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하나다 2019년 10월호 표지
월간하나다 2019년 10월호 표지

[평화나무 박종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노동당에 충성을 맹세한 문건을 입수했다’는 일본발 가짜뉴스가 극성이다.

극우 잡지 ‘월간하나다(月刊Hanada)’ 10월호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진영 인사들이 북한 노동당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주장이 실렸다. 기사를 작성한 시노하라 조이치로는 전 일본 공산당 당원으로, 북한 고위급 탈북민에게서 맹세문 원본을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맹세문에는 2014년 6월 15일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 14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이 북한 노동당에 충성을 표하고 활동 과제를 수행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노하라 조이치로는 한국에서 맹세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를 “한국 언론이 좌파로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40여 개인과 단체가 서명했다”며 “맹세자들의 이름이 한국의 국가보안법 때문에 철자를 바꿔 표기했다”고도 주장했다.

북한 노동당 충성 맹세서 명단에 누구 이름이?

맹세문에 나온 주요 인물들을 본명(맹세문 기록명)과 현 직책으로 살펴보면, 이석기(리서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이정희(리정휘) 전 통합진보당 대표, 임수경(림수정)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박원순(박원숨) 서울시장, 정청래(청정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동영(정돈영) 민주평화당 대표. 문재인(문제임) 대통령, 노수희(노수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부의장, 강금실(강금설) 전 법무부 장관, 임동원(림동연) 전 통일부 장관, 김재연(김재언) 전 통합진보당 의원, 최재성(최재섬)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두율(송두유) 교수, 곽노현(광로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광진(김강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명숙(한명순) 전 국무총리, 박기천(배기천) 성악가, 조희연(조히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리제정) 경기도교육감, 박영선(박경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김한길(김한걸) 전 민주당 대표 등이다.

단체로는 통합진보당(통진담), 민주주의를위한변호사모임(공민변), 민노총(민노종), 참여연대(참여련),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 한국진보연합(진보련),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로), 녹색농민조합(벼노인), 경제정의실천연합(기청하) 등이다.

맹세문이라 주장하는 문서에는 기독교계 인사와 단체들도 올라 있다. 한상렬(한싱렬) 목사,  홍정길(홍정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 곽선희(곽서니) 소망교회 목사, 고형원(고영원) 하나의코리아 대표, 오테레사(오대리사) 선교사(현 활동명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등 주로 통일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설), 성서한국(성서한) 등이다.

 

일본 잡지에서 맹세문이라 주장하는 문서는 10가지 수행 과제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1. 김일성 김정일 유훈을 받들어 공화국 남반부에서 박근혜 괴뢰도당의 자유민주체제를 무너뜨리고 전 조선반도에 주체사상화를 실현하는 데 한목숨을 초개 같이 바치겠다.

2. 세월호 침몰사건을 박근혜 괴뢰패당을 심판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끝까지 투쟁, 세월호 사건으로 흥분된 국민정서를 범국민적 반미반정부시위로 발전시킬 것이다.

3.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악질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원천 무력화하고 주한미군을 남조선에서 몰아내기 위한 결사항전을 준비 하겠다.

4. 6.25 조선전쟁이후 당과 수령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남조선 전사들을 남조선 감옥에서 석방시켜 민주애국열사의 명예를 안겨주기 위해 법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다.

5. 남쪽정부의 검찰, 경찰 등 사법부와 행정부에 침투, 행정기능을 마비시키고 장군님의 지도와 령도에 따르겠다.

6. 남조선의 입법부인 국회에 진출하여 전 조선반도의 주체사상화를 위한 남북연방제 통일방안을 실현시키고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친북적 법안들을 끊임없이 상정, 통과 시키겠다.

7. 한총련의 후신인 한대련을 통해 남조선의 진보적 대학생 청년들에게 주체사상과 장군님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 반미 반정부 폭동과 시위를 조직 지도하여 남조선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지속적으로 조성하겠다.

8. 전교조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맑스-레닌 공산주의사상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교육 강화하여 남조선 청년들을 미래의 확실한 장군님의 혁명전사로 키우겠다.

9. 일단 유사시에 제일먼저 국군과 경찰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을 들고 남조선의 국군, 경찰, 정보기관 등을 습격, 우익반동 세력을 사살하고 김정은 장군님의 거족적인 남조선혁명과 통일전쟁에 합세할 것이다.

10.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과 김정은 제1비서님의 믿음직한 혁명전사로써의 명예와 자부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언제나 주체적인 조국통일의 선봉에 설 것을 굳게 맹세한다.

일본 극우 잡지 월간하나다를 통해 시작된 소문은 국내 극우 인사 변희재 씨가 대표고문으로 있는 미디어워치를 통해 확산했다.

