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시사평론가 / 평화나무 이사장
김용민 시사평론가 / 평화나무 이사장

신문 발행 부수를 조사해 광고주에게 알려주는 민간단체가 있다. 한국ABC협회이다. 그런데 협회 자료의 신뢰성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신문사가 작심하고 부수를 부풀려도 이를 검증하거나 제동할 실효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참작하고 최신 자료인 ‘2019년 발표(2018년분) 일간신문 172개사 인증 부수’를 살펴보자. 한겨레의 2018년도 발행 부수는 214,832부, 유료부수는 200,343부이다. 동종 종합일간지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크게 밀리지만, 문화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보다는 앞선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가 지난해 10월 ‘2020 한겨레 디지털 전환 제안서’를 내놓았다. 미디어오늘 등 보도에 따르면 제안서에 담긴 핵심 과제는 국민 후원자 10만 명 확보, 100% 디지털 시스템 구축, 500만 페이지뷰(PV) 달성으로 요약된다. 제안의 핵심 열쇳말은 그래서 ‘10x100+500’이다. 디지털 전환은 기사 작성방식까지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내재하고 있다. 예컨대 텍스트에서 이미지·동영상중심으로, 또한 링크를 최소 3개 이상 달아 개별 기사를 이슈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사 유통기한’이 짧은, 즉 호흡이 짧은 이슈를 능동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정치팀과 이슈팀 기사를 종이신문 제작에서 제외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종이신문은 중견급 기자들이 종일 생산된 디지털 기사 중에서 선택해 편집, 발행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편집국을 ‘통합 뉴스룸’, ‘뉴스룸’으로 각각 개편한 중앙일보·한국일보가 간 길이 그러하다. 한겨레는 이 전환을 조기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평가의 척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성과의 기준을 종이신문 발행·유료부수보다 인터넷 통신량(PV)을 우위에 두려 한다.

디지털 부서에서 일한 복수의 전직 기자는 10여 년 전인 2011년 하루평균 100만, 많은 날의 경우 300만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제안서에 따르면 한겨레 트래픽은 최근 ‘하루 PV 100만’ 벽이 무너진 상태이다. 9월에는 ‘주말 PV 50만’ 벽마저 깨졌고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발표하는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2010년 8.2%에 불과했던 PC 및 모바일을 통한 뉴스 시사 정보 소비 빈도는 2019년43.6%로 5배 신장했다. 그렇다면 확장된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한겨레는 도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안서는 한겨레 홈페이지와 모바일에서의 독자 이탈률이 높다고 지적하더니 “읽을 만한, 볼 만한 콘텐츠는 부족하고, 일단 들어온 독자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는 장치(관련 기사 링크 등)는 부실하다”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다른 기사로 트래픽을 넘겨주지 못하고 나 홀로 소비되고 끝나는, 정보도, 재미도, 의미도, 링크도 없는 콘텐츠가 많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곧 종이신문에 편중된 역량을 디지털에 분산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중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한겨레가 ‘탈종이 신문’을 명징하게 선언한 것은 아니다. 2021년에도 종이신문을 전담할 부서를 존속시키고, 종이신문 판형을 현행 신문 대판에서 절반 크기 즉 콤팩트판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을 제안서 안에 담았다. 사양화 일로의 지면 신문시장이지만 중위권이나마 신문시장 내의 점유순위, 점유율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 읽힌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건너간” 디지털 시장에서도 ‘진보 미디어의 맏형’ 지위를 얻기 쉽지 않겠다는 심산도 서려 있다. 그래서 지면 제작에 한발 걸치는 구조라면 ‘디지털 퍼스트’는 공언에 그칠 공산이 크다. 2018년에도 한겨레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제작 공정 변화’에 대한 자체 진단서를 낸 바 있었지만, 콘텐츠 생산 구성원의 ‘종이신문 제작 본위의 근성’을 고치지 못했다. 이번 제안서도 디지털화의 필요성만 강조하다 말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병존한다.

