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성숙에 못 미치는 발전 없는 한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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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성숙에 못 미치는 발전 없는 한국 언론"
  • 평화나무
  • 승인 2021.01.1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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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날리즘’ 2021년 한국언론 대전망
‘시민의 대기자’ 변상욱 YTN 앵커

 

한국언론과 수용자가 사사건건 충돌을 빚고 있다. 이미 광고주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지닌 언론사와 1인 미디어로 눈을 돌리는 수용자의 뉴스 소비 패턴만 보더라도 양자는 교차점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 보도에 불만이 많은 친문재인 정부 성향의 수용자는 사사건건 언론이 설정한 의제에 대해 그 저의(底意)부터 짚는 식으로 극단의 불신을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적대하기까지 한다. 이에 언론은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더니 이들을 ‘팬덤’으로 몰고는 ‘광기’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온라인’이 없던 과거에는 어떤 반응이든 조직화가 쉽지 않았으니 쉬 뭉갰던 그들이었다. 진보언론이라고 다를까? 방송·신문의 구분도 없다. 이런 가운데 언론에 적대적인 대중은 ‘고의적 오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지지하며 개혁의 고삐를 당기라고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반문’을 노골화하는 레거시 미디어와 대중의 충돌은 하반기부터 본격 도래할 20대 대선국면에서 심화할 것이 분명하다. ‘쩌날리즘’은 1980년대부터 한국 민주 언론노조 운동을 전개하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고 역할을 찾아온 변상욱 YTN 앵커(전 CBS 대기자)를 초대해 2021년 저널리즘의 향배를 짚어본다. 대담에는 시사평론가인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이다. 

 

올림픽 연기로 한숨돌린 KBS·MBC

김용민 2021년이 열렸다. 현재 언론계 전체 지형을 어떻게 보고 있나?

변상욱 주목할 부분은 지상파의 추락세와 디즈니·넷플릭스 등 OTT(On The Top)의 성장세이다. 인터넷·모바일 분야 광고 액수가 15년 전 3000억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5조~6조에 달한다. 대단한 성장세다. 여기에 코로나 19라는 변수가 결합해 성장세는 가속도가 붙었다.
또 2021년 보수언론이 (자기편) 다음 대통령 후보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뛸 것이다. 그러면서 여권 후보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렇다면 진보언론이 여기에 제동을 걸까? 그렇게 움직이는 진보언론은 없다.
연합뉴스, CBS, YTN 등 언론사의 리더십도 바뀐다. 이중 연합뉴스가 가장 중요하다. 국가 기간통신사로서 연합뉴스가 역할을 잘한다면 한국언론 수준은 격상될 것이다. 이 점을 국민이 알아야 할 것 같다.

김용민 KBS도 사장이 바뀌는데 양승동 체제가 이어진다고 보는 것인가?

변상욱 그렇게 보고 있다. 지상파 이야기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작년 KBS·MBC는 한숨 돌렸다. 도쿄올림픽이 열리지 않아 돈을 저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BC는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 덕 본 면도 있지만, 올림픽 연기로 재정 소모를 최소화했다. SBS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구조 변화 등을 꾀하고 있는데 SBS 구성원들의 제언(모회사인 태영건설 자본의 방송 지배력 강화방지 요구)이 잘 반영이 안 된다는 점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올해 대립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도 언론계에 만연한 출입처 우선주의, 클릭을 위한 제목 장사 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언론사가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런 것이 2021년 한국언론의 중요 과제가 될 것이다.

 

‘디지털 퍼스트’라는 오랜 거짓말

김용민 신문사의 경우 종이신문을 찍어내는 구조가 유지되는 가운데서 디지털화는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변상욱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라고 하면 ‘안 변하겠다’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온니’(Digital only)로 가는 것이 맞다. 논외 이야기지만, 미국 한 통신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고 경영자가 전 직원에게 담화문을 내며 "비밀인데, 다른 회사에 얘기하지 말라. 우리 주요 통신 설비 시스템이 폭파됐다. 임시복구했지만 얼마 못 간다"라고 겁을 줬다. 그런데 사장 말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직원들은 미친 듯 개발을 시작했다.

