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이라 예산 편성 힘들다는 기재부…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 “경찰·군인 아니면 국가의 보호 기대할 수 없나?”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는 8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예산을 전액 삭감한 기획재정부를 규탄했다. (사진=평화나무)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는 8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예산을 전액 삭감한 기획재정부를 규탄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차가운 바다 속에 잠긴 사랑하는 가족의 유해라도 찾으려는 스텔라데이지호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수색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지난 9월 25일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와 여·야를 불문한 국회의원들의 관련 예산 편성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불가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벌어진 일이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일위원회도 유가족들의 끈질긴 설득과 외통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100억원의 예산을 증액했지만 결국 기재부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는 8일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재부가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비비 편성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의 1호 민원이었던 스텔라데이호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의 결단도 촉구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니다. 침몰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또 다른 유사 사고를 막아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는 정당하다”며 “1차 심해수색 당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유해를 보고도 데려오지 못한 그들의 피맺힌 절규를 이제는 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안일환 기재부2차관이 지난 11월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2차 심해수색의 당위성과 관련 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이나 경찰이 아닌 민간인의 사고에는 국가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규탄했다. 또 기재부가 지금이라도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비비 편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대책위는 “민간인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사고를 당했을 때 무엇이 잘못되어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하고, 또 다른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이를 포기한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대표(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작년에도 기재부의 반대로 심해수색 예산이 0원이 됐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바다 속에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9월에 진행된 공청회를 통해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을 정확하게 밝힐 수 있는 기술과 장비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선원 11명의 유해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조타실이 훼손되지 않고 상당히 온전한 상태로 해저 면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2차 심해수색을 진행하면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상규명과 함께 유해 수습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허 대표는 “경찰이 아니고 군인이 아니면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건가? 세금은 내고 국방의 의무는 다하면서 유사시에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하나”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배웠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기획재정부는 망언을 하면서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건가. 기재부는 지금이라도 조속하게 조건 없이 예비비를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기재부 “작년에도 그 입장이었고, 현재도 변함없다”

하지만 평화나무 취재 결과, 대책위의 엄중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재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관계자는 8일 평화나무와의 통화에서 “예결위 종합정책 질의 때 차관님이 발언했던 그 이상의 입장은 없다. 작년에도 그 입장이었고, 현재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보고서 결과에 따라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가능성에 대한 여지는 남겼다. 이 관계자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과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에서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결과에 따라서 귀책사유나 부실했던 점이 있다고 했을 때 국가가 필요하다면 (2차 심해수색을) 검토할 수 있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입장의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저희가 심정적으로 (예산 편성을) 하는 게 아니다. 만약 한다면 수백억이 소요될 대형 사업이지 않나. 원칙에 따라 일을 해야 된다. 국민들이 낸 세금의 문제”라며 “해양심판원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예비비 편성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유가족들은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의원들의 요청마저 무시한 기재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특별조사보고서가 언제쯤 나올지 알 수 없고,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청구 역시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관계 부처끼리 서로 떠넘기거나 시간을 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경주 대표는 이날 평화나무와의 통화에서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결과 보고서가 나왔고 심판청구를 한 상태지만 10개월째 심판기일이 잡히지 않고 있다”며 “또 심판청구에서 법적 효력이 있는 재결을 받더라도 (폴라리스쉬핑이) 항소하게 되면 중앙해양안전심판원(2심), 고등법원(3심), 대법원(4심)까지 가야 한다. 앞으로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국제해사기구(IMO)에 제출해야 하는 특별조사보고서도 스텔라데이지호 사고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허 대표는 “특별조사보고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보고서를 쓴다고 했다가 1차 심해수색 이후로 미루고 2차 심해수색 진행 여부를 살피며 또 미루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기재부가 특별조사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것은 시간끌기밖에 안 된다. 중앙해심원도 보고서에 따라 2차 심해수색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니 보고서를 더 연기하지 않겠나”고 했다.

허 대표는 “스텔라데이지호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민원이었다. 이 민원이 임기 내에 마무리된다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재부는 국회에서 1, 2차에 걸쳐 나온 공신력 있는 공청회 결과까지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단의 결단이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국민서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이 진행된 청와대 분수광장에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자리에서 국민서명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이 관계자는 다른 시민사회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현장 수령에 난색을 표했다. 대책위는 항의 차원으로 청와대까지 도보로 이동해 국민서명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횡단보도도 넘지 못하고 경찰에 의해 제지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후 진행된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대책위는 2차 심해수색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과 협조를 재차 당부하며 시민사회수석 비서관과의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경찰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국민서명을 전달하려는 대책위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경찰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국민서명을 전달하려는 대책위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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