이 제안서에 중요한 것이 빠졌다. ‘소비자 신뢰 회복’을 도모할 방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성 주체는 한겨레 ‘국민후원’ 미디어추진단. 그런데 국민후원이라는 목표만 있을 뿐 내용은 부재했다. 사실 한겨레에게 독자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다. 박근혜 정권 말기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지던 2016년 부수 증가로 반짝 특수를 누리던 한겨레는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이른바 ‘덤벼라 문빠’ 사건 등을 계기로 약 2000여 부의 유료부수 상실이란 가공할 타격을 입었다. 당시 줄 절독행렬을 두고 한겨레 일각에서는 언론의 권력 비판 및 견제 기능에 무지한 정치적 진영주의 세력 준동 정도로 깎아내렸다. 그렇다고 ‘독자에 초연한 신문’을 전면화할 수는 없었다. 이는 ‘국민주 신문’으로서 한겨레 정체성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2009년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돌출된 ‘관 장사’ 발언 논란에 한겨레는 논쟁적 대응을 포기하고 독자 앞에 넙죽 사과한 바 있다. 요컨대 한겨레와 독자의 관계는 10월 8일 한국언론학회·한겨레신문 공동 주최 ‘신뢰받는 저널리즘 가능할까’ 세미나에서 권태호 부국장의 이 발언으로 잘 설명된다. “한국 신문의 정파 보도가 비판받지만, 저희로선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겨레의 정작 위기는 독자 아닌 저널리즘에 있어 보인다. 우상을 배격하고 진실을 추구하던 리영희 초대 논설고문의 유지는 지금도 변함없는 한겨레의 핵심 가치일까 하는 의문이다. 한겨레 젠더 데스크 이정연 기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이 발견된 7월 10일 트위터에‘피해자 연대’ 메시지를 요청하는 트윗을 올렸다. 박다해 기자는 이 트윗들을 이튿날 기사화했다. 박 시장 사태의 자초지종은 뒷전이었고 피(가)해자 규정에 바빴다. 11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조차 수사당국이 판단한 진상이 없음에도. 

한겨레는 창간 32주년 및 지령 1만호 발행 기념으로 ‘취재 보도준칙’을 제정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한겨레는 “단체 (...) 등의 보도자료, 홍보자료, 기자회견 등을 그대로 보도하여 자료 제공자 또는 기관의 논리에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2장 진실 추구2. 독립적 취재 2))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교차검증의 노력은커녕 피해자 옹호를 구실로 박 시장 성추행을 기정사실로 하더니 무분별하게 ‘2차 가해’ 주장을 펼치던 김재련 변호사를 옹호, 미화하는 기사까지 냈다. “논쟁 중인 사안,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 등을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은 허물어진 터다. 또한 “(예단과 편향 배척) 기자의 추정, 취향, 선호, 의견 등을 앞세워 예단하여 취재하지 않는다”(3. 사실과 의견의 구분 2))라는 다짐 또한 스스로 파기한 꼴이 됐다.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이선옥 작가는 “페미니즘 문제에 있어 한겨레 여성 기자들은 기자이기보다는 운동가에 가깝다. 윤리적인 제어장치가 없다. 한 여성 기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기가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든 발언을 기사로 썼다. 이에 대해서 지적받았는데도 반성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취재 보도준칙이 젠더 이슈에서만 예외라는 단서는 없었다. 내부적 토론과 성찰, 개선이 없는 한, 한겨레의 관련 기사는 품질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과거 한겨레 애독자였지만 “한겨레 계열사 언론으로부터 4년간 지속적인 린치”를 당했다고 밝힌 박진성 시인. 2016년 ‘성추행 가해자’로 낙인찍히던 그는 법원으로부터 모든 의혹이 허위임은 물론 가짜 피해자의 무고까지 법적으로 규명했다. 그리고 4년 동안 60군데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 보도를 받아냈다. 그러나 한겨레와 그 계열 매체는 단 한 차례도 ‘규명된 사실’ 앞에 허위 보도를 사죄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시인은 페이스북에 “윤석열에 대한 보도를 내보냈다가 윤석열이 항의를 하자 곧바로 대대적으로 정정 보도와 사과를 내보냈던 한겨레입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모습입니다. 위선적입니다. 토악질이 납니다. 이래서 한겨레가 독자들을 잃고 있는 겁니다. 본인들만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 제안에는 소비자 만족도 즉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 거기서 전술이 논의돼야 한다. 이를 외면한, 즉 들어갈 재료의 낮은 품질을 제친 채 통조림 크기에 천착한 우(愚)는 한겨레의 고민이어서는 안 된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 

# 이 글은 쩌날리즘 2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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