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5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심사…여야, 8일 국회 본회의서 중대재해법 처리 합의

산재피해 유가족들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연합뉴스)
산재피해 유가족들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연합뉴스)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산재피해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의 염원이 담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경영책임자·원청·공무원 처벌’, ‘인과관계 추정’ 등을 명시하고 있는 원안에서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안에서는 발주처와 원청의 책임을 줄이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준도 대폭 낮췄다. 또 ‘인과관계 추정’ 부분을 삭제하고 산재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50인 미만·50~100인 사업장’에게 유예기간까지 주고 있어 각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족들은 김미숙 이사장(김용균재단)과 이용관 이사장(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을 시작으로 해를 넘겨가며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5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정부안이 아닌 원안 그대로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안전보건담당자가 아닌 경영책임자에게 책임 ▲하한형 도입 ▲원청 처벌 ▲직업병·과로사·일터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책임 ▲공기단축압박·위험공법사용 요구 등 발주처 처벌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10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 반대 ▲반복적 법 위반·조사 방해 등 기업에게 인과관계 추정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불법적 인허가 및 부실한 안전점검 등 공무원 책임자 처벌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실습 도중 일터괴롬힙으로 사망한 고 김동준 학생의 어머니 강석경 씨는 괴롭힘 문화를 시정할 수 있는 것은 경영주뿐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드시 경영자 처벌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김동준 학생은 지난 2014년 1월 20일 마이스터고 3학년 2학기 때 CJ 진천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선임들의 집단 괴롭힘과 폭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석경 씨는 “어린 학생이었던 동준이를 현장실습하는 회사도, 현장실습을 보낸 학교도 지켜주지 않았다”고 했다.

일터괴롭힘이 현장관리자와 경영책임자의 묵인 속에 일상적으로 벌어졌다고 했다. 강 씨는 “동준이는 회식 중에 일을 잘 못한다고 폭행을 당했다. 5년차가 3년차를, 3년차가 1년차를 폭행하는 식이었다. 괴롭힘과 폭행이 하나의 기업문화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며 “그런데도 CJ는 동준이가 죽었을 때, 직원들끼리의 불미스런 다툼 때문에 벌이진 일일 뿐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동준이의 죽음이 불우한 가정사 때문이라는 둥, 아이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둥 헛소문을 내며 저희를 두 번 죽였다”고 했다.

일터괴롭힘 문제는 단순히 폭력적인 개인들의 문제가 아닌 기업 문화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경영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씨는 “동준이가 죽던 해에 CJ에서는 3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보도에 난 것만 이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직접 책임이 있는 동료나 선임 몇 명 처벌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과도한 노동을 해결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괴롭힘 문화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려면 경영책임자가 직접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방치하는 기업주를 꼭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씨도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그 취지와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높아졌다”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안전 보건 담당자에게 국한 시키고 꼬리자르기로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업은 경영상의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방치할 것이며, 비극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익찬 변호사(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도 “어떠한 재해 발생도 단 한 순간의 실수가 원인인 경우는 없다. 그러한 재해가 발생하기까지 위험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의사결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과가 발생한다”며 “그 의사결정은 현장관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경영자들이 하는 것이거나 현장에서 잘못된 의사결정들이 이뤄지고 있더라도 이를 법에 부합하게 바로잡는 것이 경영자의 책임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쳐서 바로잡자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4년, 50~100인 사업장은 2년 동안 유예기간을 두고, 원청과 발주처의 책임을 줄이려는 정부안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김태규 씨의 누나인 김도현 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원청과 발주처 처벌이 꼭 포함되어 노동자들의 죽음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 씨는 “많은 건설 산재사고가 발주처 때문에 일어난다. 한익스프레스처럼 무리하게 공기단축을 요구하고, 건설비용을 깎아서 안전이 지켜지지 않도록 하는데 발주처의 책임이 크다. 아예 위험한 설비나 공법을 발주처가 요청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다 알 수 없었지만 태규네 발주처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태규가 죽어도 미안한 건 없고, 공사 지연되는 것 가지고 저에게 타박하던 곳이었다”며 “하지만 발주처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현재 산안법에는 발주처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발주처는 고사하고, 하청업체 대표도 처벌받지 않았다. 하청업체는 현장 소장과 차장이 각각 징역 1년과 10월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언론에서 많이 보도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처벌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장 “국회, 본래 취지 퇴색시키지 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해야”

종교계에서도 정부안이 아닌 원안 그대로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대한성공회를 대표해 이경호 의장주교와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천제욱 의)이 국회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지지와 연대의 뜻을 산재피해 유가족들에게 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이건희 목사)도 지난 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은 “매일 6~7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매년 2,0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고 있으며, 매년 재해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업재해율은 화려한 번영 이면에 가려진 뼈아픈 진실”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그 법의 온전한 제정을 위하여 사회 각계가 호소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이번 임시회기 동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그 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어떤 규모의 사업장이든 어떤 고용조건이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갖가지 유예조건으로 본래 취지를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허울뿐인 법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이정표를 세우는 심정으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5일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오는 7일과 8일 본회의를 열고 백신 수급 및 방역과 관련해 긴급 현안 대정부 질문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한 주요 민생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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