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피해 유가족 12일째 단식농성
“산재사고 예방 위해 법 제정 필요…자식 같은 노동자들 죽음 내몰고 싶지 않아”
22일 개신교 시민단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길”

지난 1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중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왼쪽은 함께 단식중인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진=평화나무)
지난 1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중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왼쪽은 함께 단식중인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이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한다고 해서 제 아들(故 이한빛 PD)이 다시 살아날 일도 없고요. 용균이가 다시 살아날 일도 없습니다. 다시는 저희 자식 같은,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싶지 않아서 제가 이렇게 곡기를 끊고 여기 와서 농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이사장(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애끓는 외침이다. 임시국회에 돌입한지도 벌써 13일이 지났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지난 17일 평화나무와 만난 이용관 이사장은 단식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에는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함과 엄중함이 가득했다.

이 이사장은 22일 기준으로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단식 12일차에 돌입했다. 국회 앞에서도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이 16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경영자의 안전 의무를 강화하자는 취지지만 경제 단체들은 과잉 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단식 농성중인 산재 피해 유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자 경제 단체들의 우려와 달리 처벌보다는 예방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매년 한 2,000명 이상이 산업현장에서 죽어나가고 10만명 정도가 산재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그게 수십 년 동안, 30년 이상 지속돼왔던 것"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기업의 문화도 바꾸고, 죽음이나 산재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라도 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 저희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예방을 위한 법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더 이상 죽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위원들한테 ‘철저한 조치를 취하라’(고 하셨는데) 이 이야기는 모든 대통령이 모든 정권에서 했던 이야기다. 그거 하지 말라는 이야기 안 한적 없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소극적인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이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한다고 해서 제 아들(故 이한빛 PD)이 다시 살아날 일도 없고, 용균이가 다시 살아날 일도 없다. 다시는 저희 자식 같은,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싶지 않아서 제가 이렇게 곡기를 끊고 여기 와서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재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법안 심의를 위한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실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회기 내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지만 인과관계 추정과 공무원 처벌 규정 등 일부 쟁점을 두고 내부적으로 여전히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개신교 시민단체들은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평화나무)
개신교 시민단체들은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평화나무)

 

개신교 시민단체 “임시국회 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연내 제정을 위해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노동계, 전문가들의 지지 성명 발표 및 기자회견도 잇따르고 있다. 22일에는 개신교 시민단체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개신교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노동존중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고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포함 ▲산재사망이 집중되고 있는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한 유예기간 없이 전면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사회정의와 신앙의 이름으로 국회에 강력히 요구한다. 더 이상 기업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지 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하라”며 “우리 국민은 이 충분한 시간을 국회에 주었다. 이제 와서 연기가 필요하다는 이런저런 주장들은 변명일 뿐이다. 그동안 피눈물 흘려온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달라.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국회가 바란다”고 했다.

박득훈 목사(평화누리 공동대표)는 “노동자들은 이미 자기의 하늘같은 목숨으로 명료하게 답했다. ‘산재사고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대부분 ‘하청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다’, ‘노동자 산재사고 위험은 하청이 원청보다 8.9배나 높다’”며 “여러분들이 그럴싸한 논리와 법리로 말할 때 죽어가는 노동자들과 그 유족은 땀과 눈물과 피로 말하고 있다. 제발 그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 달라. 그래서 노동자들도 살고 여러분도 살고, 나라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회 정문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6일째 단식 중인 김주환 위원장은 현장증언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2020년에도 여전히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일하는 노동자,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에 정부는 허다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치권이 권력다툼을 하는 사이에 현장에서 죽음의 컨베이어벨트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처참한 현실을 방치하고 두고 봐야 하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있다. 이제는 죽음의 컨베이어벨트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교회개혁실천연대, 생명평화연대, 영등포산업선교회, 예수살기, 좋은교사운동, 청어람ARMC, 평화누리, 희년함께 등 개신교 시민단체들과 교회들이 함께했다.

한편,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4시 국회 정문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도회는 방역수칙 강화에 따라 기도회 순서자들만 모이며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중계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함께 23일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3개 종교 1,000인 선언’을 진행 중이다. 참여를 원하는 종교인은 구글폼을 통해 연서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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