김용민 극약처방 없이는 시작하기 어려운 게 디지털화라는 이야기이다.

변상욱 그렇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 등 성공한 디지털화는 엄청난 비용과 인력의 투여가 전제됐다. 우리 언론 환경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다.

김용민 그리고 언급한 언론들은 시장 즉 소비자의 신뢰가 형성된 경우이다.

변상욱 한국에서 누가 돈 내고 기사보겠다고 하겠나. 관건은 수준과 품질, 신뢰도이다.

김용민 지금 기성 언론은 대중을 팬덤으로 몰고, 대중은 기성 언론을 특정 정치 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선전 집단으로 의심한다. 이 같은 갈등은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변상욱 (언론은 소비자가 뉴스를 소비하면서) 본인이 믿고 또 보고 싶은 것만 믿고 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막상 극단적 문구로 댓글 쓰는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나는 이 언론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한군데 언론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의 시민 수준은 언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우리 언론인은 그동안 소비자가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이 기사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이 기사가 어떤 구조와 경로를 통해 생산됐나,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내가 이 기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이 기사가 어떤 정파에 유리하게 작용하는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것, 이를 메타적 조망(Meta-analysis)이라고 하는데, 상당수 시청자·독자가 이 수준에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언론이 독자를 겨냥해 “‘빠’들이 자기(가 믿고 또 보는) 언론만 챙긴다”라고 판단한다면 현재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소비자가 아니라 언론인이야

김용민 진보논객 홍세화 선생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어용 언론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이 인식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변상욱 그런데 국민은 냉정하다. 신뢰할 수 있는 집단과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한다. 그것이 정치의 장에서는 선거로, 언론에서는 수용자가 고정 시청과 구독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언론 소비자는 ‘같은 당 성향이어서 무조건 믿는다’가 아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최선에 서 있는 언론이 누군지’를 검토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언론이라고 나오는 주장에 다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를 사는 시민을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여기는 것은 난센스다.

김용민 언론노조 위원장 출마 의사를 밝힌 윤창현 SBS 본부장은 ‘군중검열이 일상화되더니 집단혐오로 변질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결과제로써 언론개혁보다 현업자의 현장 노동 존중을 들었다. 말이 어려운데, 군중의 기사 평가가 폭력적·억압적이다. 언론자유를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변상욱 기자가 사실 확인을 거쳐 취재한 후 데스킹과 자문까지 거쳐 내놓은 기사라면 검열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뉴스 수용자는 콘텐츠를 선택해 소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판하게 돼 있다. 선택하고 비판하는 시민의 권리에 대해 독재 검열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랜 세월 언론은 국민을 계도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봐왔다. 결국 ‘언론 감독을 누가 주관하느냐’의 문제인데 불변의 주체는 국민이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촛불을 들고 모인 국민에게 어떤 정치인이 ‘촛불 독재’라고 했다. 뭐가 다른가.

김용민 그런데도 절대다수의 기성 언론은 자신의 공정성·객관성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기성 언론의 정파성을 질타한다. 예컨대 법무부 장관 지휘권을 따르지 않는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즉 행정부 외청 수장에 대한 감독권자의 징계를 이른바 ‘추윤(추미애 법무장관-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으로 규정하는 시각 자체가 대단히 정파적이라고 본다.

 

‘검찰 건드리면 안 된다’는 오랜 착각

변상욱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총장이 대드는 전례는 없었다. 그간 법무부 장관은 물론 그 안에 검찰국장, 교정국장도 검찰 출신이었다. 국가정보원장도, 수사 담당 국장이나 차장 역시 모두 검사를 하다 발탁됐다. 이러한 권력기관을 통제하는 청와대 민정수석도, 비서실장도 모두 검찰 밥을 먹었다. 그런 시대가 40~50년 계속됐다. 게다가 마지막 20년은 검찰의 황금기였다. 이러다 보니 국민은 검찰은 누구도 손대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갑자기 판사 또는 학자 출신의 법무부 장관이 행정권을 발휘하자 ‘검찰을 왜 건드리지? 검찰은 정의롭게 수사하도록 놔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의 통제는 타당하다.

