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숙·박유미 교수 “여성없음이 한국교회 미래없음이다”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 상하이 임시정부의 잔다르크 정정화, 여성을 위한 진료와 교육에 헌신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불평들에 맞서 싸웠던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을 기억하는가?모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최초란 이름의 수식어를 단 여성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통용되던 시절,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천대받음을 당연시하지 않고 사회변혁을 이끌었던 용감한 여성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나면서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21세기를 지나는 지금도 여성 목회자를 탄생시키지 못한 채 낡은 구습에 매여있는 교단이 있다. 바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합신, 고신교단이다. 이러한 교계 현실에서 여성인권을 외치는 여성 신학자이인 강호숙·박유미 박사를 <평화나무>가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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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강호숙 박사(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오른쪽) 박유미 박사(안양대학교).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총신대 출신 시간강사들이 모여 연구 · 세미나 등을 하는 성경연구소다. 20145월 문을 연 연구소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며 박유미 박사가 소장을 맡고 있다.

- 두 분은 어떻게 처음에 신학을 하게 됐나?

강 박사와 박 박사가 신대원을 다닌 시기는 다르다. 박유미 박사는 대학 졸업 후 25세에, 강호숙 박사는 결혼 후 두 아이를 출산한 35세에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공통점이 잇다면 두 사람 모두 신대원 입학 이유에는 큰 욕심은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박유미 : 대학 시절 작은 교회를 출석하면서 성경공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다. 당시 사랑의교회와 소망교회가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던 교회들이 있었는데 같은 강남에 있으면서도 내가 섬기는 교회는 규모가 작고 청년부도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전도사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주는 큰 교회로 옮기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이 말을 들은 전도사가 나랑 같이 공부하자고 해서 나까지 세 명이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성경은 배울수록 목사님 설교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한 성경과 목사님의 설교에서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데다 장녀였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으나, 어머니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고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강호숙 : 결혼 후 35세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남편은 외아들인데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시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처럼 돼버렸다. 내 잘못이 아닌것도 다 내 잘못인 것 같았고 교회를 가면 ‘(아들을 낳기 위해) 기도를 더해라’,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내리 두 딸을 낳고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다. 나는 무신자 집안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신앙을 지켜왔기 때문에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 때문에 자살할 만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당시엔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믿음없음으로 받아들여다. 그래서 누구에게 제대로 말도 못 했고 많이 눌려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여덟시간씩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으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나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 우울증도 극복했다. 그러나 신학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신대원에 진학했다. 결혼 10년차가 됐을 때였다. 당시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세 살 때였다

-신학대학원을 입학한 후, 교계 현실에 눈뜨게 됐을 것 같은데?  

박유미 : 25살에 입학하기도 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신학대학원에 왜 왔냐고 끊임없이 물었다. 동기 중에 젊은 여학생이 몇 명 있었는데 우리 세대 전에는 전도사라고 하면 대부분 나이가 많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이미지에 수동적인 경우가 많았다. 사연이 있어 뒤늦게 신학을 했던 경우들이 많았던 시대였다. 그런데 학교에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들어오니까 학교측에서는 신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계속 물어봤다. “왜 왔냐는 질문은 100번쯤 들은 것 같다.

처음에는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인사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순진하게 성경 공부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는데 질문의 횟수가 지나치니까 차별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 날 자기소개 시간에 나에게 왜 신학대학원에 왔는지 물어보지 말아라. 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곳에 왔다. 나는 사모될 생각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왔으니 그런 질문을 하지 말아라라고 말해버렸다.

목회학 시간에도 걸리는 부분들이 생겼다.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목사는 여자와 돈, 권력을 조신해야 한다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고가 반영된 수업이 이어졌다.

