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최근 ‘파이낸셜뉴스’라는 언론사가 기자들에게 경쟁 매체의 트래픽과 자사 트래픽을 비교하는 보고서를 매일 아침 보낸다고 해 논란이 됐다. 전날 발생한 주요 이슈와 그 이슈를 파이낸셜뉴스는 어떤 제목으로 보도했는지, 경쟁 매체는 어떤 제목으로 보도했는지 비교하고 각각의 트래픽 현황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미디어오늘에 보도된 내용으로 예를 들어보면, 현대자동차에서 여성 영업사원이 판매왕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파이낸셜뉴스는 ‘현대차, 첫 여성 판매왕 나왔다’는 평범한 제목을 써서 1만5천명이 봤고, 반면에 매일경제는 ‘혼자서 4940대 판매, 현대차 최초 여성 판매왕 나왔다’는 제목을 써서 18만5천명이 봤다는 식이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 뉴스는 기자들에게 보낸 리포트에서 “타사는 첫 여성 판매왕 탄생에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음. 우리 기사의 경우 짧고 직관성이 높은 제목을 달았지만 감각적인 측면이 부족”이라는 짧은 평가를 덧붙였다.

‘트래픽’, 사전적 의미는 서버에 전송되는 모든 통신 데이터의 양이고, 언론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온라인에서 이 기사를 봤느냐는 뜻으로 쓰인다. 페이지뷰(PV)라고도 하고, 클릭 수라고도 부른다.
 파이낸셜뉴스는 매일 아침 기자들에게 어떤 기사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또 똑같은 이슈를 다른 매체는 어떻게 써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를 매일 아침 기자들에게 피드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날 어떤 이슈가 있었고, 언론사가 그 이슈에 민첩하게 대응했는지, 기사의 논리적 완결성은 잘 이루어졌는지, 빼먹은 취재는 없었는지, 그 이슈가 오늘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어떤 논조로 우리 언론사에서 대응해야 할지. 바로 전날 그 매체가 쓴 기사를 두고 언론사가 기자들에게 피드백할 수 있는 영역이 이렇게나 많은데, 파이낸셜뉴스는 트래픽 딱 하나만 기자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이 뉴스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수많은 기자와 데스크들은 뉴스가 아니라 트래픽을 쫓고 있었다. 데스크에게 사랑받는 기자는 특종 물어오는 기자보다 이 특종을 자극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기자가 된지 오래다.

매우 저열한, 아니 실수. 저명한 언론사들은 20대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연예인 인스타그램 사진을 ‘펌질’해 기사를 가공하고 있고, SNS 시대를 선도하는 뉴미디어는 편집국 한쪽에 커다란 TV를 달아놓고 실시간 트래픽 현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주식 시장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를 보여준다. 밖에서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폼 나게 역설하다가도 편집국 안에 돌아가면 “오늘 PV가 왜 이래?”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트래픽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당연히 돈이다. ‘2020 신문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신문산업 매출액 구성 현황 중 1위가 광고 수입이다. 전체 매출액의 66.5%를 차지하고, 인터넷상의 콘텐츠 판매액도 6.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 역시 광고 수입이 전체 수입의 61.7%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콘텐츠 판매액이 22.3%로 의존도가 크다. 인터넷 매체는 거의 대부분, 그리고 신문산업도 적지않은 비중이 온라인 광고 수입일 것이며, 온라인 광고 수입은 대체로 PV로 산정한다. 또 자사 PV로 유입되지 않더라도 PV가 높아지고 영향력이 확대되면 포털에 콘텐츠 판매액도 늘어나게 된다.
 언론사 역시 회사고, 기자 역시 노동자임은 분명하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공짜 뉴스가 횡행하니 국민들은 구독이나 후원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생존을 위한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책은 트래픽이고, 이 현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좋게 봐줘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고 넘어가자니, 너무나 엉망진창이다. 언론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트래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벌이 수단 그 자체로 트래픽을 다루고 있다. 
 네이버에 검색어만 걸리면, 그것이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진보든, 보수든 사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동원해 똑같은 기사를 ‘복붙’해내고, 사람이 죽었든, 범죄 피해에 노출됐든 트라우마에 시달리든 PV만 되겠다 싶으면 가리지 않았다. 유족이 유서 공개를 하지 말아 달라 호소했지만, 조선일보는 버젓이 타인의 사적 유서를 공개했고, ‘찌라시’라는 온갖 비난을 들었지만, 수많은 트래픽을 받아내 큰돈을 벌었다.

이 언론사들은 과거 네이버 뉴스스탠드 시절, 자신들이 편집한 화면이 네이버 메인화면으로 배치됐을 때, 썸네일을 살 색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끌어당긴 트래픽으로, 호객행위에 끌려온 고객 하나하나로 최대한의 돈을 뽑아내기 위해 왼쪽에서 X누르고 오른쪽에서 X눌러야 지워지는 광고, “사장님의 그것이.. 아앗!”이라거나, “비뇨기과에 왠 여의사가 있다”거나 하는 광고들을 더덕더덕 붙여댔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파이낸셜뉴스 기자들은 하루하루 다른 매체가 얼마나 자극적인 제목을 써서 얼마나 많은 호객행위를 했는지 리포트를 받고 있다. 그러니, 얼마 전 만취 여성을 강간하려 한 택시기사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제목에 “속옷 없어졌어”란 문장을 덧붙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는 미디어오늘의 질문에 김용민(?!)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은 “우리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온라인 기사 중요도가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특별히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고 억울해했다. 그 말은 진실이다. 그러니 자기들만 비판을 받으면 억울한 거다. 실제로 수많은 한국 언론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시선도 그에 비례해 싸늘해지고 있다. 한국 언론이 정파적이라 비판받지만, 언론은 정파적일 수 있다. 때로 선을 넘는 오보에 뇌피셜에 가까운 논리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언론에 쏟아지는 시선은 ‘경멸’이고, 이 경멸의 기저엔 언론의 돈 욕심, 트래픽 욕심이 있다.

애드버토리얼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기사형 광고가 진짜 기사처럼 보도되고, 삼성이 갤럭시만 출시하면 은하계가 발칵 뒤집힌 것처럼 떠들어대는 언론, 어떻게 이재용만 구속되면 그 사람이 알고 보니 한국 경제를 떠받드는 슈퍼 히어로였다고 보도를 해대는 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경멸과 이 트래픽 쟁탈전을 바라보는 눈빛은 똑같다.

언론인이라고 빚을 져 가며 사비를 털어 취재하고, 월급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인이 부동산 투기를 하고, 삼성 주식을 사고, 억대 외제차를 끌고 다닐 필요는 없다.

자극적인 제목, 검증 안 된 기사, 선정적인 내용으로 클릭 수만 빨아들이면서, 제 배만 불려왔던 기자들이. 탈진실의 시대, 진실의 탐구자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누굴 비난할 것도 없다. 이런 시장 현실을 만든 건 포털 아니냐며 소리 지를 일도 아니다.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그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밖에서 누가 한다고 하면 ‘언론 탄압’이라고 할 것 아닌가?

트래픽은 기자들의 배를 부르게 하는 트래져가 아니다. 트래픽만 쫒다 보면 언젠가 사고(Accident)가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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