공화당 신동욱 총재의 유튜브 채널 ‘게릴라TV’, ‘공병호TV’, ‘일베’ 등 극우 채널을 통해 확산됐고, ‘VoW광야의소리’, ‘anewman선구자방송’, 문용제 강도사의 블로그 등 극우 기독교계 채널에서도 앞다퉈 유포했다.

백선엽 전 장군을 고문으로 표방하는 자유수호 국가원로회(정재호·박희도 공동의장)는 서신 36호에 충성 맹세와 함박도 논란, 조국 법무장관 임명 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러한 주장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앞서 뉴스타운은 2017년 동일한 내용의 맹세문을 탈북자 단체로부터 입수했다며 공개했다. 단, 당시 문건에 적힌 이름은 비공개로 처리돼 있었다.

월간하나다가 주장한 북한 노동당 충성 맹세서 명단
월간하나다가 주장한 북한 노동당 충성 맹세서 명단

2014년 문건인데 문재인 ‘대통령’, 박영선 ‘장관’?

2014년 6월 15일 작성됐다는 문건에는 문재인 대통령,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박 장관이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올해 4월. 정동영 대표는 2018년 8월, 6개월 전에 창당한 민평당의 2대 대표가 됐다.

2014년 당시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신분이었고, 박 장관은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회 위원장, 정 대표는 같은 당 상임고문이었다.

보수인사 중 한 명인 조갑제 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에서 주의를 요청한 것만 봐도 해당 내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조갑제닷컴은 지난 9월 10일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한 '남한의 인물 명단'> 를 통해 “기사에 소개된 문건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심증(心證)은 있는데 물증(物證)이 없다”면서 “그런데 기사 제목과 내용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의협심과 애국심에 불타는 네티즌들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인터넷으로 퍼 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문건에 언급된 인물들이 ‘사실관계를 따지자’며 기사를 확산시킨 네티즌들을 상대로 집단 고소-고발을 했을 경우를 상정해보자”며 “법정에서 고소-고발을 당한 네티즌들에게 물증은 일본 언론 기사 하나 뿐이다. 결국 당하는 쪽은 애초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와 일본 언론이 아니라 기사를 퍼 나른 애꿎은 네티즌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조갑제닷컴은 “(2017년 관련 내용을 보도한) A 언론사(뉴스타운)가 지난 5월 ‘김정은 사망설’이란 오보를 냈다”면서 “오보임이 밝혀졌는데도 관련 영상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신뢰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한국 극우 협공? 

일본 잡지 월간하나다의 매체 성향도 간과할 수 없다. 월간하나다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과 기고를  주고받을 정도로 한국의 극우인사들과 맥이 닿아 있다.

변 씨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바 있으나, 월간하나다 10월호는 변 씨의 ‘한국 옥중 수기 – 가짜 대통령, 문재인’이란 기고문을 게재했다. 변 대표는 ‘변희재와 태블릿재판 국민감시단’ 블로그에 월간하나다의 누마지리 유헤이 부편집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월간하나다에는 ‘한국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는 ‘주체사상파’’, '종군위안부 영화 ‘주전장(主戦場)'의 악랄한 수법’, '프로파간다 영화 ‘주전장(主戰場)'의 위선’ 등의 칼럼과 기사가 실렸다. '위안부' 문제를 철저히 부정해온 것이다.

월간하나다는 지난 8월 25일 JTBC <뉴스룸> 비하인드 뉴스에도 ‘일본 극우 성향 잡지’로 소개됐다. ‘한국이라는 병’을 10월호 제목으로 꼽은 표지 하단 왼쪽에는 자위대 출신인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자민당)이, 오른쪽에는 ‘아베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사쿠라이 요시코 일본회의 대외선전 단장이 등장한다.

사토 부대신은 자위대의 국군화를 주장하며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는 헌법을 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재검토할 것을 주장한다. 일본의 핵무장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2019년 한국인들의 아베 반대 촛불 집회를 폄하하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혐한 망언을 일삼아 온 사쿠라이 요시코는 최근 한국에서 김세의 MBC 전 기자, 강용석 변호사 등이 주요 패널로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등에 출연해 “문재인 정권이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믿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근거도 없이 한국정부를 비방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좌익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에칭가스 논란에 대해서도 가짜 뉴스를 신뢰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혐한 기업 DHC의 방송 DHC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 설립자 겸 회장은 강제 징용,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마땅히 여기는 인물이다. DHC TV 역시 연일 일본 극우·혐한 인사들을 초청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쿠라이 단장이 속해 있는 일본회의는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로 아베 내각과 자민당 인사들이 대거 가입돼 있다. 일본회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촉구, 자위대 활동 확대 등을 주장하며 법제화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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