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 오염시키는 위험한 ‘프로보커추어’ 전격 분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 책방에서 열린 경제사회연구원 세미나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 : 이념·세대·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2020.7.2 (사진=연합뉴스)<br>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 책방에서 열린 경제사회연구원 세미나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 : 이념·세대·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2020.7.2 (사진=연합뉴스)

 

진중권 전 교수는 갑자기 왜 저렇게 됐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니면 ‘원래 저런 사람’이라며 냉소하는 사람도 많을 테다.

나의 경우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을 시작으로 최근 들어 정부 여당의 몇몇 인사들을 한국 사회의 모든 적폐가 의인화된 존재로 몰아가고 전례 없이 강한 표현을 써가며 비난하는 논평을 수없이 내면서 명실상부한 반문 반민주당 논객으로 거듭났다. 

사실 진중권은 참여정부 시기에도 정부와 여당을 향한 수위 높은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터라 현 정부를 향해서도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안 그랬으면 더 이상했을 것 같다. 

어찌됐건 리버럴 좌파 성향 논객으로서 집권 세력에 불만족스러우면 쓴 소리를 해주는 것은 건강한 공론장을 위해 권장될 일이다. 그런데 21대 총선 직후 터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폭로 건에 관하여 한 마디 보태던 중에 진중권은 ‘오거돈이 야당 소속이었어도 폭로를 총선 후로 미루었을까’라는 의문을 덧붙이며 피해자의 뜻에 완전히 반하는, 2차 가해에 준할 만한 정치적 해석 혹은 음모론을 개진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반정부 스탠스를 넘어 아예 자유주의 논객으로서의 최후의 보루마저 내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지금 보면 이런 우려는 차라리 지난 1년간의 그의 행보를 최대한 선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진중권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일본닛코 동조궁에 새겨진 세 마리 원숭이 상 사진을 올리며 귀를 막고 입을 막고 눈을 가리는 모습을 각각 이낙연 대표, 이재명 지사, 문재인 대통령에 빗댔다. 눈,귀,입을 가린 원숭이의 이미지는 휴대폰 이모지로도 있을 정도로 보편적으로 쓰이고 정치 평론에는 수없이 호명되어 왔기 때문에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을 원숭이에 빗댄 것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후속 게시물로 실제 원숭이세 마리 사진을 올리며 ‘민주당 3몽키즈’라고 추가적으로 비아냥댄 것이나그 이전에 ‘법무나이트’, ‘춤이애’, ‘부킹 100%’ 운운하는 게시물 등은 풍자, 패러디로서 일말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어떤 가치를 설파해야 하는 비평가로서의 논평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 정치게시판에 각종 ‘밈’meme들을 올려놓고 ‘이거 완전 ○○아니냐 ㅋㅋ’거리는 식으로 특정 정파를 자극하는 일개 시정잡배의 도발 행위와 진배없다.

예컨대 사회적 발언을 일절 하지 않던 유명 연예인이 어느 날 위와 같은 게시물을 올렸다면 그에 대한 보도는 연예계 가십으로서 일말의 가치는 있었을 터이다. 진중권이 개인적으로 본인 소셜미디어에 어떤 게시물을 올리든 자유이며 간섭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가볍게 올린 사진 및 문장 형태도 갖추지 않은 짧은 코멘트를 유명한 비평가이자 저술가인 진중권 전 교수라는 이름으로 유력 언론매체에서 인용 보도하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보도의 가치가 없는 게시물을 인용하며 비평가 선생 가라사대 하는 것은 비평을 일개 ‘밈’과 다름없는 것으로 격하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여간 국회 정치, 경제, 부동산, 교육 등 어느 부문 할 것 없이 정부 여당 관련 소식이면 늘 진중권의 논평이 한 마디씩 인용되었다. 진중권의 전공이 미학과 언어철학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비전공자의 논평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서 그와 무관한 ‘셀럽’의 의견이 남발되는 동안 정작 해당 분야 전문가의 진지한 의견이 가려진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진중권이 제목에 쓰여 있는 기사들 대다수는 그저 ‘어뷰징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군소 인터넷 언론매체와 유력 보수 언론매체는 각자 다른 이유로 진중권을 꾸준히 호명한다. 전자의 경우는 당대 가장 화제의 인물로 회자되는 사람을 어떻게든기사에 억지로 끼워 맞춰 검색 노출지수를 높이는 꼼수의 일환이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조중동 등 유력 보수언론은 진중권을 차도借刀삼아 휘두른다. 한편으로, 흔히 범凡여권으로 지칭되는 정의당 당원 출신의 진보 성향 비평가가 여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보도함으로써 ‘진중권마저 비판하는 문재인 정부’라는 여론을 유도한다. 다른 한편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나 여권 인사들을 향한 강한 수위의 비난을 아웃소싱 함으로써 책임은 피하면서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든다. 이에 더해 조국 전 장관부터 추미애 장관까지, 이들에 대한‘진보 진영 내부’로부터의 비판을 끊임없이 노출시킴으로써 여권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고 더 나아가 이들에 맞서 상대하는 몇몇 인물들을 당대 정치사의 주연으로 격상시키는 등 이중삼중의 효과를 본다. 하지만 ‘진중권 저널리즘’이 1년 이상 지겹도록 지속되면서 진중권이 갖고 있던 상징자본은 점점 고갈되고 있다. 이른바 ‘약발’이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약간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진중권은 ‘원숭이 도발’을 던지고 바로 다음 날 그의 중앙일보칼럼 말미에 다시 닛코의 세 원숭이를 언급하면서 떡밥을 회수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문제의 게시물은 일종의 ‘티저’였던 셈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등은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올라온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떡밥을 날것 그대로 덥석 주워 담았다. 단지 도발적인 게시물을 올린 것만으로 그 전후 맥락을 살피기도 전에 기사를 내버려 ‘진중권이 대통령을 원숭이라고 했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만 전파한 것이다.

유력 언론매체들은 그저 ‘반문’이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민 교수는 처음부터 화제력이 떨어져 논외로 치고, 가수 나훈아의 공연 중 발언을 정부 비판 발언으로 견강부회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반정부 메시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호소력 있는 스피커를 찾다 못해 정치권 바깥까지 기웃거리다가 빚어진 촌극이다. 반문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다가 최근 여당에서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을 곧바로 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올리는 행태가 차라리 양호한 것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아무리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고 해도 탈당신고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여당 출신 인사를 일거에 유력 야권 인사로 올린것은 기존 야권에서 쓸 만한 인물을 찾지 못해 생긴 조바심의 발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이제는 ‘진중권 저널리즘’의 약발이 다해가고 있기때문에 보수언론들은 ‘진중권 이후’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토 여론은 강해지지만 국정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야권에게서 대안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보수언론들이 정치권 바깥에서 어떤 사람을 그들의 데마고그로 내세울지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 성향 학자 및 비평가들은 정부를 비판하 는연구 결과나 논평을 낼 때, 혹은 소셜미디어에 개인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때 사용하는 논리나 수사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것들이 진지한 논의의 측면에서 갖는 의미와 상관없이 보수언론에 의해 그들의 구미에 맞게 맥락을 잘라낸 인용으로 전유되어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차도로 이용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졸지에 자신도 모르게 보수 세력의 ‘대변인’이 되어 ‘쓸모 있는 바보’로 전락할 수 있다.

김내훈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포퓰리즘 연구

 

#이 글은 쩌날리즘 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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