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기상전문기자가 진행하는 코너를 신설하고 기상전문기자를 전문가 패널로 활용하는 등 방송사 뉴스룸 전반에서 기상전문기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기자협회보에 실린 ‘기장전문기자 입지 넓어진 뉴스룸’이란 제목을 단 기사의 일부분이다. 기상전문기자의 입지가 넓어졌다는 건, 달리 해석하면 기상캐스터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뜻도 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KBS가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KBS 9’에서 기상캐스터 체제를 폐지하고 기상전문기자를 활용해 날씨를 전하는 방안을 심층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 보도됐다. 기상 상태가 변화무쌍해진 데다 어플 등의 정보 취득 수단이 다양화한 현실에서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고민이 읽힌다. 그러나 이미 KBS 내 기상캐스터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확산했다는 후문이다. 

 

기상캐스터→기상전문기자 전환 고민하는 방송사
밥그릇 고민해야 하는 캐스터  

‘환경’이 삶을 위협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다 한 해를 보낸 현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어플 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캐스터들의 역할이 전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고민은 방송사마다 있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정보전달을 하는 캐스터보다는 원인까지 분석해 내는 기자의 역할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KBS는 이미 기상전문기자 3명을 두고 있다. 이밖에 기상전문기자가 활동하는 방송사는 YTN(2명), 연합뉴스(2명), MBC(1명), JTBC(1명) 등이다. SBS는 기상전문기자를 정식 보직으로 두진 않았으나, 기상학을 전공한 기상 담당 기자 3명을 정해두었다. 

저녁시간 ‘뉴스룸’에서 기상캐스터를 없애고 기상전문기자로 전환을 시도한 첫 방송사는 바로 JTBC다. 지난 4월 기상학 박사학위 소유자인 김세현 기상전문기자가 진행하는 코너를 신설한 것. 김세현 기자는 지난 9월 기상예보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예보사란 기상산업진흥법 제18조에 따라 기상청장으로부터 면허를 받아, 기상예보 업무 수행이 가능한 사람을 말한다.(기상산업진흥법 제2조). 또 기상예보기술사나 기상기사 자격을 취득한 후 기상 관련 분야에서 2년 이상 종사하거나 기상업무 관련 교육훈련기관에서 140시간 이상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기상예보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아울러 방송사가 기상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이 기상예보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세현 기자는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기상예보를 전하는 것은 물론, 드러난 현상의 이유까지 설명해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JTBC의 이러한 시도는 다른 방송사에도 분명 자극이 됐을 터. 저녁시간 메인 뉴스룸에서 기상캐스터 대신 기상전문기자 도입을 시도하려는 고민은 KBS만의 것이 아니란 것. 연합뉴스TV역시 기상예보사 자격증을 보유한 기상전문기자 2명을 사내에 두고, 2013년 기상사업자로 등록한 상태다. 기상캐스터 전문 아카데미를운영하는 맹소영 원장도 미국 또는일본은 기상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년 뒤 기상 예보사를 취득한 사람만이 공영방송 기상방송을 할 수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도 현재 흐름이 부적절해 보이진않는다고 소견을 밝혔다.

현재 활동 중인 기상캐스터들 조차도 현재 시점에서 단순 정보전달을 넘어선 기후 관련 심층 보도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기상캐스터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이 운영의 묘를 살려 기상캐스터에게 일자리와 이전 수준의 급여를 보장해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한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은 “친구가 실제로 KBS 기상캐스터라 이 내용을 물어봤다”며 “내부적 사정 때문에 관련 논의가 조금 묻힌 것 같던데 이 얘기가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지 몰라서 친구도 항상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또 “KBS가 그런 결정을 내리면 다른 방송사들도 줄줄이 기상캐스터의 자리를 기상전문기자로 대체하는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으니 타 방송사 소속이라 해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한 직종을 없애버릴 수 있는 잔인한 말로도 들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KBS는 지난 10월 28일경 평화나무와 전화통화에서 “‘뉴스 9’에 기상전문기자 도입하는 안을 논의 중”이라며, “그러나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KBS의 고민이 KBS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하는 기상캐스터 전체에 긴장감을 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남성 전유물에서 여성 시대 열린 기상캐스터 

한국에서 기상캐스터의 시작은 1960년대 국립중앙관상대(기상청) 직원으로서 직통전화를 놓고 날씨를 전했던 김동완 씨가 원조격이다. 

