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드라마 3화_뉴스는 반만 믿어라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2월 2일 인천공항, 세계 최고의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입국했다.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몰려들었다. 그중 한 사람 탐품 박사에게 특히 많은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잡은 최고의 백신 개발자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기도 했다. 기자들은 탐품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비결이 뭐였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우리에게 해주실 말은?"

검은색 피부의 탐품 박사는 콩고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두 개의 바이러스와 싸워야 했습니다." 
 

"두 개의 바이러스? 그게 뭡니까?" 

"하나는 에볼라 였고, 또 하나는 가짜뉴스였습니다." 

 "가짜뉴스 바이러스?"

박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8년전 그 참혹한 광경이 떠올랐다.

2013년 12월 아프리카 기니의 국경 마을, 울창한 밀림지대에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두살 짜리 남자아이 '에밀'이 큰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형들처럼 나무를 타고 싶어'

아기는 나무 위를 오르려고 버둥거렸다. 그런데, 그런 아기를 말없이 내려다보는 수십 개의 눈이 있었다. 바로 큰 귀 박쥐들. 

어둠이 찾아오면 깊은 밀림 속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런저런 것을 먹는 어둠의 포식자들의 몸속에는 이름 모를 바이러스들이 살고 있었다. 푸드드득....박쥐들이 에밀을 향해 날아갔다. 

그날 밤, 에밀은 고열에 시달렸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모든 것을 토했다. 놀란 엄마는 에밀을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다. 아빠가 허겁지겁 아기를 병원에 데려갔다.

"말라리아 같은데요?" 의사들은 에밀이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인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처방을 했다. 병원에 갔다 온 뒤 에밀은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다음 날 또다시 불덩이처럼 열이 치솟았다. 그리고 쇼크 상태에 빠졌다. 다음날 불쌍한 아기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아기의 시신을 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온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온통 피범벅이었던 것이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아기의 시신을 깨끗이 씻겨줬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며 시신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시신에 입을 맞췄다. 죽은 자를 보내는 오래된 관습이었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피를 씻겨주면서, 입을 맞추면서 아기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기가 죽은 뒤 며칠 사이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에밀의 누나에 이어 엄마와 할머니까지 모두 사망했다.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던 끝에 피를 쏟으며.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졌다. 에밀의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위가 감염됐다. 그는 대도시에 살고 있었다. 급속도로 바이러스가 전파됐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고 의사들은 당황했다. 처음 보는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름을 지었다. 에볼라. 

에볼라는 콩고에 있는 강의 이름이었다. 에볼라를 치료해보겠다고 온갖 종류의 주술사들이 등장했다. 미신이 창궐했다. 하지만 그런 주술사들이 오히려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했다. 주술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곳곳으로 바이러스를 옮겼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WHO, 세계보건기구가 나섰다. 방역전문가를 투입해 거리 두기와 방역수칙 전달에 나섰다. 그러나 어둠의 목소리들이 방역을 방해했다. 

 "바이러스는 없다."

반군 지도자들이 퍼뜨린 가짜뉴스였다. 정부군과 십 년째 전투를 벌이고 있던 반군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점령지역에 의료진이 들어오는 걸 거부했다. 그들은 의료진 속에 정부군의 첩자가 숨어있다고 보고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에볼라같은건 없다. 정부가 꾸며낸 거짓말일뿐"

주민들은 가짜뉴스를 그대로 믿고 방역을 거부했다. 의료진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확진자는 급속히 늘어났다. 사망자도 늘었다. 그러나 의료진은 가짜뉴스에 막혀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시신에 입 맞추는 장례 문화를 바꿔보려고 죽은 자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관을 쓰게 했더니 또 다른 가짜뉴스가 돌았다. 

 "저건 시신의 장기들을 몰래 빼돌려 판 걸 숨기려고 하는 거야."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선거를 연기시켰다. 그랬더니, 

"독재정권이 투표를 못하게 했다. 궐기하라"

곧 무장시위대가 의료진을 습격했다. 수십 명의 의료진이 총에 맞아 죽었다. 의료진을 보호하려고 정부군이 투입됐다.

 "봤지? 군을 투입하려고 바이러스를 뿌린거야."

백신이 개발됐지만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백신 맞지마라. 우리를 무균상태로 만든다."

"인종청소를 하려고 바이러스를 만들어 뿌리고 있다. 바이러스 공장의 주소가 파악됐다."

수천 명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어갔다. 방역당국에 알리지 않고 땅에 묻힌 사람들까지 합하면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의료진은 백신 개발에 성공해서도 전염병을 잡지 못했다. 에볼라보다 더 무서운 가짜뉴스 바이러스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남의 일일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돌고 있습니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백신에 칩을 심었다. 뭘 먹으면 낫는데 정부가 이를 숨기고 있다더라 등등.

심리학자들에 인간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위협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뇌 신경계 편도체와 관련 있는 '친숙 편향'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백신처럼 처음 맞아보는 경험을 되도록 회피하려는 심리도 있습니다. '불확정회피' 경향이라 합니다.

낯선 것에 대한 공포, 백신에 대한 두려움을 숙주로 해 '가짜뉴스'가 전파됩니다.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대해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정확한 정보'를 챙겨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언론매체 중에도 누가 막연한 공포를 부추기는지, 누가 냉정함을 유지하며 정보제공에 힘쓰는지 구분해 봐야 합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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