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중항쟁 응원하는 조선·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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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중항쟁 응원하는 조선·동아일보
  • 신비롬
  • 승인 2021.03.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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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무 신비롬 기자]

군부 쿠데타로 인한 미얀마의 참극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언론 역시 미얀마 사태를 연일 보도하며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중에는 과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사 정권 편에 섰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있다. 

미얀마 군부, 총선에서 국민민주연맹 승리하자 ‘부정선거’라며 쿠데타 일으켜 미얀마는 오래 전부터 군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1962년에 일어난 쿠데타 이후 군부는 계속 미얀마 정권의 배후에 자리매김했다. 미얀마군 통수권자는 헌법상 미얀마군이 스스로 임명하며, 비상사태 및 국가비상사태 시 입법·행정·사법권 모두 군 최고사령관에 귀속되는 등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또 상·하원 의석 25%가 군부에 할당돼 개헌조차 쉽지 않다.

1988년 8월 8일 군부에 대항해 시민들이 일어났지만, 군부는 무차별 총격으로 이들을 진압했다. 당시 시민 약 3000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고, 10000여 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그 여파로 1990년 자유총선이 실시됐으나 군부 세력이 패배하자 선거를 무효화하고 다시 독재의 길로 돌아갔다. 

그 후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이 전체 의석 62.4%를 차지했다. 2015년에 이어 두 번 연속 집권한 국민민주연맹은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힘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군부에 의회 25%를 할당해주는 헌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거부했고, 이는 곧 쿠데타의 도화선이 됐다. 
군부는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의회 해산 후 군부 주도하에 재투표할 것을 강요했고, 미얀마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2월 1일 비상사태를 선포,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쿠데타 규탄 대열에 조선·동아일보도 합세

미얀마의 쿠데타를 지켜본 세계 각국은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리에는 유혈이 낭자했고, 군인들의 의료진을 폭행하고 총에 맞아 죽은 시신을 도굴하기도 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가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했고, 미국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나 ‘유럽연합’,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미얀마 사태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6일 “미얀마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며,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해 구금된 인사들의 즉각 석방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언론들도 미얀마 사태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10대 일간지라고 불리는 매체부터 작은 매체들까지 모두 미얀마 사태를 앞다퉈 보도 중이다. 그중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눈길을 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 1일 ‘총선 불복 군부의 쿠데타.. “아웅산 수치, 군부에 의해 구금”’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시작으로 ‘군부와의 위험한 동거하다.. ‘미얀마의 봄’ 10년 만에 빼앗겨’, ‘“미얀마 시위 여성 실탄 맞았다”.. 군부, 고무탄도 동원해 강제 진압’, ‘고무탄·곤봉에 피 흘리는 시민들.. 미얀마 폭력진압 영상 확산’, ‘평화 시위대 두려웠나.. 미얀마 군부, 전국 7곳 계엄령 선포’ 등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고 폭력 진압을 비판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동아일보 역시 미얀마 군부 비판에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일보는 ‘미얀마 군부, 태권소녀 무덤 파헤쳐··· 사인 조작 노린 듯’, ‘미얀마 군경, 아우산 수지 측 인사 심야체포·· 고문 후 사망’, ‘반 쿠데타 시위, 피로 물든 미얀마의 1주일’ 등 약 211개의 쿠데타 반대와 폭력 진압 비판 기사를 썼다.

이들의 현재 행보를 보면 마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군부의 쿠데타와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열 올리는 조선·동아일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부 편에 서 미얀마의 쿠데타 저항운동은 과거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오르게 한다. 1980년 광주시민들은 민주 정부 수립과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며 군부 세력에 맞서 저항했다. 이에 전두환과 군부는 이들은 군홧발로 짓밟고 사태를 은폐·조작했다.
당시 언론은 어땠을까? 오늘날 미얀마 사태처럼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을까? 
수많은 시민이 죽고 다쳤지만, 우리나라 대부분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군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19일 학생과 시민들을 향한 집단 발포가 있었지만, 어느 신문도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군부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은폐하고 편향되고 조작된 보도를 일삼기까지 했다. 그 대표적인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다. 
이들이 당시 보도했던 기사들을 살펴보자.

