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적폐청산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28일까지 추모주간 선포…마사회 적폐청산·마사회법 개정 촉구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들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문중원 열사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평화나무)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들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문중원 열사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적폐청산을 기치로 야심차게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이지만, 사회적참사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와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재발방지 대책과 제도 개선은 지금까지도 제자리걸음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지도 50년이 지나고 정부에서 훈장을 추서하는 시대가 됐지만 ‘오늘날의 전태일’들은 가족들에게 건넨 “갔다 올게”라는 평범한 인사조차 끝내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가오는 11월 29일 1주기를 앞둔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운영을 고발하는 A4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문중원 열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중원 열사가 기수로 일했던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이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2005년 개장한 이래로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반복됐다.

마사회는 징계권, 면허권, 면허갱신권, 기승권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부당한 지시라도 기수가 거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들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마사회가 가진 권한을 분산하고 경마산업의 주요 구성원인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중원 열사의 장례식은 한국마사회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긴 후 102일 만에 노동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지난 2월 27일에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상경한 유가족들과 대책위가 자리했던 정부서울청사 앞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및 농성장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가까스로 한국마사회와 지난 3월 6일 ▲3개월 안에 부산·경남 경마 시스템 분석 연구용역 진행 ▲경쟁성 완화·기수 건강권 보호 등 제도 개선 ▲책임자 처벌 등을 골자로 한 ‘부경경마기수 죽음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를 도출했지만 마사회 측에서 장례식 직전까지 공증을 거부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연구용역 수행과 조교사 개업 심사 폐지 여부만 확인될 뿐 나머지 합의사항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들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문중원 열사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회, 마사회를 향해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노동권 보장과 재발방지 대책 이행을 촉구했다.

유가족 발언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문중원 열사의 부인 오은주 씨는 슬픔으로 인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채 1주기를 앞둔 심경을 전했다.

오은주 씨는 “2019년부터 11월은 저에게 가장 아픈 달이 됐고, 겨울은 가장 아픈 계절로 자리 잡았다. 1년이란 시간이 야속하게 빨리도 흘러 저는 다시 여기 이 자리에 섰다”며 “작년 11월 29일 제 남편은 15년간 부산경마장 기수로 일을 하다 경마장 내 부조리와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마흔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아직도 믿기 힘든 기억”이라고 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죽음은 외면한 채 온라인 마권 판매 합법화를 통해 경마산업 매출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마사회도 질타했다. 오은주 씨는 “남편이 떠나고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동안에도 한국마사회에서는 죽음의 경주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죽음의 경주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공기업 한국마사회의 잘못된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본다”며 “죽음의 경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올바른 제도 개선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오은주 씨는 “더 이상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의 열사는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 모든 노동자, 시민들은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노력하고 간절히 소망한다. 작지만 이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들의 전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가족 대표로 발언을 준비 중인 문중원 열사의 부인 오은주 씨. (사진=평화나무)
유가족 대표로 발언을 준비 중인 문중원 열사의 부인 오은주 씨. (사진=평화나무)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문중원 열사의 비극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는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주환 위원장(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참한 삶들이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처참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특수형태근로(특수고용) 종사자의 규모추정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최소 166만명에서 최대 221만명으로 추산된다. 김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는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죽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고 문중원 열사도 그런 특수고용노동자의 한 분 이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뒤늦게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겠다고 연일 발표는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대로 무엇 하나 되어가는 것이 없다”며 “여당 대표가 나서서 합의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 또 두 분의 노동자가 한국마사회에서 돌아가셨다”고 한탄했다.

이어 “문중원 열사가 바로 전태일이었다. 진정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그동안에 약속했던 마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합의사항을 이행하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문중원 열사 1주기 추모주간의 일환으로 마사회법 개정을 위한 워크샵도 진행된다. 25일 오후 2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15층 교육장에서 한국마사회의 공공성 강화와 기수 마필관리사의 인권 확보 측면에서 마사회법 개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조미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한국마사회 공공성 강화’, 명숙 상임활동가(인원운동네트워크 바람)가 ‘기수, 마필관리사 인권·노동권 강화’, 김덕현 변호사(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법률원)가 ‘한국마사회 과도한 권한 해소’ 등을 주제로 발제할 예정이다.

문중원 열사의 유가족들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공공기관 마사회를 개혁해 더 이상 죽음의 경마로 기수들이 죽는 일이 없도록, 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겠다”며 “마사회에게 합의사항을 완전히 이행하게 하고 마사회법을 개정해 기수와 말관리사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조리를 고발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문중원 열사 1주기 추모기간으로 선포한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한국마사회의 혁신과 마사회법 개정, 합의사항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24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관으로 1주기 추모문화제, 26일 ‘합의사항 완전한 이행 인증샷 집중의 날’, 27일 렛츠런파크서울 앞 중식 선전전, 28일 14시 양산 솥발산에서 ‘문중원 열사 묘역 참배’, 17시 30분 부산역 광장에서 ‘1주기 추모문화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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