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변호사 / 법무법인 상록 ( 前 판사 )

최근들어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판결들이 1심 재판부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 정경심 교수에 대한 징역 4년 판결 및 법정구속, 그 다음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결정,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에 대한 무죄판결, 신천지교회 이만희에 대한 무죄판결, 최강욱의원에 대한 국회의원직 상실형 판결.

이러한 판결들은 2019년 7월경부터 시작된 윤석열의 조국 관련 수사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기득권세력들의 총반격 공세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조중동 주도의 보수적인 여론 지형이 문재인 정부의 임기 하반기와 맞물리면서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는 흐름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판사들의 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인 편이라는 점은 대체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시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관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전관예우 변호사로 변신하여 벼락부자가 되는 것까지 덤으로 보장받는 것이어서 소위 출세의 상징이고 기득권세력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가혹한, 유전무죄 유전무죄로 상징되는 기득권세력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법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2019년 7월경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가속화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그러한 느낌적인 느낌의 배후에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조중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조선일보는 오래전부터 소위 ‘판사다움’이라는 프레임을 구축하여 치밀하게 ‘판사 길들이기’를 하여왔다. 그리고 판사들은 평소에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조중동 일간지를 즐겨 읽으면서 조선일보의 판사다움이라는 프레임을 내면화해 왔다. 그 과정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일보식의 판사다움이란, 재벌·검찰권력·언론권력 중심의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각종 개혁적인 움직임에 적절한 제어를 하는 역할을 말한다. 이를 법조계에서는 사법 소극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기존 사회질서를 대변하는 헌법, 법률의 문언적 의미를 글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하여 행정부의 정책 결정 등에 대하여 ‘사법부 자제’의 미명하에 사실상 개혁에 소극적인 판결을 선고하는 경향을 말한다. 

둘째, 조선일보는 ‘판사라면 모름지기 최종 판단자이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소위 균형잡힌 시각을 갖춰야 한다’ 라는 식으로 사설, 언론기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그러한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는 얼핏보면 그럴듯해 보이만,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이 강자, 기득권세력에 치우쳐져 있는 기울어져 있는 법정이라는 측면을 감안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정이 균형 잡힌 상태라면 판사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괜찮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걸맞은 합리적인 판결이 선고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정 자체가 이미 강자에 기울어진 상태이다. 그러하기에 판사가 좋은 뜻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강자에 치우친 보수적이고 사법 소극주의적 성향의 판결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 조선일보는 이러한 조선일보식 판사다움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선고하거나 행동하는 개혁적 성향의 소장판사들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균형을 잃어서 판사답지 못하고, 편향되어 있다’ 라는 식으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인신공격을 주도하여 왔다. 판사들은 언론플레이에 능한 검사들과 달리, 이러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편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에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게 된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그동안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에 대하여 좌파 판사로 매도하는가 하면, 사법농단 관련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등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추진 등에 반대하여 온 소장판사들에 대하여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라는 식으로 낙인찍어 왔다. 심지어 2008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개입사건 관련 집시법 위헌제청을 했던 박재영 판사에 대하여, 그 분은 우리법연구회 출신도 아니고 사법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소장판사도 아니었고 그저 묵묵히 일선에서 양심적이고 합리적으로 재판에만 전념해오신 분임에도 ‘차라리 법복을 벗고 광우병 촛불시위에 나가라’라는 식으로 마녀사냥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판사들은 대부분 조선일보의 논조에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보는 편이다. 나아가 어떤 판사들은 조선일보로부터 ‘과연 판사답다’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강자에 치우친 보수적이고 사법 소극주의적인 판결을 적극적으로 양산해 내기도 한다. 

물론 이처럼 판사들의 의식세계에 이러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것도, 그들이 조선일보를 즐겨 읽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일보는 종이신문의 위력이 거셌던 2010년 이전의 시대에, 일간지 구독자 선두그룹으로서 막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는 판사들 세계에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다른 일반적인 직장이나 공무원 세계보다 더 심했다. 왜냐하면 판사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엘리트로서 우리나라의 주류 지도층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보니, 소위 당시의 일간지 업계에서 주류에 속하는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2000년 판사로 임관했을 당시부터, 판사실에 매일 아침 배달되는 일간지는 거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였다. 매년 재판부가 변경되고 소속 법원을 옮길 때마다 그랬다. 

둘째, 게다가 판사들의 성향이 가급적이면 기존과 다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임 판사들이 구독 요청을 해놓은 조선일보에 대하여 굳이 다른 신문을 구독하는 것으로 변경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2004년 인천지방법원으로 옮기면서 처음 단독판사가 돼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위를 얻게된 이후,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을 구독하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눈치보지 않고서 소신있게 시도하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을 구독하는 것으로 변경하게 되면 판사들 사이에서 당장 소문이 나곤 했기 때문이다. 두가지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 자체가, 좌파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내비치는 측면이 있어서이다. 그러고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판사들 어느 누구도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구독하는 동료 판사들에게는 ‘우파적 성향’이라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고, 조선일보야말로 판사들의 사회적 위치에 잘 어울리는 균형적인 시각의 신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셋째, 물론 이러한 경향은 2010년경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종이신문을 거의 구독하지 않게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포털 사이트에서, 조선일보가 주도하는 온라인 여론의 프레임이 지배적인 흐름을 차지하게 되면서, 판사들의 의식세계에 조선일보가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노출량과 빈도 등이 편집되다보니, 조선일보 주도의 온라인 여론은 여전히 강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사들은 그 특성상 유튜브나 sns를 통한 여론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는 조선일보가 여론을 주도하는 포털사이트의 언론기사를 주류로 인식하고, 위와 같은 유튜브나 SNS 등의 대안 언론을 비주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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