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씽크와이(ThinkWhy) 정치연구소장

 

"That i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at is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world. We see him like an obese turtle on his back, flailing in the hot sun, realizing his time is over”

“저게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저게 전세계에서 가장 힘 센 사람의 모습입니다. 뚱뚱한 거북이 뒤집어진 채로 뜨거운 태양 아래 버둥거리며 ‘아, 내 시간이 끝났구나’를 깨달아가고 있는 장면을 보고 계십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정 선거’타령이 이어지던 날 밤.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가 날린 말이었다. 생방송이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우리나라 기준으론 도를 넘은 수준이었으나 앤더슨 쿠퍼의 언행을 문제 삼는 여론은 일어나지 않았다. ABC, NBC, CBS 등 미국의 공중파 방송국들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중간에 끊었다. 미 방송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각 방송국의 앵커들은 앞다투어 “중계를 중단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를 외치며 생방송을 끊었다.

CNN만 끝까지 대통령의 기자회견장 중계를 이어갔다. 앤더슨 쿠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모습을 본 것은 단 한 차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참으로 슬프고 한심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는 어떠한 종류의 증거도 제시한 바 없습니다. 그가 인터넷에서 뭘 봤다느니 하지만”까지 말을 하고 잠시 끊었다 “That i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이어가며 뚱뚱한 거북이 이야기를 꺼내들은 것이다. He도 아니고 That이라니. 앵커의 분노가 생중계를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이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드러내게 했다. 2017년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간담회 현장. 청와대 출입 기자단은 원래 한광옥 비서실장과 오찬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대통령 신년기자간담회를 한다는 통보가 있었다. “카메라, 노트북, 휴대폰 지참 금지” 통보에 기자들은 묵묵하게 따랐다. 수첩공주다운 조치였는지 펜과 수첩의 지참은 허락해주었다. 많은 분들도 그때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대통령의 ‘말씀’을 경청하던 기자들이 생각나실 것이다. 아이엠피터님의 지적처럼 '그런데, 그런'이라는 말이 81번, '이렇게'가 34번 흘러나오는 가운데 기자들은 겸허하게 그 말씀을 듣고 받아 적었다.

미국의 방송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대통령이 저런 변명을 하는 자리였다면 “더 이상 가짜뉴스를 전해드릴 수 없어 여기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라고 하며 취재를 거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 언론은 그렇게라도 취재해서 대통령님의 말씀을 옮기고 싶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거짓말에 분노한 언론도 그의 말을 취재하지 않는 방식의 저항은 하지 않았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었다. 개표가 진행되던 첫날 밤, 백악관 이스트윙에서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었다.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이자 후보의 입장에서 본인 견해를 밝히는 자리였다. PBS(미국 공영방송)의 유튜브 중계를 통해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제목이 “WATCH: Trump makes false claims about continuing vote count(방송 중: 트럼프가 개표를 계속 진행하는 문제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였다. PBS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중립적이라 신뢰받는 언론이다. 자꾸 박근혜가 겹쳐 보이는데 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해경 해체를 느닷없이 주장하며 눈에서 눈물을 쥐어짤 때 방송사 자막에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관련 거짓 해명 기자회견 중’이라고 할 방송사를 우리는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역사를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한 끈질긴 탐사보도로 닉슨 대통령은 낙마했다. 그 후로는 언론의 대선 후보 사생활, 정치자금 사용내역 검증 등을 통해 무수한 후보들을 떨구어 냈다. 매서운 검증을 바탕으로 권력과 맞서 싸워온 결과였다. 

