 해도 어떤 용어를 사용해 박원순 시장 관련 사건을 보도해야 할지 고민하던 대부분 언론사에 일종의 '미투 보도 가이드라인'처럼 작용했다.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가 곧장 "피해자(고소인)와 연대하겠다"고 선언했고, 서울신문에서는 김재련 변호사(성폭력 사건 고소대리인)에 대한 비판적 칼럼이 게재된 것을두고 기자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경향신문에서는 강진구 기자가 박재동 화백 미투 사건에 대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만으로 징계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화방송(MBC)에서는 신입사원 공채시험에서 '박원순 피해자'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논지를 전개하라는 시험문제가 나온 것만으로도 여론의 비판이 이어졌다. 

각자 추구하는 언론관은 다를 수 있기에 어떤 것이 옳다는 주장을 섣불리 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언론이 과연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 피해자 용어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검토의 시작은 미투 운동의 발상지이자 페미니즘 연구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언론이 어떤 용어를 사용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지 살피는 것이 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해외 언론들은 대부분 처음 의혹 제기가 나왔을 때는 '고소인' 또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의혹이 명료해졌을 때부터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먼저, 박원순 시장이 타계했을 당시 며칠간의 해외 보도를 살핀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2020년 7월13일 박원순 시장 타계 소식을 전하며, 성추문 의혹을 함께 전했다. 'Seoul Mayor Park Won-soon accused of four years of sexual'(4년간의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서울시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BBC가 사용한 용어는 '피해호소인'(alleged victim)이다. BBC 보도의 중간제목은 'What did the alleged victim say?'(피해 호소인은 뭐라 말했나?)였다. 'victim'(피해자) 앞에 'alleged'(의혹을 제기한) 수식어를 넣음으로써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alleged'는 주로 확정적이지 않은 혐의 등을 설명하는 법조 보도에서 해외언론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미국의 <ABC> 방송도 같은 날 'alleged victim'이란 단어로 박원순 시장 관련 논란을 보도했다. 

미국의 보수매체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날 'Seoul mayor who killed himself accused of sexual harassment by former secretary'(서울시장이 비서 성추문 사건으로 고소되자 자살하다)란 제목의 보도에서 'alleged sexual harassment'(제기된 성추문 의혹) 라고 신중하게 표현했습니다. 성폭력 사건 폭로자에 대해서는 기자가 직접 victim(피해자)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accuser(고소인) 또는 secretary(비서) 등의 행위 또는 직책으로 표현했습니다. 다만, 김재련 변호사가 '피해자'라고 언급한 것에 부분에한해 피해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전했다. 해당 문장은 아래와 같다. "Kim said the chat records stored on the victim’s phone were submitted to the police as evidence"(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의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던 기록을 경찰에 증거로 냈다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역시 '피해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보도했다. 2020년 7월13일 뉴욕타임즈는 '‘I Felt Defenseless’: Seoul Mayor’s Secretary Speaks Out About Alleged Abuse'("무력감을 느꼈습니다":서울시장의 비서가 성폭력 의혹을 제기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기사는 비교적 충실하게 고소인의 주장을 전했지만 '피해자'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alleged abuse'(제기된 성폭력)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 것에서 보듯이, 성추문을 확정된 사실처럼 전하지 않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정치인 성추문 사건만 이렇게 보도하는 게 아니다. 자국에서 벌어진 사건 등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거리두기 용어'를 사용한다. '미투 사건'을 촉발한 2017년 '할리우드 제작자 와인스타인의 여배우 성폭력 사건'에서도 언론은 초기에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고소인' 또는 '고소인 이름'을 사용해 보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법적 분쟁이 끝난 현재에는 언론들이 이 사건 보도 시 '피해자'라는 용어를 과감하게 쓰고 있다. 

와인스타인 성추문 관련 최초보도를 한 뉴욕타임즈는 2017년 10월8일 "Harvey Weinstein Is Fired After Sexual Harassment Reports"(하비 와인스타인이 성추문 관련 조사 이후 해고됐다)제목의 기사를 냈다. 다만, 이 기사 어디에서도 '피해자'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와인스타인 관련 '성추문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설명만 할 뿐이다. 

