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시민들이 자유, 칼럼 평등, 연대를 상징하는 삼색기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위대한 프랑스 대혁명의 막이 올랐다. 다급한 소식을 전해 들은 절대 군주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가절규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반란인가?”

이때 루이 16세의 옆에 있던 국민제헌의회 의장라로슈푸코 리앙쿠르(La Rochefoucauld-Liancourt,1747~1827) 공작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폐하. 이건 혁명입니다.”

옛 시대와 새 시대의 교차점을 이토록 잘 설명하는 대화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옛 시대의 끄트머리에 선 자들은 새 시대의 거대한 물결을 반란으로 여긴다. 하지만 새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단숨에 반란이라는 오명을 넘어서서 위대한 혁명의 파도로 옛 시대를 덮어버린다.

언론이 시민 위에 군림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는 뜻밖에도 오래 지속됐다. 이 시대를 살았던 기자들은 대부분 기자의 사명과 권력이 매우 거대하다고 믿었다. 문제는 사명은 그렇다 치는데, 권력이 거대하다고 믿었던 데 있었다.

기자들은 이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자신들을 독자들 위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격변의 시대 한복판에서 나는 이 격변의 시대 한복판에서 기자로 살았다. 1997년 기자가 됐을 때, 무소불위의 기자 권력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봤다.

‘보도차량’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면 불법주차도, 불법유턴도 모두 용인됐다. 기자들에게 “보도차량 딱지 하나만 구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유력 정치인은 기자들과 식사를 마친 뒤 대놓고 돈 봉투를 돌렸다. 주는 정치인이나 받는 기자나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 장학생’이니 ‘△△계’니 하는 정치적 계파가 형성됐다.

경찰청 기자실에서 고위 간부와 기자들이 대놓고 고스톱을 치는 모습은 내가 2년 동안 직접 목격한 일이다. 경찰 간부의 임무는 돈을 잃어주는 것이었다. 그 고스톱에서 돈을 따 후배들에게 술을 많이 사주는 선배는 능력 있는 선배로 칭송받았다.

1980년대 기자촌 아파트라는 것이 있었다. 웃기지 않나? 기자들이 모여서 어디 올림픽 출전하냐?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도 아니고 기자촌 아파트는 도대체 뭐냐고? 그런데 전두환과 기자들은 진짜로 이런 엽기적인 일을 합작했다. 전두환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금싸라기 땅에 기자촌 아파트(정식 명칭은 기자협회 아파트)라는 것을 지은 뒤 중앙일간지 13곳 기자들에게만 이 아파트를 분양했다. 이 아파트는 건축에 돌입하자마자 요즘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에 맞먹는 800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실로 엄청난 카르텔이었다.

이 카르텔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언론에 진 빚이 아무것도 없었던 정치 아웃사이더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된 직후 언론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사정없이 끊어버렸다. 기자실이 폐쇄됐고 출입 기자단이 와해됐다. 많은 기자들은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당시 술자리에서 울분을 토로하던 기자들의 투덜거림을 선명히 기억한다. 온갖 논리로 정권을 비난해도 그 본질은 끊긴 촌지와 권력이었다. 변화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관공서 출입 기자들은 더이상 완전 공짜로 기자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운영 회비를 납부한다. 촌지도 많이 근절됐고(아직도 몰래 주고받는지는 모르겠다) 김영란법 이후 공짜 골프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후배들에게 과거 경찰청 기자실에서 고스톱 쳤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 후배들은 “에이, 선배. 요즘 기자실에서 누가 고스톱을 쳐요?”라며 나를 구닥다리 취급한다.

세월과 함께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기자들이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 뭘 더 어쩌란 말이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언론 지형의 거대한 변화에 대한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한 아둔함이다. 언론의 변화는 단지 촌지의 근절 문제가 아니다. SNS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기존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도 핵심이 아니다. 본질은 언론과 기자가 더이상 누구를 계도하고 가르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보의 주인은 독자이며 권력은 언론이 아니라 시민에게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이다.

매우 명확하면서도 지당한 이야기인데 한국 언론과 기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에게 주종(主從) 관계를 뒤엎는 일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독자들 입장에서야 ‘정보의 주인이 독자들’이라는 명제가 실로 당연하지만 기성언론과 기자들 입장에서 이 명제는 누군가가 자신이 누리는 주인의 지위를 빼앗으려 하는 반란과도 같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가 종합일간지에 난무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여전히 자기들이 정보의 주인이라는 착각, 그 오만이 지면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들에게는 독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용기가 없다. 언제나 그랬듯 그런 용기를 발휘하기에 기득권이 누리는 권력은 너무 과도하다. 민주주의가 시작되기 전 왕과 귀족들은 “민중들이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당최 이해하지 못했다. 초창기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도 최소한의 휴일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BertrandRussell)에 따르면 도시 노동자들이 막 투표권을 따낸 직후 몇몇 공휴일이 법으로 정해지자 귀족들은“가난뱅이들이 휴일에 뭘 한다는 거지? 그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한다고!”라며 분개했다. 이런 그들에게 “국가의 권력이 민중에게 있다”는 주장은 당연히 반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정보를 독점하고 군림한 언론사와 기자들은 “정보의 주인은 독자입니다. 당신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주무를 권리는 어디에도 없어요”라는 주장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사마다 달리는 독자들의 격렬한 댓글, 독자들의 팩트체크로 10분 만에 뽀록이 나는 거짓뉴스의 민낯을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고 “이건 반란인가?”라며 경악할 뿐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명심할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부디 명심하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당신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건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이 글은 쩌날리즘 3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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