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허재현 리포엑트 대표 기자/전 한겨레신문 기자

경향신문이 '박재동 화백 미투 조작 의혹' 보도를 한 강진구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징계한 사건은 피해자중심주의가 언론계에 별다른 검토 없이 무비판적으로 퍼졌을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언론계에는 성추문 관련 의혹 보도를 할 때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이것은 옳을까. 이번에는 피해자중심주의가 언제 어떤 경로로 우리 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해외 권위지의 기자들은 피해자중심주의를 어떻게 고민하고 보도에 적용하고 있는지 비교 분석해보자. 미국의 대중 여성 운동가 벨 훅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학계라는 게토에 안주하면서 그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약해졌다. 학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통찰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언론계에도 이런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 같다.

피해자중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캠페인이었다

먼저 피해자중심주의 용어가 어떻게 나온 단어인지 살펴보자. 이 말이 처음 대중에 소개된 게 2000년대 초였다. 90년대까지 대학총학생회,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등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이 만연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운동가 100여명이 모여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만들었고 2000년 7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활동했다. 

이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피해자 경험에 기반해 성폭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가해자의 주장을 지나치게 수용한 나머지, 마치 '피해자도 조심성 있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100인 위원회는 발간한 백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성폭력 사건의 특징이 사적인 자리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또 객관적 증거나 증인의 부재,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기억을 전제한다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사실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다소 황당한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당시 진보진영에서 대체로 수용되었다. 왜냐면 워낙 성폭력 가해자 시선에 젖어 있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기 위해 내던져진 일종의 '캠페인성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 중심'이란 단어에 '주의'라는 단어가 붙어 '성폭력 사건 조사의 절대 원칙'처럼 변질되어 진보진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일부 여성 운동가들이 2004년부터 의문을 표한다. 여성주의 누리집 '언니네'에서 발간한 책 '피해라는 날개와 발톱'에서, 여성학자 정희진 등이 낮은 수준으로 피해자중심주의의 부작용 등을 거론한 것이 그 시작이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말이 진리'라는 뜻이 아니다

2005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내부집담회에서 '피해자중심주의' 대신 '피해자 관점'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된 바 있고, 2006년 정희진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서'라는 글에서는 나아가 "피해자중심주의는 여성주의가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한다. 2012년 여성학자 전희경은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라는 글에서 피해자중심주의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되는지 주장했고, 2017년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 등이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에서 "폭로중심의 피해자 정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시작했다. 

권김현영은 이렇게 주장한다. "피해자중심주의는 마치 피해자의 말이 곧 진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2차 가해라는 용어는 진상 조사 자체를 불가능하도록 남용되었다. (중략) 성폭력 문제의 핵심은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다. 그런데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에 해석을 전부 위임하게 된다면, 성폭력은 대체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반성폭력의 정치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 이 말은 피해자의 말이 진짜인지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하자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가해자의 진술에 대한 해석 투쟁의 영역이며, 2차 가해라는 말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결합해서 그러한 해석 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피해와가해의 페미니즘,2018)

나아가 그는 피해자에게는 '피해의 증명 의무도 있다'고도 설명한다. "피해자는 당연히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있지만, 그 경험을 공론의 영역으로 가져올 때는 정당화의 의무를 지게 된다. 페미니즘은 그 정당화 과정에서 해석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지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언어가 아니다."

여성 운동가 최미진은 좀더 나아가 "피해자중심주의는 증거주의로 대체돼야 하고 2차 가해 용어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증거는 물증 외에 진술도 포함한다. 객관적 실체를 파악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2차 가해 용어는 피해호소인의 말을 절대화 하는데 이용돼, 진실 규명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사건과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고 도덕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논쟁, 2017) 

이렇게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가해'는 여성주의 내부에서조차 그 비판적 성찰과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자세한 검토 없이 대중에게 '합의된 여성주의 원칙'처럼 제시하는 건 당연히 성급하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 “기자는 운동가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공화당 정치인에 대한 미투가 어떻게 조작되었는지와 관련해 폭로해 탐사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스테파니 맥크루먼, 베스 레인하드, 앨리스 크라이티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기자들은 공화당 정치인 로이 무어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제보하러 온 여성 제이미 필립스가 실제로는 언론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는 것을 역고발한다. 취재 과정에서 철저하게 진위여부를 검증한 미투 저널리즘의 쾌거였다.

당시 이 보도가 나왔을 때의 미국 여성계의 반응을 조사해봤지만, 우리처럼 '2차 가해 논란'은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사회는 여성주의와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기자들의 취재내용이 워낙 꼼꼼하여 그 어디서도 별다른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워싱턴포스트> 기자들 역시 여성주의와 저널리즘을 어떻게 구분하고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한 흔적은 발견된다.

2019년 1월 <인디펜던트>는 스테파니 맥크루먼과 만나 한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저널리즘과 여성운동(※activism)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둘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 어떤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큰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특정 입장에 대한 운동가가 되는 것은 언론인에게 적절한 역할이 아닙니다.”

맥크루먼은 사회운동가와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둘은 활동 목적이 다른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언론인이 운동가와 같이 생각한다면 어떤입장을 취하기 시작할 수 있다. 명확하게 생각하고, 사건을 똑바로 보고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언론인에게는 첫번째가 되어야 한다.”

만약, 맥크루먼이 한국에서 일을했다면 분명 미투 사건 진상을 파헤치는 그 자체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질문을 들었을 것디다. 이에 대한 맥크루먼의 대답 역시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추정해 찾아볼 수 있다. 

“언론인은 더 많은 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중하게 취재를 했는지와 관련해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우리를 이해해줄 것입니다. 언론인은 대중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며, 이것은 언론인이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언론인은 변화를 추구하는 직업인이 아니라, 사실을 조사해 전하는 직업인입니다. 물론 언론인도 사회운동가와 밀접한 관계는 있지만, 분명 구분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맥크루먼의 이러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강진구 기자의 징계 사건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강진구 기자는 징계에 앞서 “취재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경향신문에 내부 기자토론회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자가 독자에게 취재과정을 상세히 설명을 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맥크루먼이 설명한 것과 경향신문의 태도는 이렇게 다르다. <리포액트>에서는 스테파니 맥크루먼 <워싱턴포스트> 기자와의 인터뷰 역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곧 소개할 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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