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11월 한국ABC협회 내부 관계자의 폭로와 2021년 2월 15일 단독으로 보도한 ‘문체부, 조선일보 유료부수 116만? 부풀리기 정황 잡았다’ 기사로 인해 일간신문을 발행하는 주요 언론들이 발칵 뒤집혔다. 2월 기사에서 주로 지목된 언론사는 조선일보뿐이긴 했지만, 그간 한국ABC협회 회원사 간의 암묵적인 동의와 외면 속에 유료부수 부풀리기가 만연해왔다는 의혹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신문지국 현장조사로 인해 수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언론들의 대응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놀랍도록 한결같았다.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와 같은 미디어비평지나 일부 방송사를 제외하곤 관련 보도가 전무했다. 일간신문 업계의 치부에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한 셈이다. 

일부 정치, 검찰발 이슈에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수시로 나올 만큼 기사를 쏟아내는 것에 비해 ABC협회 관련 기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ABC협회’로 검색한 결과, 2021년 보도된 기사의 수는 32건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이 없는 5건의 기사를 제외하면 27건이 전부다. 

ABC협회의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지난해 11월부터 제기된 점을 감안한다면 주요 언론들의 반응은 생경할 정도로 낯설기까지 하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미디어오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보도한 언론사는 KBS와 YTN이 각각 5건의 기사를 내보낸 정도다.

일간신문 가운데 ABC협회 관련 기사를 보도한 곳도 거의 없다. 주요 언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 언론사 중에서는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각각 1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앙일보는 2월 10일 박용학 전 한국ABC협회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한국일보는 2월 24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수사 의뢰 가능한지 법률 자문 맡겼다” 발언, 경향신문은 3월 1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강제수사를 통해 협회와 신문사 간 공모 여부를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발언, 한겨레는 3월 2일 시민단체들의 조선일보와 ABC협회 검찰 고발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한 것이 전부다.

경제지 중에서는 머니투데이와 한국경제가 2건, 서울경제와 아시아경제가 1건을 기사화했다. 하지만 보도된 기사들도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을 규명하거나 다각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기사화하는 것에 그쳤다.

“유료부수 부풀리기, 어제오늘의 일도,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의 침묵은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자신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반성한다거나 사과를 바라기에는 그간 조선일보가 걸어온 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기대 자체가 민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간신문의 공사 결과를 발표하는 현행 ABC협회 제도 아래서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언론사 중에 하나다. 조선일보가 지난해에만 782건의 정부 광고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만 76억1600여만원에 달한다. 동아일보는 95억1500여만원(869건), 중앙일보는 83억2000여만원(881건) 규모다. ABC협회가 발표하는 유료부수는 언론사의 광고단가는 물론, 국고보조금 액수에도 영향을 미치는 주요 지표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선일보 신문·뉴스 유통 보조금 내역’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신문수송 및 우송비 지원 명목으로 2016년 4억2200만원, 2017년 4억700만원, 뉴스통신지원으로 2018년 3억6300만원, 2019년 3억1300만원, 2020년 3억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의 대상이 조선일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물론,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ABC협회 발표에 따르면, 2020년(2019년도분) 조선일보의 유가율은 무려 95.94%에 달했다. 100부를 발행한다고 했을 때, 96부가 구독료를 내고 신문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갈수록 종이신문의 구독률과 열독률은 나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현실 불가능한 지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ABC협회가 발표한 한겨레 유가율은 93.73%였다. 100부를 발행한다면 94부를 돈을 내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체부가 실시한 지국 현장조사 결과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총 3곳의 지국에서 보고 부수는 1만6768부였지만, 실사부수는 7870부로 평균 성실율이 46.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진보언론’에 거는 기대는 분명하다. 적어도 조·중·동이라 불리는 이들과는 최소한 구별된 행보,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유료부수 문제는 일간신문들에게 당장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여년 동안 제기돼온 현실성 없는 유료부수와 관련된 논란의 중심에는 언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신뢰’와도 맞닿아있다. 

이태봉 사무처장(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유료부수 부풀리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진보언론들마저 침묵하는 현실에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 사무처장은 “언론이 잘못한 게 있으면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나서서 바로잡고 해야 되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무처장은 “유료부수 부풀리기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게 잘못됐다는 건 당사자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겠나”라며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다. 저희 같은 시민단체가 고발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한 반발, ‘카르텔’ 못지않은 기자단 문제, 유료부수 조작 의혹 등 연이어 터지고 있는 언론 관련 이슈들로 인해 ‘신뢰’가 생명인 언론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사무처장은 “시민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언론들의 저널리즘이나 공정성이 없다는 걸 목격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언론이나 언론인들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감춰져 있고 과대 포장됐던 부분들이 드러나면서 언론개혁의 계기, 시작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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