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권지연 평화나무 기자

 

“너 얼굴에 50만원 써 있네. 나한테 50만원 가져올거였는데 30만원만 낸거구나”


“옷에 아무개 이름이 써 있어서 내가 사다 준건데, 그 가시나는 왜 그 옷을 안 입는다니?”


“저 사람 뒤에서 살풀이하는 무당이 보이네”

 

천국 마일리지 왕국의 세리여왕은 자기 왕국의 사람들을 이런식으로 관리했다.

 

세리여왕은 사람들에게 영험한 능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기에 누구도 세리여왕의 말에 거역할 자는 없었다. 

 

세리여왕은 유독 왕국 사람들을 불러모으기를 좋아했다. 그 자리에서 세리여왕은 자신이 섬기는 신을 대리한다며 일종의 설교를 하곤 했는데, 그 자리는 대부분 특정 누군가의 행동을 도마 위에 올려 혼을 내는 시간이었다.

 

왕국 사람들은 '도마위에 올려지는 주인공이 내가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항상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했다. 싸다구를 맞는 일은 기본이었다. 폭행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세리여왕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머리카락을 잘리거나, 듣기에도 심장 떨리는 쌍욕을 듣고 몸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두들겨 맞아도, 심지어 머리채를 잡혀 끌려다녀도 왕국 사람들은 세리여왕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때린 세리여왕의 손바닥은 얼마나 아플지 걱정했고, 매의 강도가 약해진 날이면 세리여왕의 기력이 약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했다. 

 

왕국 사람들에게는 임무가 주어졌다. 누군가는 세리여왕과 가족들이 먹을 채소를 가꾸었고, 또 누군가는 세리여왕이 입양한 자식들을 돌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를 맡은 이들은 세리여왕의 콘서트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세리여왕은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 그 곡을 화려한 콘서트장 무대에 올려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를 즐겨했는데, 이때문에 누군가는 1년 365일 냉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하루 종인 세리여왕의 화려한 의상을 만들어야 했다. 또 왕국에서 연령대가 낮은 사람들은 백 댄서로 서기 위해 새벽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세리여왕이 돋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참 불운하게도 세리여왕은 음치였다. 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곡은 세리여왕이 하늘의 영감을 받아 직접 쓴, 특별한 곡이라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에. 왕국 사람들은 왕국 밖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초대장을 사느라 빚을 지기도 했고, 세리 여왕이 요구하는 특별헌금 요구에 화답하고 해외여행을 함께 다니느라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대신 신께서 복을 주실 테니, 이 모든 것은 이 왕국 사람들에게는 영광된 일이라 굳게 믿었다. 

 

세리 여왕은 왕국 사람들에게 기꺼이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특별히 아끼는 왕국인들에게는 직업도 정해주고 결혼할 짝도 정해주었다. 당사자들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여왕께서 신의 음성을 듣고 배필을 정해주는 것이므로. 그런데 문제는 부부싸움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왕국인들은 부부 관계를 세리여왕에게 고했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드물게 세리여왕이 점지해 준 짝과 절대 혼례를 올릴 수 없다고 반기를 드는 왕국인이 나타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결혼식을 무탈하게 진행됐다. 결혼식 하루 전날 신부가 바뀌었을 뿐이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이 이야기는 경기도 고양시 소재 헤븐포인트교회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참칭해 교인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며 착취와 폭력을 일삼은 믿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교회는 이제 정상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설립 24년만이다. 교회는 지난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명규 목사를 청빙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서울북노회에 가입했다. 또 교회 이름도 아름다운 교회로 바꾸었다. 곽세지 목사의 심복처럼 여겨지던 측근들까지 대거 그루밍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인들은 새로 청빙된 목사에게 날마다 놀라고 또 감동하는 눈치다. 

한 장로는 “세상에 목사님이 오셔서 교회에 거금 1천만원을 헌금하셨다”고 자랑했다. 날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물질을 드려 목회자를 섬기는 것만이 신앙생활인 줄 알았던 이 교회에서 목회자가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내놓은 헌금은 그야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그러면서 “후임 목사님이 오셨는데, 짐이 너무 단촐해서 모두가 놀랐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평화나무가 입수한 지난해 11월 교인들과 곽세지 목사의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에는 곽 목사가 짐을 빼는데 서너달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결국 교인들은 3개월간 180만원을 지불하고 곽 목사의 짐을 보관해주기로 했다. 현재 곽 목사의 짐은 콘테이너 13개에 담겨 보관 중이며, 만기일은 오는 3월 14일이다

신비·예언 등을 쫓던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모습도 새롭기만 하다. 

과거 곽세지 목사이 최측근으로 통했던 한 교인은 “늘 증거가 있고 응답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야 하는 줄 알고 20여년을 신앙생활 했는데, 그게 아니고 내 삶에서 함께하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평온과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은혜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1대1 관계속에서 성숙해져가는 기쁨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리라. 

이명규 목사도 현재 아름다운교회(구 헤븐포인트)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모습이다. 

이 목사는 새롭게 출발하는 아름다운교회에 필요한 것으로 균형있는 신학관과 신앙을 꼽았다. 

이 목사는 “이전 목회자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교리가 교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데 사용됐던 것 같다”며 “단계적으로 건강하게 세워가겠다”고 밝혔다. 

또 “율법의 완성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며, “이원론적 신학관을 가지고 교회만 중요하고 가정이나 세상은 중요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립되고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신앙이 건강해지면 가정이 건강해지고 사회생활도 더 건강하게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교회를 목사의 독단적 운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인들과 ‘함께’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 목사의 사모역시 교인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교회 안에서 헌신했던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이겠나. 그런데 모두가 아프니까 누가 누구를 감싸주기 힘든 상황인데, 그 마음들을 많이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목사부부의 따뜻한 마음에 힘입어 교인들도 힘을 내고 있다. 

그루밍에서 깨어나 새 삶을 살아가는 권사는 “언제까지 울면서 후회만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당하지 않도록 잘못된 것은 멈추게 하고 싶다. 하나님께 한다고 착각하면서 목사에게 충성했던 그루밍된 신앙이 많은 세월을 낭비하게 했다. 더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되고 그런 사람이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직도 곽세지 씨를 따르는 교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기도 하다. 

‘불로’ ‘불로’ 뜨겁고 자극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며, 폭언과 폭행, 갈취를 일삼는 목회자, 교회는 목사의 독단적 소유물이 아니라며 교인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목회자, 당신은 어떤 목회자와 함께하고 싶은가.

이 쉬운 질문에 이제는 ‘예스’라고 답하자. 긴장 속에 살았던 세월이 억울하지만 이겨낼 수 있을만큼 마음속에 강 같은 평화가 덤으로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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