강호숙 : 우선 시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시부모님은 교회 장로와 권사셨는데 신학을 하려면 처녀때나 하지 왜 결혼해서 신학공부 시작해서 우리 아들 힘들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하셨다. 주변에서도 왜 낳으라는 아들은 안 낳고 신학을 하느냐고 했다. 학교에 가면 남학생들이 집에 가서 애나 보지 왜 여기와서 남학생 한 명을 떨어뜨렸냐느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맡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자랐고 그런 내게 성경이 위로가 됐다. 그런데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너에게 학교는 아버지보다 더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나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랬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이처럼 존중이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들 둘을 키우면서 학교를 다니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었다. 기숙생활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나는 자녀를 둔 엄마였기 때문에 통학이 허락됐다. 다른 학생들은 기숙 생활을 하면서 유대감이 형성됐지만 나는 항상 혼자 다녔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했던 학교와 다른 현실에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학교 밖에서도 훨씬 어린 후배라고 해도 남성 전도사보다 페이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했다. 여자 전도사라고 해서 함부로 하고 설교도 안 세우고 커피나 타라고 하고 그런 일들을 당했다.  

두 사람은 함께 총신대 강사 생활을 하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교계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야 했다. 두 사람은 총신대에서 강의하다 지난 2016년 부당해고를 당한 것이다. 201512월 김영우 당시 총신대 총장이 참석한 총신대 신학대학원 송년회 자리에서 박유미 박사가 여성 목사 안수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화근이 됐다.

 

- 당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박유미 : 201512월이었다. 그 자리는 여동문을 위한 자리였다. 해마다 하는 기도여서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총장이 참석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 격하게 반응하면서 쫓아낼 줄은 몰랐다. 이날 총장은 본래 준비한 설교 대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34)는 성결구절을 언급하며 성질을 내고 나가버렸다

- 당시 예배 영상이 남아 있나?

박유미 : 당시 김영우 총장이 여성안수 불허가 만고불변의 진리다. 개혁주의의 보루라고 언급한 내용이 담긴 영상을 받고 싶었지만 학교측에서는 컴퓨터가 망가졌다고 하고 바이러스가 침투했다고 하면서 주지 않았다

- 해고될 당시 학교측에서는 어떤 이유를 들었나?

강호숙 :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여동문회가 문제 제기를 모두 함께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는 총장에게 잘 보여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제제기를 한 사람을 집중 포화해 축출하는 형태로 갔다. 총신대학교 내 정규직 여성 교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학내 신문고를 통해 했는데 총신대 측에서는 여성 교수가 20%가량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유아교육과나 교회음악과 등 타학과이지 신학과에는 없다. 신문고를 통해 문제 제기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고,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 다혈질에 강성에 교수평가가 안 좋다는 식으로 소문을 냈다. 내가 그냥 짤린 것이 아니라 교수평가가 안 좋아서 짤린 것이란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교수평가가 좋았다

- 부당해고 소송전에서 결국 강 박사님이 이겼는데 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나? 끝까지 들어가서 자리를 지켰다면 어땠을까.

강호숙 : 학교에 다시 들어가더라도 강의할 수 있는 건 한 학기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강의료를 나중에 받긴 했으나 그것보다는 학교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앞으로 여학생들이 많이 들어 올 테니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사과할 의향이 없다고 했다

- 다른 곳에서 강의할 때 낙인은 없었는지

강호숙 : 총신을 그만두면서 다른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2년 후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나를 불러주었다

박유미 : 총신대 안에 있을 때는 강 박사님의 존재를 모르다가 오히려 여성 리더십에 대한 논문을 쓰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인식하고 데려간 케이스라고 본다. 오히려 강 박사의 활동 범위가 확장되고 넓어지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 신대원을 나와도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 총신대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안 좋을 것 같은데

강호숙 : 교계에서 목사냐 아니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목사 안에서도 대우가 달라질텐데, 아예 신분 자체가 다른 것이다. 목사여야만 교수를 할 수 있고 목사여야만 신대원에서 무언가를 할 수가 있고 목사여야만 총대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총신에서 신학을 해도 여성은 전도사밖에 못 된다. 여성이 신학을 해도 진로를 모색해주지 않으니까 여성 사역자들이 결국 타교단으로 가서 안수를 받는다.

