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추미애에겐 강한 잣대, 윤석열엔 예외
실제 그대로를 보도했다면 큰 문제 됐을까?

 

김태현 아주경제 기자
김태현 아주경제 기자

“우리는 오늘날 ‘쩌날리즘’이 차라리 실제의 뉴-쓰를 실제 그대로 보도하여 주기를 바라는 자이다. 그리고 남의 것이나 자가의 것이냐를 막론하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보도하였으면! 하고 바라는 자이다. 

”1935년 9월 창간된 ‘쩌날리즘’의 집필진은 자신들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났지만, 언론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정파적 이익에 따라 ‘남의 것이나 자기의 것이냐’를 따지는 기사들이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조국·추미애 두 법무부 장관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쏟아져 나온 기사만 본다면 이 두 사람은 대역 죄인이다. 이 때문에 본질에 큰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은 비리 혹은 범죄가 드러날까 봐 조 전 장관이나 추 장관 개혁에 나선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하고 있다. 언론이 실제 그대로 뉴스를 보도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지난해 ‘조국 사태’로 명명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죽이기 사건부터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족에 대한 보도 행태, 검찰개혁을 천명하면 바로 비리 관련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들을 보면 사실상 권력기관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권력을 지켜주기 위해 언론이 힘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해가 된다. 특히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적절한 시기에 나오는 흠집 내기 기사를 보면 더 그렇다. 최근 이낙연 대표가 공수처 설치를 촉구한다는 발언을 한 직후 ‘옵티머스’에 연루가 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정한 사실은 있을지언정 진실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맞을 수도 있겠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다른 매체의 한 기자는 필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김 기자님 지난해 조국 관련 기사를 썼던 사람들은 반성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검찰이 얘기해 주는 대로 썼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더라고요.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을 서거하게 만든 언론, 그리고 언론의 책임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 이를 받아쓰는 언론의 행태는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조 전 장관의 가족 중 누군가 크게 다치는 게 언론이 원했던 모습이었을까. 2009년의 논두렁 시계가, 2020년 표창장이 되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조 전 장관 일가에게 특히나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던 언론은 윤석열 검찰총장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특히 윤 총장의 처가와 관련된 비리들은 보도되면 금세 사라진다. 단순히 사라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종종 ‘윤비어천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윤석열, 눈 항상 충혈…몸무게도 4~5kg 줄어 ’지인들끼리 앉아서 얘기하거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이 쓴 글이 아니다. 민족정론지를 자부하는 한 유력 보수 매체가 썼던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황당한 것은 이 기사는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권 지휘가 있었던 시기다. 윤 총장이 사건을 제대로 감찰하거나 수사할 수 없게 만들어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것. 하지만 이 같은 앞뒤 내용은 사라졌다. 오로지 정파적 이익에 따라 현 정권이 자신들을 향한 칼날을 피하기 위해 윤 총장을 압박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한동훈 연구위원이‘검언유착’에 연루된 것도 마치 정치적인 공작에 당한 것인 양 표현했다. 심지어 검언유착을 수사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기자들이 당시 이동재 전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엮으려고 했던 점, 그리고 최근에 공개된 녹취파일에서는 신라젠과 큰 관련이 없었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내용도 파고들었던 것들은 대단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심지어 민족 정론지를 자부하는 한 보수 유력매체의 기자는 “이동재가 유죄라면 대한민국 대부분 기자들은 다 유죄다”라는 말을 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이동재 전 기자에 대한 재판기사는 검찰에 대해 혹은 권력기관에 대해 기자들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여지없이보여준다.

다른 재판과는 달리 유독 ‘검언유착’ 재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검언유착 당사로서의 가치가 없다. 특히 누군가의 말 하나가 기사의 출처라면 그 기사는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 취재에 나선 기자가 한 사건에 대해 취재를 하고 관련된 근거들을 찾아다니는 직업은 말 그대로 인고의 시간이다. 이후 데스크를 통과해 세상 밖으로 나온 기사를 보면, 그 취재 과정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가슴 뛰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출고된 이후 더 많은 데스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많은 전문가가 있다. 항상 기자들보다 해당 사건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근거가 없거나 확인이 부족한 기사는 온라인상에 있는 수많은 데스크를 통과할 수 없다.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 되고있는 ‘좌표 찍기’는 오히려 온라인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한 기자들에 대한 비판이자, 언론의 신뢰를 다시 찾기위해 넘어야 하는 산이다. 특정 정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기자가 세상에 선보인 기사들은 늘 비판을 받아왔다.이 때문에 기사를 쓰기 어렵다는 기자들은 그간 펜의 무게를 몰랐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기사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무게가 있다. 펜은 칼보다 무섭고, 팩트는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권력은 고이면 썩게 되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더이상 언론일 수 없다. 기계적 중립, 선택적 중립은 결국 언론 신뢰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정파적 이익에 따른 선택적 정의, 선택적 보도는 결국2020년 ‘쩌날리즘’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 언론을 비평하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김태현 아주경제 기자 

“우리는 오늘날 ‘쩌날리즘’이 차라리 실제의 뉴-쓰를 실제 그대로 보도하여 주기를 바라는 자이다. 그리고 남의 것이나 자가의 것이냐를 막론하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보도하였으면! 하고 바라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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