김용민 비판할 권력을 청와대 여당으로 국한하는 언론인들이 의외로 많다. 

변상욱 권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비판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다르다. 강한 자 앞에서는 꼬리 내리고, 비판했을 때에도 나에게 되받아쳐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여기는 세력에게는 공격성을 강화하는 것, 국민은 언론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구체화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우리는 흔히 좌우, 진보 보수로 나눠 편 갈라 답을 찾는데, 주인공은 항상 남보다 정보를 빨리 취득하고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어 기회를 많이 얻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매사를 진보 보수 간 갈등인 것처럼 싸움 붙이고는 뒤에서 사회 제도와 원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움직여가는 리버럴리스트(liberalist, 자유주의자)이다. ‘생각이 열려 있어 새 문명도 먼저 수용하고 남보다 넓게 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기회주의자라고 봐야 한다. 최근 의료파동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그들의 수구 보수적 성향이 아니라 리버럴리스트의 기회주의적 속성이 순식간에 결집양상을 띤 것이다.

김용민 저널리스트 중에 그런 리버럴리스트가 많다. 지난 권위주의 정부 때 별일 없이 살았던 언론인들, 지금도 아무 탈없이 살고 있지 않나? 변상욱 신년사를 내며 그간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국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한두 줄 언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성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점을 밝히고 앞으로 이렇게 개선하겠다고 천명해야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2020년 마지막 날 신문에 한 해 자사 오보를 총정리했던데, 고의 없거나 단순한 것뿐이었다. 저급한 논리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며 음모론으로 도배한 기사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방통위가 개혁 못하는 진짜 이유

김용민 논의를 바꿔보겠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한 심사나 합리적 처분을 게을리하다가 ‘방송통과위원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방통위가 힘을 잃어가면서 방송에는 허위 왜곡 보도가 틈타고 있다. ‘의견’을 빙자한 흑색선전이 여과 없이 전달되기도 한다.

변상욱 정치 권력이 개입하는 방송통신위원 추천 구조를 바꿔야 한다. 

김용민 정당 혹은 대통령으로부터 선임된 방통위원들은 본인의 독단적 판단으로 특정 방송사가 치명적 타격을 입으면 본인만이 아니라 정당 혹은 대통령까지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해야 해서 소신껏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변상욱 (보수 성향의 종합편성채널을 두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준다. ‘그렇게 하면 곤란하지 않아요?’, ‘방송을 흔들려고 하는 건가요?’, ‘방송산업이 무너집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 여당 측 방통위원도 보조를 맞추며 ‘야당 반대가 심해 어쩔 수 없다’라고 핑계 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과 엮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거기서 개혁적 결정을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김용민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변상욱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영방송 사장 선출을 위한 국민방송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본떠 기자, PD, 아나운서협회 등 여러 직능단체로부터 천거된 100~200명가량이 방송통신위원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김용민 올해 리더십이 교체되는 공영언론들이 있다. KBS, YTN, 연합뉴스가 그렇다. 정 의원이 아니더라도 ‘국민투표로써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자’라는 이야기는 꽤 나왔고, 이는 고 이용마 MBC 기자의 유지이기도 하다.     

변상욱 KBS·MBC 등 지상파만큼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송은 없다. 게다가 무료이다. 국민 편익이나 공공성을 고려하면 축은 공영방송일 수밖에 없다. ‘정보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무엇으로 (진실의) 기준으로 삼느냐’라고 했을 때도 공영방송이 우선이다. 그래서 공영방송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국민이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체제가 기본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사회 구성도 바뀌어야 한다.
실마리는 열었다. 시민참여단 150명이 KBS, 100명 정도가 MBC 사장 후보들을 심사했다. 물론 그들이 사장을 뽑은 것이 아니다. ‘아닌 후보자를 배제하는’ 역할 정도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민참여단이 규모를 확대하고 이사회를 하위에 두는 구조로 가야 한다.
대한민국 방송 체제는 1980년 언론 통폐합을 기점으로 한 전두환 체제에서, 1987년 6월 항쟁과 1990년대를 거쳐 사실상 바뀐 게 없다. 새 체제가 나와야 한다.