뉴욕타임즈 첫 보도 이틀 뒤인 2017년 10월10일 뉴요커지는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배우의 인터뷰를 싣는다. 그러나 이 보도(From Aggressive Overtures to Sexual Assault: Harvey Weinstein’s Accusers Tell Their Stories-와인스타인을 고소한 사람이 자세한 성폭력 내용을 털어놓다)에서도 기본적으로 고소인(accuser)또는 그녀(sh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기사 속에서 '피해자'라는 단어는 뭉뚱그려진 의미로 사용되거나 인터뷰에 응한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가 직접 피해자라고 언급했을 때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드리겠다.

△Some employees said that they were enlisted in a subterfuge to make the victims feel safe. (어떤 직원들은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집단으로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The thing with being a victim is I felt responsible,” she said. “Because, if I were a strong woman, I would have kicked him in the balls and run away. But I didn’t. And so I felt responsible.” She described the incident as a “horrible trauma.” (“피해자가 된 것 자체만으로 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르젠토가 말했다. “제가 강한 여자였다면, 그자의 성기를 걷어차고 달아났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임감을 느꼈죠.” 그녀는 이 사건을 ‘끔찍한 외상’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현재 언론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victim)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고 피해자와 와인스타인과의 법적 분쟁이 끝나가는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지난달 30일 보도의 제목은 'Harvey Weinstein’s Victims Entitled to Compensation From $19 Million Fund'(하비 와인스타인의 피해자들은 1900만 달러 기금에서 소송비용 등에 쓰인 금액의 보상을 받게 될 것 같다)이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관련 각종 '성추문 보도'에서도 언론은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의 진보언론 <가디언>지는 2016년 'Jessica Drake:Porn star is 11th woman to allege Trump sexual misconduct(포르노 스타 제시카 드레이크:부적절한 성추행 의혹으로 트럼프를 고발한 열한 번째 여성) 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배우 '제시카 드레이크'가 트럼프로부터 과거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자세히 전했지만 '고소인'(accuser)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추행 뒤 살해당한 여군 '바네사 길렌'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사건에서도 그러나 미국 언론은 아직 피해자(victim)이란 용어 사용에 신중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11일 'Vanesa Guillen may have faced harrassment before her disapperance and death, Army says(바네사 길렌은 성추행 당한뒤 사라진 것 같다고 군당국이 밝혔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보면, 기사 어디에도 '피해자'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네사 길렌'이라고만 건조하게 표현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당사자는 이름이 알려져있지 않기에 언론이 A씨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같은 맥락 같다. 주목할만한 건, 조사를 마친 미 육군조차 단정적으로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 육군 조사관은 'could have faced some harrasment'(성추행 피해에 직면했던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성추행하고 자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에 대해서도 기자는 가해자(perpetrator)라는 단어 대신 용의자(suspect)라는 법적 용어를 썼다.

여기까지 살펴본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 이렇게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피해호소인 또는 고소인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한 기자들은 그 나라에서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는지 궁금하실 것 같다. 일단 '2차 가해'라는 말 자체가 해외에는 없다. '2차 가해' 용어는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낡은 인식을 바꿔보고자 2000년대 초반 여성주의 운동 내부에서 캠페인성 용어로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함과 동시에 조작 미투도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언론은 미투 폭로자와 지목된 가해자 쪽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양상을 띈다.  

해외 언론이 '피해자'라는 용어를 섣불리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저널리즘적으로 꼭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회의 문화와 논쟁 양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한국의 언론계에는 '미투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최선인지 질문하는 것조차 봉쇄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징계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일은 비단 강진구 기자를 떠나 우리 언론계 전체의 불행이다.

문화방송 신입기자 시험 2차 가해 논란을 두고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2020년 9월14일 노컷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미 한 차례 정리가 된 피해호소인 용어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어 신입기자 공채에 지원한 응시생들에게 질문으로 던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대중은 이러한 주장하는 언론단체에 물어야 한다. '과연 피해자 용어가 정리된 것이 맞느냐고. 그리고 그 정리는 누가 하는 것이냐고. 근거는 무엇이냐고.' 다음 연재에서는 피해자중심주의 용어의 기원을 살펴보며 언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하는지 살피겠다.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  repo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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