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계 큰 화두가 된지 오래다. 손해배상액을 3배로 할지 5배로 할지, 가짜뉴스만 손해배상 대상이 될지 다른 문제들도 포함되는지,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형사 처벌 제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아직 분명한 것은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속도를 낼 예정이고, 조만간 본격적으로 논쟁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분명한 것은 한국의 언론은 그 어떤 형태의 제도라도 ‘언론탄압’이라고 몰아붙이며 반대할 것이란 점. 그리고 많은 국민은 그 어떤 형태라도 언론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지 않은 지나치게 약한 법이라며 비판할 것이란 점이다. 어떤 사회적 논쟁을 둘러싸고 진영을 막론하고 언론과 대중의 인식차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는 보기 힘든 일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과잉 입법인가?

언론은 해당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도 “언론개혁을 주문했더니 언론검열로 답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화를 냈고, 한국기자협회 역시 이미 “언론 자유를 흔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이를 갈았다.

보수언론이야 말할 것도 없다. 중앙일보는 아예 “참여정부가 취재 지원 선진화 제도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뒤 나중에 후회했다”며 “당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반 협박했다. 한겨레 일부 칼럼이나 미디어오늘 일부 기사 역시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과잉 입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거론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 혹은 애매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첫 번째, ‘가짜 뉴스’라는 판단을 누가 할 것인가. 박근혜 정권 초기 세계일보의 정윤회 관련 보도는 100% 사실은 아니었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의 실체를 드러냈던 보도였다. 그 기사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 3년이나 지난 후인데, 그 사이 청와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걸고넘어졌다면? 세계일보가 내밀한 사정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세계일보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을 맞았을 것이다.

두 번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에서 언론에 엄청난 손해배상을 매기려면, ‘악의적’, ‘고의적’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 ‘악의적’, ‘고의적’이란 증거를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언론사에서 흔히 얘기하는 ‘조져버려’라는 말을 옆에서 듣거나 SNS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설령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법원에서 이를 ‘악의적’이라고 단정을 짓기는 쉽지 않다. ‘합리적 의심’이란 이름으로 빠져나갈 구석은 얼마든지 있다.

세 번째, 우리 사법 시스템상, 배상액을 높게 매기려면 그 비율만큼의 인지대를 내야 한다. 결국, 이 제도는 기업이나 정치 권력 등이 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국민에게는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은 법안이 될 수도 있다. 네 번째, 이미 우리나라에는 형법상 혹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라는 형사 처벌 시스템이 있다. 형사 소송을 감내하면서 거액의 배상금이 달린 민사 소송까지 감당할 수 있는 언론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작고 고발성이 강한 매체일수록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가 공허한 이유

결국 언론계의 주장은 ‘언제든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고, 현재까지 거론되는 관련 법안 발의 배경과 내용을 보면 우려의 소지가 없진 않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언론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사실상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 법이 악법이라 비판하고 있고, 진영을 떠나 언론 시민사회단체 거의 모두가 성명을 내고 관련 법 추진을 비판하고 있지만, 오마이뉴스-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한 국민의 60% 이상이 해당 법안을 찬성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중도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국민이 이 법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2021년 2월9일 전국 만 18세 이상 6946명에게 접촉해 최종 500명이 응답 완료. 응답률 7.2%, 무선(80%)·유선(20%) 무작위 생성 표집 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자동응답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많은 국민은 언론이 가진 권한에 비해, 또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에 비해 그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언론은 오보가 드러남에도 모른 체하다가. 많은 사람이 그 사건을 잊었을 시점이나 돼야 신문 한구석에, 그것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크디 만큼 정정 보도를 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비틀어 ‘탈진실의 시대’를 주도하는 것은 언론이고, 아니면 말고 식 근거 없는 추측 보도를 쏟아내는 ‘뇌피셜 저널리즘’에 길들여진 것도 언론이다.

여기에 고인과 유족의 뜻과 다르게 ‘알 권리’만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유서를 공개한다거나, 자식 잃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수십일 째 곡기를 끊은 아빠의 취미생활이 알고 보니 국궁이었다며 귀족 스포츠라고 몰아붙인다거나. 연예인 SNS 속 악플을 굳이 떼 와 제목으로 크게 달며 클릭 수만 모아대는 것도 언론이다. 언론은 이미 많은 독자의 혐오를 자초했다.

언론노조는 민주당에게 “언론개혁을 주문했더니 언론검열로 답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물었지만, 사실 독자들은 그동안 수도 없이 언론에 “너네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를 물었고, 언론은 그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상황을 이해 못 한다니.
 여전히 한국 언론은 기자에게 하루 수 건의 기사를 요구하고 있고, 남들이 다 쓰는 이슈 팔로업을 요구하고 있고. 포털에 눈살 찌푸리는 제목을 달아 송고하고 있고, 홈페이지에 덕지덕지 온갖 끈적이는 광고들을 붙여대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니?

그런 언론이 “언론개혁이란 미명하에 언론탄압을 한다”고 주장해봐야. 독자들로부터, 국민으로부터 돌아올 수 답은 “너희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란 얘기뿐이다.

언론을 구원하라

언론에 책임성을 강화하는 국회 개혁안을 피할 수는 없다. 20대 국회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앞으로 언론의 책임성을 따져 묻는 국민의 손가락질은 이어질 것이다. 지금 언론계에서 필요한 것은 이 법이 악법이라고 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라는 악화를 양화로 바꾸는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법에 허점이 있다면 그 점만 지적하면 그뿐이지, 참여정부가 엿 됐네 마네 협박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언론이 이제라도 자체적으로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개혁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충분한 취재 시간을 보장하고, 기사 한 건을 두고도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쟁해보고 또 보도자료나 SNS를 베껴 쓰는 잡문 따위를 기사로 포장하지 않으면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만으로는 언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 제도를 가장 많이, 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주체는 삼성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 때문에, 언론이 자정할 생각이 없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외의 카드를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문사들이 정말 몇 명의 독자들에게 유료 신문을 배부하고 있는지, 또 여론 형성에 따른 광고 단가가 제대로 매겨지는지, 방송사 광고가 공평하게 집행되고 있는지 또 왜 포털은 언론의 권한을 누리면서, 언론의 책임에 소홀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처벌조항은 시범경기일 뿐, 본 경기는 언론이 서식하는 생태계를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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