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정상근 프리랜서 기자 

 지난달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독’을 달고 “벚꽃 추경 19.5조원 ‘확정’”이란 제목의 보도를 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올해 첫 추경안 규모를 19조5천억 원으로 결정했다”는 것, 그리고 “민주당은 추경안을 최종확정하고 이달 18일까지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정도의 사실관계를 담은,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관심도 재미도 없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기사에 MBC는 앞으로 6개월 동안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수 없게 됐다. 단독 기사를 썼다고 출입정지 6개월이라니? 그때 기획재정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사건 개요는 이렇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3일 오전 10시, 기재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해 편성한 올해 첫 추경안 규모를 설명하는 ‘엠바고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달 26일 오전에 이를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는 ‘상세 브리핑’을 진행하기로 했고, 이달 2일, 실무자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 엠바고를 해지하기로 했다.

엠바고, 쉬운 말로 풀면 ‘보도 유예’, 한 마디로 어떤 일은 벌어졌는데. 그 뉴스의 주체가 이를 알려주면서, 언제까지 보도하지 말아 달라는 전제를 다는 행위다. 또는 기자들끼리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언제까지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는 행위다.
 기재부 기자단은 기획재정부의 엠바고 브리핑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포괄적 엠바고’에 동의했다. 기재부 출입 기자뿐 아니라 기자단에 출입하지 않는 기자들, 혹은 다른 기자단에 소속된 기자들도 이 보도를 언제까지 보도하지 않겠다고 자기들끼리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엠바고가 필요한 순간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목숨과 안전이 달린 일은 그렇다.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경찰이 구조를 위한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우리가 이런저런 작전으로 이렇게 구조하려고 하니, 너무 국민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는 쓰지 말아달라” 이렇게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매체가 바로 그 작전을 기사화했다고 생각해보자. 작전은 그야말로 폭망 하고, 인질들의 목숨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온다. 그럴 때, “이 작전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엠바고를 유지해달라”고 당부하는 건 매우 상식적인 행동이다.

또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외교적 이벤트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어그러질 수 있다. 그런데, 기자라는 동물들은 어쩌다 취재가 이루어지면 기사를 내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대략적인 윤곽만 미리 알려주고, 아주 민감한 사안이니, 보도를 어느 시점까지 자제해 달라 요청할 수 있다. 그럼 기자들 모두가 들은 이 정보는 다른 경로를 통해 다시 듣더라도 엠바고가 걸려 있기 때문에 보도하기 어렵다. 이렇게 선제적으로 보도를 차단할 목적으로 엠바고를 걸기도 한다. 이 역시 그럴 수 있다.

아마 기획재정부의 엠바고 브리핑 역시 불필요한 보도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추경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나가거나 앞선 보도가 나가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윤곽만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MBC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 엠바고 약속을 깨고 보도해버렸고, 기자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MBC를 응징했다. 그렇다. 이것은 권선징악의, 매우 정의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버리기엔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첫 번째. MBC는 해당 보도를 기획재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을 통해서 했다. 엠바고를 건 것은 기획재정부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취재한 기자까지 엠바고를 지켜야 하나?

물론, 얄팍하지만, 우회 취재는 할 수 있다. 엠바고가 걸려있다고, 그래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그 정보를 들은 기자가 반드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언론사 내부로 정보보고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 정보보고를 본 여당 출입 기자가 여당 관계자를 떠봤을 수 있다. 대략적인 예산 규모가 맞으니, 여당 관계자가 굳이 부정하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엠바고를 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엠바고는 반드시 지켜야 하나? 아까 언급한 불가피한 경우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추경 규모가 불가피한 엠바고일까? 물론 지원금 지급 대상과 규모가 달린 만큼, 누군가에겐 매우 민감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추경 규모가 몇조라는 단순한 사실이 막판 조율 중이라는 사실이 나라가 뒤집어질 만큼, 아니 어느 매체의 취재를 6개월이나 제한해야 할 만큼, 중대한 일일까?

엠바고 파기와 관련해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일례가 ‘제미니호 사건’이다. 지난 2011년 4월, 한국인 선원들이 타고 있던 싱가포르 국적의 선박 ‘제미니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사건이다.

4명의 국민이 해적에 잡혔는데, 우리 국민은 그 소식을 무려 16개월간 몰랐다. 외교통상부가 엠바고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엠바고를 걸고 그 긴 시간 동안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외교통상부에 출입하지 않는 미디어오늘과 시사인이 엠바고를 깬 이후 4개월 만에 피랍된 국민은 풀려났다.

당시 외교통상부 기자들은 당시 엠바고가 걸려 있다는 이유로 제미니호 선원들이 피랍된 사실을 알고도 보도도 하지 않고, 왜 구출하지 않냐고 더 묻지도 않았다. 이런 엠바고를 지킬 필요가 있는가? 

엠바고는 출입처, 혹은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걸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출입처는 복잡해지기 싫어서, 보도가 나가는 게 싫어서 엠바고를 거는 경우가 있고, 기자단은 서로 출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즉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엠바고를 스스로 거는 경우가 있다. 두 경우 모두 국민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래도 저 두 가지 질문은 마지막 질문에 비하면 의문 축에도 들지 못한다. 마지막 질문. 엠바고를 파기한 기자에게 다른 기자들은 무슨 권리로 징계를 내리는 것인가?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은 MBC가 엠바고를 파기했다며, MBC 기자의 기획재정부 기자실 출입을 무려 6개월이나 금지시켰다. 언론이 다른 언론의 ‘언론의 자유’를 훼손한 것이다. 기자단이 무엇이기에 다른 기자의 취재를 허용하고 안하고를 결정하고, 기자단이 무엇이기에 다른 기자의 취재를 막는 것인가?

기자단 중에서는 부처 기자실 사용료를 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기자단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기자단에 가입되지 않으면 수백만원을 내더라도 기자실 한쪽에 낚시 의자도 갖다 놓을 수 없다. 기자단을 보유한 매체가 기획재정부 건물을 세운 것도 아니고, 기획재정부 1년 예산을 기자단 소속 기자들만 내는 것도 아닌데 누구 마음대로 자기들끼리 기자단을 구성하고, 다른 기자를 심사하며, 취재를 제약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검찰의 판사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해당 문건을 오마이뉴스가 공개하며, 이것을 사찰로 볼 것인지 아닌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1년간 법조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징계를 받았다.(대법원 기자단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앞서 역시 오마이뉴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문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역시 1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두 건 모두 독자들이 직접 보면 사건의 이해를 넓히기 용이한 자료들이었다. 근데 왜 징계를 기자단이 내리나?

충분히 쫒겨날 만 한 일이긴 했는데, 서울시청 공무원실에 무단 진입한 조선일보 기자는 아예 기자단에서 제명됐고, 듣도 보도 못한 갑질을 해댄 뉴데일리 국방부 출입 기자도 퇴출됐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서울시청, 국방부가 내려야 하는 조치지, 기자단이 그런 조치내릴 권한도 없고 의무도 없다.

기자단은 숱한 비판과 질타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타 매체의 취재를 제한하며 얻어낸 생명력으로 버텨왔다. 또 이런 기자단과 부처는 엠바고를 만병통치약처럼 써대며 유착해왔다. 한국 저널리즘 혁신은 이런 구태와 멀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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