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박종찬 기자] 8월 15일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전광훈 대표회장)가 주도하는 ‘문재인 하야 8·15 범국민대회’와 우리공화당(조원진 대표)이 주도하는 태극기 부대 집회가 열렸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집회현장에서 감기라도 걸리는 것은 아닌지, 집회 참가자의 주 연령층인 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염려됐으나 정작 이들을 본인들의 건강보다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더 염려했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구세주와 같은 박정희, 불쌍한 박근혜

기자가 거주하는 부천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집회 장소로 향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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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마크가 달린 모자를 쓴 75세 노인은 기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박정희 대통령이 구세주”이며 “박정희 대통령은 신과 같은 존재”라고 추어올렸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박 전 대통령을 더 잘 알아준다. 먹고 살려고 월남전에도 참전하고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공화국 수도) 등 중동에서도 일했다”면서 경제 성장의 공을 박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탄압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집안의 가장이 든든해야 하는데, 어른 알기를 무시하면 그 집안은 힘들게 된다”고도 했다. 나라의 가장인 박 전 대통령을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 민주화가 되었으니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묻어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말을 이어갔다. 그는 연신 “안타깝다”고 심정을 토로하면서 “대통령도 특별하지 않고 인간일 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은 근실하게 자랐고, 나라를 위해 부모를 잃었다. 입담이 좋지 않아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착한 게 죄인가?”라고 반문하며, “(박 전 대통령이) 그런대로 배포도 있고 나라 살림살이를 할 역량도 있다. 억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아무 조건 없이 보란 듯이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뜻밖의 반일 태극기의 등장에 “감정 대응 자제해야”

대화를 이어가던 중 전동칸 문이 열리더니 선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태극기를 든 남성이 나타나 연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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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작은 애국심으로 일본 대사관에 가서 외칠 것”이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2차 대전 전범과 우리나라를 괴롭힌 자들을 모신 신사에서 참배를 하고 독도 침탈과 역사 왜곡, 문화재 반환 거부 하고 있다.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베 총리가 대한민국에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며 “입 다물고 보고만 있으면서 남의 일로 생각하겠느냐, 오늘날 한국의 부흥은 일제강점기 시절 청년들이 일어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노노 재팬’ 불매 운동을 독려하는가 하면, 두 팔을 들어올린 후 “대한민국 독립 만세”를 외쳤다.

태극기를 든 남성이 떠나자 노인은 “(일본에 대한 대응은) 감정적으로 할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적폐 청산도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이내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바란다”며 화제를 돌렸다. “박 전 대통령을 수감 시킨 것은 유치하고 마음이 좁은 짓이며,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좌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오늘 집회에 가서 우리공화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했다. 눈물 많고 마음 여린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우리공화당에 입당해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최순실 씨를 참모로 정식 채용해 조언을 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의 소원은 우파 대동단결

‘문재인 하야 8·15 범국민대회’가 열리기 한 시간 전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단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일본 아베 총리 규탄 행진을 이어가는 시민들을 향해 야유를 퍼붓고 “아베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아베 규탄 집회 참가자를 향해 격한 반응을 보이던 장년 남성은 분노에 차 광화문까지 나오게 됐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 주민이라고 밝힌 그는 분노의 이유를 전광훈 씨(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언급한 ‘문재인 하야 7가지 이유’에서 찾았다.

전광훈 씨가 주장하는 ‘문재인 하야 7가지 이유’는 ▲ 한미 동맹 파기 ▲ 소득 주도 성장으로 경제 파괴 ▲ 안보 해체 ▲ 원전 폐기 ▲ 4대강 보 해체 ▲ 국제 외교에서 완전 왕따 ▲ 주사파, 고려연방제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지향이다.

그는 “황교안, 조원진 등 정치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특정인을 지지하고 줄 서는 것은 소위 ‘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우파 분열을 안타까워했다.

 

“언론 보도 듣지도 보지도 않아”...유튜브만 시청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언론보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유튜브나 SNS를 통해 전파되는 확인되지 않는 소식에만 촉각을 세운다는 점이다. ‘언론이 좌경화 됐다’, ‘정권의 나팔수’라는 가짜뉴스가 먹힌 셈이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은 “뉴스는 보지 않고, 친구들과 전화로 소통한다”고 했다. 지인들이 전해주는 소식이 노인이 접하는 뉴스의 전부인 셈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참가자는 ‘황장수의 뉴스브리핑’과 ‘전광훈 씨의 유튜브 채널’을 주로 본다고 했다.

그는 “황장수 씨는 괜한 정치 발언으로 구독자를 모으고 홍보하는 다른 유튜버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칭찬하는가 하면, “교인은 아니지만 (전광훈 씨의 채널을) 애국심으로 시청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연민 때문이든, 잘못된 신앙과 신념 때문이든 그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또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순수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치인 또는 유사 정치인들에게 이들의 순수함을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었다. 설득이 아닌 선동으로 진실이 아닌 왜곡으로 가득찬 도심 한복판에서 광복의 기쁨보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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