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 “사람 살리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속히 제정해야”

‘노동과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노동과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논의할수록 후퇴하더니 결국 산재피해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7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오전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을 3년 유예하고, 중대재해법 시행 시기는 공포 1년 뒤로 합의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재해법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8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2019년 사업장 규모별(종업원) 업체현황 기준으로 68.46%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가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할 근로기준법 적용에 있어서도 영세사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각지대에 속해왔다. 또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재해발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5인 미만 사업장에 목숨을 잃은 노동자만 231명이다. 같은 기간 660명의 산재 사망자의 35%에 달하는 수치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온갖 꼼수가 난무하기도 한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회사임에도 2~3개의 법인으로 쪼개서 관리하거나 전체 직원 중 일부만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식이다. 정부와 여야가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을 제정하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산재피해 유가족들은 법안소위 합의안 도출 전인 7일 오전 국회 단식농성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을 대폭 후퇴시킨 정부와 여야를 규탄했다. 28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미숙 이사장(김용균재단)은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절대 이해 못하는 그들, 법을 막고 있는 그 자들이 누구인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똑똑히 기억하겠다”며 “아들 잃은 것도 너무 억울한데 아파할 겨를도 없이 사고 원인 직접 찾고 증거 찾고 길바닥에 나서야 한다는 게 너무나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김미숙 이사장과 함께 단식농성 28일째인 고 이한빛 씨의 아버지 이용관 이사장(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왜 제외시켰는지, 직장 괴롭힘은 왜 제외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죽음마저 차별하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대폭 후퇴한 중대재해법이 제정될지도 모르는 우려가 현실이 되자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7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적용 제외와 적용 유예 조항 철회 ▲발주처 형사책임, 직장 내 괴롭힘 형사책임 포함 ▲인과관계 추정조항 포함 ▲공무원 처벌 조항 포함 등이 중대재해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본회의에서 통과된다면, 누더기 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법은 힘없는 중간관리자와 하청이 아닌,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이윤을 거둬온 대표이사와 원청, 그리고 발주처의 책임을 묻는 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소규모 사업장과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국회는 길게는 32일째, 28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시민사회계와 유가족, 그리고 10만인 입법청원인의 의지를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터에서의 괴롭힘으로 한 해에 50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있다. 코로나로 1년 동안 목숨을 잃은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이것이 중대재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중대재해인가?”라며 산재피해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이 원하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7일 ‘노동과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5인 미만 사업장 포함 등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7일 ‘노동과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5인 미만 사업장 포함 등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평화나무)

 

“노동자 희생 위에 구축된 불의한 사회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어”

종교계도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중인 산재피해 유가족들에게 힘을 보탰다. ‘노동과 인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청년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누나인 김도현 씨는 현장발언에서 “죽음의 외주화를 끝내야 한다. 더 이상 노동자를 갈아 돈을 버는 짓을 기업은 멈춰야 한다”며 “어떻게 이 나라는 죽음마저 차별을 하나. 법 위에 기업이 있는 이 나라가 나라냐”고 한탄했다.

김희룡 목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이 에이는 추위 속에서 단식농성중인 산재피해 유가족들과의 연대를 호소하며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함께해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님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님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임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자랑이 일터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하여 퇴근하지 못하고 매일 7명씩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희생 위에 구축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며 “이처럼 불의한 사회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지속되어서도 안 되며, 또한 지속될 가치도 없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명서에서 반복되는 ‘노동자의 끝없는 희생’ 위에 세워진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구호는 “허울만 좋은 이야기”라며 “당연히 ‘정당하고 투명한 기업 운영과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 위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고 일갈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인권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또 대폭 후퇴한 중대재해법인 아닌 경영책임자의 안전 의무 규정, 인과관계 추정 조항, 징벌적 손해배상, 50인 이하 사업장 적용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중대재해법 제정에 머물지 않고 산재를 관리할 독립적 기구 구성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생색내기용 물 타기 법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속히 제정하라. 이미 많이 늦었지만, 여당이 약속한 임시국회 회기를 넘겨서는 안 된다”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무력화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부당한 결박을 풀어 끝없는 노동자의 희생을 멈추고, 왜곡된 자본주의의 억압에서 가난한 이들을 놓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평화나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