그는 중앙기상대 시험에서 15대1의 경쟁을 뚫고 합격, 김포공항측후소 기상요원으로 발탁돼 수영비행장(지금의 김해공항)을 거쳐 서울관상대 예보관으로 KBS라디오에 파견 나가 새벽 5시 어업기상통보를 했다. 1972년 MBC-TV모닝쇼와 KBS-TV 9시 뉴스를 거쳐 1974년 TBC로 옮겨 방송하면서 통보관이란 직함을 얻었다. 이후 언론통폐합으로 1980년 TBC가 문을 닫자 그는 MBC로 옮겼고 캐스터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김동완 캐스터의 인기가 치솟자 KBS는 1981년 조석준을 영입했다. 그는 한국기상협회 회장을 역임한 후, 2011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제9대 기상청장까지 지냈다. MBC이 김동완, KBS에 조석준이 있었다면 SBS에는 이찬휘 기상전문기자가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이전까지 기상캐스터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남성들이 독차지하던 기상캐스터직을 꿰차고 기상캐스터 여성시대를 이끈 건, 바로 이익선 씨다. 지적인 이미지를 내세운 이익선 씨가 1991년 KBS에 입사해 인기를 한 몸에 받자, 이런 추세에 힘입어 다른 방송사들도 서둘러 여성 기상캐스터를 기용하기 시작했다. 

금녀의 벽을 허문 것까진 좋았는데, 여성 기상캐스터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은 기상캐스터의 전문성보다는 외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성 아나운서 못지않은 인기를 얻는 기상캐스터들은 ‘뉴스의 꽃’으로 ‘1등 며느리감’으로 꼽히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연예계 또는 방송 진행자로 변신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2011년 말 종편이 개국한 후에는 기상캐스터들의 의상이 유난히 타이트해졌다는 논란도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종편이 개국하면서 소속 방송사를 옮겼던 A씨는 “방송사를 옮기고 난 후, 전에 활동했던 방송사보다 유난히 짧거나 달라붙는 의상을 많이 가져다줘서 몸이 드러나는 의상이 불편하고 불쾌했다”라며, “나 말고 다른 기상캐스터들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었다”라고 했다. 이어 “의상실 실장님 얘기론 회사의 지침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불편한 의상을 입었지만, 그걸 공론화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이름.. ‘프리랜서’ 

복수의 기상캐스터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다소 선정적인 의상을 입어야 하는 분위기가 현재는 많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상캐스터의 수명은 전보다 더 짧아지는 추세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입사한 남성 기상캐스터들이 소속 방송사의 간부급으로 성장한 것과 달리, 여성 기상캐스터의 상황은 달라도 많이 다른 것. 

앞서 언급한 여성 기상캐스터의 전문성보다는 외모 중심으로 평가하며 대체하기 쉬운 일자리로 만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어떤 방송사도 기상캐스터는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채용한다. 프리랜서라고 해도 서울과 수도권 라디오 분야에는 40대를 훌쩍 넘긴 기상캐스터가 주를 이룰 정도로 이동이 적은 편이지만 TV쪽 분위기는 또 다르다. 

A씨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기상캐스터로 일하는 분들을 간혹 보지만, 4-5년 정도면 오래 직을 유지하는 경우라고 생각된다”며 “기상캐스터를 오래 채용하는 편이었던 방송사들도 요즘에는 자주 바뀌는 분위기”라고 했다. 물론 캐스터의 치명적 실수 때문도 아니라고 했다. A씨는 기상캐스터의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 이유는, 그저 경쟁이 치열한 탓이라 고 분석했다. 또 빠른 방송환경 흐름에 맞춘 탓이라 했다. 이런 탓에 기상캐스터는 점차 방송 활동 영역을 넓혀가기 위한 경력 한 줄, 또는 지렛대 정도로 전락해가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소수이긴 하지만, 기상캐스터 스스로도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사례도 있다. 전문성을 쌓아 기상전문기자로 이직에 성공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또 기상 관련 전문 학위를 소지한 기상캐스터들도 존재한다. 이런 필요성을 절감해 2012년에는 전문 기상캐스터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설립됐다. 웨더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는 맹소영 원장은 이미 수년전부터 기상캐스터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해 왔다. 아카데미 과정에 기상기사 자격증반까지 오픈한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기상캐스터들이 전문성을 갖춘들, 방송사가 얼마나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주느냐이다. 

한 기상캐스터는 “경험치가 쌓이는 데다 공부까지 하면 분명히 해석할 때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방송사가 요구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방송사들이 캐스터들에게 요구하는 건, 기온·습도·비가 오는지, 오지 않는지 등 간략한 핵심 정보일 때가 많다는 것. 

또 다른 기상캐스터는 “이제라도 전문성을 길러 기상전문기자로 직을 바꾸고자 하는 기상캐스터에게는 방송사들이 기회를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이직을 통해 기상 기자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방송사에서 기상기자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 변화가 빠른 방송가 현장에서 정보전달력과 기상 지식을 두루 갖춘 기상캐스터와 기상 기자의 역할을 기대하기에 앞서, 고용문제를 고민해야 현실에서 방송사들이 돌아볼 지점은 없는 것인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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