 

‘뉴스공장’ 폐지? 그 자체로 불법

김용민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예산권을 활용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TBS가 독자성을 가질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 됐다. 

변상욱 방송법 4조에 보면 방송의 제작·편성권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김용민 국민의힘에서 ‘뉴스공장’을 없애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방송법 위반이다. 벌칙도 있다.

변상욱 그렇다. TBS는 서울시가 관장하고 있다가 독립 법인화됐다. 그런데 여전히 예산 지원을 하는 서울시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애고 싶은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특정 논조를 강제하겠다’라고 한다? 그게 문제가 안 된다면, 대통령 권력은 1973년 공영방송으로 거듭난 KBS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김용민 텍스트 영역에서 우리나라 언론은 네이버가 만든 생태계에 온존해왔다.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구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변상욱 네이버나 다음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꾼다고 치자. 그러면 알고리즘으로 뉴스 검색 순위를 조작한다는 불만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면 다음 고민이 대두된다.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자리를 구글이 차지하면, 외국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이다. 건강한 주체에게 뉴스포털로 진출할 길을 열어줘 자율 경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 무작정 포털에 대한 규제만 강화한다면 눈에 보이는 일시적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 있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김용민 한국 메가 미디어에 있어 채널과 주파수는 곧 권력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전파 기득권은 실종되고 모든 미디어가 유튜브라는 해외 플랫폼에서 경쟁하다시피 한다. 이런 가운데 해외 OTT인 넷플릭스가 급성장하면서 유튜브를 따라잡고 있다. 토종 OTT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새해의 관심사이다.

 

해외 자본에 토종방송 존립 위태

변상욱 넷플릭스 가입자가 800만 명이다. 한국의 여러 방송들이 함께 콘텐츠를 올리는 웨이브는 400만~500만 명으로 절반 수준이다.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국산 방송의 역량은 뒤처지고, 넷플릭스와 뒤이어 들어올 해외 OTT들의 점유율은 높아질 것이다. 한국 OTT를 살리려면 네이버 등 포털 사업자가 미디어 시장에서 올린 엄청난 수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방송발전기금 또는 미디어 발전기금 등으로 출연받아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자를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 중심에 방통위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역량이 모자란 것 같아 안타깝다.

김용민 한국 지상파 방송의 신뢰도와 점유율이 계속 떨어진다. 이러다가 몰락할 가능성도 있을까?

변상욱 유명한 미디어학자는 지상파의 운명이 2030년에 끝난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매출 줄어드는 속도를 근거로 해서. 지상파 방송사의 내림세는 전 세계의 공통적 현상이기도 하다.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로써 뼈아픈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결행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런데 대한민국 미디어 시장에서 매출의 60%는 아직 지상파에서 나온다. 전체 방송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제작비의 50%, 고용 창출로 따지면 40%는 지상파가 담당하고 있다. 지상파가 아직 건재해야 할 이유이다.

김용민 광고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그런데 ‘쩌날리즘’이 신년 여론조사를 했는데 작년 종이신문 광고를 접하고 구매를 결정했다는 사람이 2.2%였다. (‘쩌날리즘’ 5호 2~3면 참조) 시장의 논리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광고 자본은 진작에 종이신문에 종언을 고했어야 한다. 시간은 걸려도 자본은 언젠가 광고의 효율성을 따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변상욱 그렇다면 외국 자본이 들어와 우리 방송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외국의 하청생산기지로 만들 수도 있다. 한류는 인기가 좋아서 외국 자본은 항상 한국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김용민 이런 상황을 알고 2021년을 대비하는 언론인이 몇이나 있을지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쩌날리즘’에 대한 당부의 말 부탁한다.

변상욱 노자의 도덕경에 ‘좌기예 화기광(挫其銳 和其光)’이라는 말이 있다. 어두울 때 빛이 있어야 하는데 비추더라도 백성을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날카로운 것은 쉽게 부러진다. 숙명적으로 ‘쩌날리즘’은 잘못된 것에 메스를 들이대고 어두운 곳을 밝혀야 하지만 때로는 날카로움을 슬쩍 감추는 지혜도 필요해 보인다.

김용민 귀한 분석과 조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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