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적 증거 부족·사료 왜곡이라는 심각한 방법론적 결함 있는 연구”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천48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이 위안부는 매춘부였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쓴 램지어 교수를 규탄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논문을 발표해 물의를 빚고 있는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소속 대학과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하버드대에서 인문학 및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들도 렘지어 교수의 논문을 규탄했다.

하버드대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생들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렘지어 교수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84명의 대학원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렘지어 교수의 논문을 두고 “역사부정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형성된 식민지적·젠더적 폭력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지적하며 “실증적 증거 부족과 사료 왜곡이라는 심각한 방법론적 결함이 있는 연구를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옹호하는 것은 도리어 그 학문의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연구자이자 예비교육자로서 ▲바람직한 학술활동이란 어떠한 것인가 ▲학제간 분류를 초월하여 모든 연구자가 공유해야 할 직업윤리(professional standard)란 어떠한 것인가 ▲인류에 기여하기 위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의 대목적에 대한 상기 등을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생들은 성명서에서 렘지어 교수가 위안부 여성들이 겪었던 참혹한 역사적 경험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제의 논문은 ‘위안소’에 만연했던 강압과 폭력, 식민지적 위계는 물론, 그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여성들의 경험을 부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가 차용한 ‘계약 관계(contractual dynamics)’ 프레임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주체성을 부여하여 마치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경제 주체였던 것으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고 했다.

‘학문의 자유’라는 차원에서도 렘지어 교수의 논문은 결코 옹호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 논문의 공과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로 학문의 자유를 호명하는 행위는 도리어 그 개념의 가치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것이며, 엄밀한 지적 대화의 기본 전제를 위태롭게 할 뿐”이라며 “만약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이 실증적 근거를 결여한 무책임한 주장을 옹호하는 기제로 오용된다면, 이것은 단지 또다른 형태의 구조적 폭력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엄밀한 방법론과 치열한 실증을 바탕으로 수행된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다양한 인간 사회 현상들의 복잡성, 모순, 불평등을 드러내고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고양시킨다”며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앞으로 고등 교육 현장에서 일할 교육자로서, 우리는 학문 활동이 종국적으로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상을 믿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그러한 미래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 예증된 것과 같은 담론 권력의 오용이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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