연구재단에서 논문을 쓰면서 여동문회 10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는데 24%가 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신학 공부는 총신에서 하고, 안수를 다른 교단에서 받으면 결국 총신은 인재를 빼앗기는 것이다. 결국 여성 사역자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총신이 고립되는 형국이다

박유미 : 우리 교단 안에서 어느 신학자도 자신 있게 나는 여성안수를 반대합니다라고 나오는 사람이 없다. 나랑 토론합시다. 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학자들 자체가 여성 안수를 찬성하고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순간 학계에서 따를 당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학계는 이미 여성안수가 되어 있는 곳과 안 되어 있는 곳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순간 꼴통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된다. 그런데 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시대에 뒤떨어져서 학문적으로 학문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여성안수를 막는 이유는 따로 있을까?

강호숙 : 사실은 자신들의 성 문제나 성폭력, 성차별 무수한 것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안수 불허가 성경적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성경에 분명히 간음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에는 조용하다. 자신들에게 불리해지면 입을 닫고 자신들이 무얼 얘기하든 통할 것 같고 유익한 것이 있다면 성경을 갖다 대면서 다 성경적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교회 내 화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없다. 강도권도 가질 수 없고 신학과에서 과목도 못 가르치다 보니 교인들은 목사를 통해 여성이 안수를 받으면 안 된다는 학습을 받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박유미 : 우리 교단은 여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반동성애 반이슬람에 붙잡고 교회가 가야 할 바를 잡는 것처럼 우리 교단은 여성안수가 개혁신학의 보루로 정한 것이다. 개혁주의의 보루인데 왜 개혁주의의 보루인가.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것은 성경을 상황적으로 읽는 것이어서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문자주의와 근본주의가 곧 개혁주의라고 주장하는데, 그 예로 여성 안수 문제를 잡고있는 것이다.

-예장합동은 개혁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성안수 불허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개혁주의와 여성안수 불허는 너무 상반된 개념 아닌가?

박유미 : 논리적 모순이 크다. 전 세계 대부분의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보면 한 여자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첫 번째 조건이 된다. 이 조항에 따라 여성은 아내를 가질 수 없기때문에 안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조항을 적용하면 싱글 장로와 싱글 목사도 걸리게 된다. 싱글들도 한 여자의 남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혼했다가 재혼한 사람도 문제가 된다. 그런데 싱글 목사와 싱글 장로는 예외로 허용하고 여성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결국 여성안수 불허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강호숙 : 프랑스는 2017년 남녀동수법 입법을 결정했다. 여성 리더십 강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교회내에서는 유독 젠더 불균형이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성 윤리적인 면이나 인간성의 문제에서까지 사회보다 저급하고 뒤처진다.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함께 윈윈하고 파트너십을 형성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일인데 안타깝다

박유미 : 여성리더가 서야 여성이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발화자가 남성이고 여성은 수용자다. 관점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리더가 있어야 여성이 동등하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학교에 여성 교수가 있어야 그런 관점을 얘기해 줄 수 있고 교회에는 여성 목사가 있어야 그런 목소리 알릴 수 있다. 여성리더가 많이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현실이니 답답할 뿐이다

-신학을 하고자 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호숙 : 도전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분위기를 뚫고 공부하고 싶다면 공부하라고 하겠으나 요즘은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이 많다. 총신 신학으로는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 소비자 관점으로 학교를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수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이고 인간을 차별하는 곳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존중하는 공동체에 평화가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여성리더 없음이 미래 없음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박유미 : 목회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총신에서 불필요한 실랑이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소명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회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안수를 주는 곳에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 다른 교회 부교역자로 들어갈 마음이 없거나 목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총신에 여성 학우들이 많아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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