트럼프 후보의 등장은 이 문법 자체를 흔들었다. 이 상황에서 8800만 팔로워를 이끌고 혜성 같이 나타나 모든 주류 미디어를 ‘Fake news!(가짜뉴스)’라고 몰아 세운 트럼프가 준 타격은 생각보다 컸다. 트럼프는 밤낮으로 쉴새없이 뉴스를 쏟아냈고, 언론은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당연히 다른 정치인에 비해서 그에 대한 언급량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았고, 언론과 트럼프의 적대적 공존은 이어졌다. 트럼프의 ‘Fake news’ 전략은 먹혔다. 그가 가짜뉴스라고 공격하지 않은 폭스뉴스를 제외한 타 언론의 신뢰도가 그의 집권 전보다 하락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폭스뉴스를 보며 폭스뉴스에서 언급한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실시간 트윗을 날렸다. 기사가 나오고 트윗이 나오고 그것이 모아져 새로운 기사를 만들어내며 폭스-트럼프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폭스뉴스를 보며 손에 든 전화기에 울리는 트럼프의 트윗 알람을 통해 소통했다.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유권자가 늘어나고 지지하는 정치 집단에 따라 보는 언론사가 아예 나뉘어져버렸다. 서로의 팩트체크가 전달되지 않는 구조가 되어 진영 간의 대립은 격화됐다. 팩트체크를 하는 언론사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다. 시청률 1위는 폭스뉴스가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 내 민주당 지지자들은 폭스뉴스를 전혀 신뢰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다. 진영 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구조로 가는 것이다.

엄정 중립을 선언한 채로 자기 진영 뉴스만 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사설 등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언론사가 지지하는 후보를 천명한다. 해당 언론사 노동자가 특정 대선 후보에게 후원금을 모아 전달할 때도 액수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최소한 ‘어느 편이냐’를 알고 기사를 읽게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대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립’이라면서 보수 후보 편을 들 것이 뻔하니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는 정부 기관의 광고를 각 기관이 알아서 민간 에이전시를 통해 집행한다. 정확한 통계를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자율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서만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올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신문사를 돕기 위해 정부광고를 상반기에 조기·증액 집행해 줄 것을 재촉구하는 정책 제안서”를 문체부에 제안하기 이르렀다. 정부가 광고비 집행을 놓고 언론사와 단체 협상이라도 하자는 말인데,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두 손 모은 기자들의 태도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힌트를 얻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언론은 여러 가지로 위기에 처해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서로 적당히 비위를 맞추어주면 법도 바꿔주고 정부 예산으로 PPL기사도 작성해왔는데 그 집행 자체가 어려워졌다. 진보 언론은 정부 비판이 DNA라고 생각하는 것까진 좋으나 구독자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는 정파적 주장에 빠져 외면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 발달로 굳이 언론사의 기사를 소비하지 않더라도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미국 언론은 정파적 입장을 밝히는 대신 그에 걸맞은 행보를 취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사설에 썼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하는 일 역시 응원하며 대중들에게 정부 정책을 심층보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각을 세운 언론사들의 경우 대통령 연설 현장 생중계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불사한다.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의 말은 뉴스가 아니다’라는 결연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언론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립’이라는 이유로 “누군가 말하면 그냥 그걸 보도하는 건 우리 문제가 아니다”라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빠져있는 한국 언론이었다면 ‘일단 그래도 끝까지 들어는 봐야지’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 뻔하다.

문재인 정부도 잘못하고 국민의힘도 잘못하고 언제나 양쪽이 대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언론에 고한다. 미국 언론의 ‘입장’에서 배우는 바가 있길 바란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언론의 중립’이라는 허상이 아니라 ‘내가 ㅇㅇ의 편’이라는 정직함이다. ‘ㅇㅇ의 편에서 나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가? 그대가 정의당의 편이라도 국민의힘의 편이라도 민주당의 편이라도 그편이 어딘지 알려준다면 그대의 글을 그 입장을 고려해 진지하게 읽어줄 생각이다. 엘리트주의에 빠져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닌 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는 똑똑한 나의 편’이라는 언론의 오만. 이제는 지겹다.

김성회 씽크와이(ThinkWhy) 정치연구소장

# 이 글은 쩌날리즘 3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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