 조선일보, 광주민주화운동 향해 “극심한 난동”, “폭도들” 

조선일보는 5월 22일 왜곡·날조된 계엄사 발표 내용을 그대로 옮긴 보도를 시작으로 군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5월 22일 ‘광주 일원 소요 사태’라는 제목의 기사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계엄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광주지역 소요가 극심한 난동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상은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소요 주동 학생 및 깡패 등 현실 불만 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데 기인됐다고 한다”라고 썼다.

같은 날 ‘고정간첩 침투 선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선 “지난 18일 수백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재개된 평화적 시위가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방화·장비 및 재산약탈 행위 등을 통해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된 것이다”라고 썼다.

또 5월 23일 ‘광주 사태 수습 기미’라는 기사에선 “폭도들은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을 탈취, 무장하고 광주시청, 전남도청 등 주요 공공건물을 차례로 점거하는 한편...”이라며 광주시민들을 폭도라고 표현했다. 

5월 25일 ‘도덕성을 회복하자’라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에겐 지난날 대구와 제주의 폭동사건 그리고 여순반란사건 그리고 성남시와 사북에서의 소요사태 등의 경험이 또한 있다”며 광주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제주 4·3, 여순사태를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에 비유했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광주시민들을 폭도, 간첩, 불순인물 등으로 매도했고, 민주화운동을 난동행위라고 표현했다.

조선일보는 단순 왜곡·날조 보도뿐만 아니라 군부를 옹호하기도 했다. 5월 28일 사설에서 광주를 총칼로 위협하고 짓밟았던 계엄군을 향해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계엄군은 계엄사령관이 지시했듯이 계속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의 군대로서의 사명을 다해 줄 것을 우리도 거듭 당부해 마지 않는다”며 추켜세웠다. 

 “김대중이 추종 학생들 조종 선동해” 군부 입장 그대로 옮긴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그나마 양반이다. 동아일보는 5월 19일부터 5일간 사설을 뺀 채 신문을 발행했다. 동아일보의 자발적 사설 누락은 검열로 언론사의 주장을 펼 수 없었던 상황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다는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동아일보는 군부 계엄사가 불러주는 내용 그대로를 받아쓰며 군부 세력의 옆에 섰다.

침묵과 단신으로 일관하던 동아일보는 5월 31일 ‘광주사태 사망 170명’이라는 기사에서 “계엄사는 이번 사태의 여러 양상으로 보아 조직적인 배후조종세력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배후세력을 철저히 규명하고 조사 진행에 따라 극렬적 악질행위자, 살인범 등 범법자들을 엄격히 선별, 군법회의에 회부 엄중 처단할 것이며... (중략) 이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북괴의 고정간첩과 이에 협력하는 불순위해 분자들의 책동 흔적이 있는데 23일 검거된 간첩 이창룡의 진술과 당국에서 포착된 몇 가지 징후가 일치 실증됐으며 학생 소요를 조종해온 김대중이 전남대와 조선대 내 추종 학생들을 조종 선동하여 온 것이 소요 사태의 발단이 되었고...”라는 계엄사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이후 두 신문은 경쟁적으로 전두환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1980년 8월 ‘새 역사 창조에 신명 바치겠다’, ‘3군 지휘관 결의’, ‘인간 전두환’과 같이 전두환을 띄우는 기사를 연속 보도했다. 이에 질세라 동아일보도 ‘새 정치질서의 재편’,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왜곡, 조작 보도에 사과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군부 세력의 위협으로 인해 당시 모든 언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 언론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정운현 당시 대한매일 기자는 “5·18 당시 일부 언론이 나름대로 진실을 보도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언론은 신군부의 통제하에 놓인 상태에서 왜곡·허위보도로 신군부의 광주 학살을 거드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언론은 신군부의 통제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신군부를 지지하기까지 했는데, 그 대표적인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만 언급했지만 동아일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이런 신문들이 지금은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진압을 비판하고 미얀마 시민들을 저항운동을 소개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조선희 미디어교육팀 팀장은 “조선일보, 동아일보라고 해서 눈에 뻔히 보이는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비판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시민들, 독자들이 얼마나 조선·동아일보의 지적을 신뢰할 것인가. 당위적이라고 생각할 것인가”라며 꼬집었다. 조 팀장은 “먼저 친군부, 친독재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해야만 지금 하는 보도에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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