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19일 저녁 8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학생들이 왜 이렇게 안 온 거야? 용기가 없어가지고.. 학생들이 모두 빨간 물이 들어서 큰일이야”

지난 19일 밤 10시경. 조국 사퇴를 위해 촛불을 든 서울대 집회에서 발언자들의 발언순서가 마무리되고 법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기 전 한 유튜버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그의 외침대로 집회 현장에 참석한 350명(주최 측 추산) 중 정작 서울대생으로 보이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카메라가 앞으로 다가서면 얼굴을 가리기 바빴던 집회 참가자들은 적게는 40대에서 50대의 중년에서 일흔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노년층까지 주를 이뤘다.

본격적인 집회에 앞서 자신을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소개한 김00 학생이 사회자로 나서 “수많은 부정이 드러난 조국 장관을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만큼 이 집회가 정치적 특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특정 세력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집회가 아님을 말씀드린다”고 안내사항을 전했다. 그는 “호응은 언제나 환영이나, 집회 취지에 맞지 않는 강경 발언들을 삼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대한민국이 부패에 무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불의에 대한 민감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젊은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젊은이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기 때문이요, 아직 때 묻지 않는 젊음이 있어야 진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회자의 주장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아크로폴리스 광장 돌계단을 채운 건 학생들이 아니었다.

이 밖에도 집회의 순수성이 훼손된 모습은 여러 곳에서 포착 됐다. 참석자 중에는 태극기 집회에서 볼 법한 태극기와 성조기를 이어붙인 국기를 들고 나온 어르신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한 여성 한 중년 남성 참석자는 <평화나무> 기자를 집회 참가자로 오인해 “(자신은) 00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고, 한 여성 유튜버는 “이번에 참석자가 적은 이유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로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조직적으로 동원된 단체 인원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집회 발언자의 발언이 5분을 넘겨 길어지는 것을 유튜버들은 용납하기 어려워했다.

마지막 발언자의 발언이 길어지자 연세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유튜버는 "발언자의 말투가 가르치는 말투"라며 “저런 것이 좌파의 특징”이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중년 여성 유튜버는 “예의 없이 길게 발언하는 것은 빨갱이 짓”이라고 투덜거렸다.

 

총학생회 손 땐 집회 누가 주도할까?

서울대학교 촛불집회 집행부는 재학생과 동문 등 10명가량이 모여 집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집회 집행부 관계자에게 서울대와 관계없어 보이는 집회 참가자가 대다수인 이유를 묻자, “특별히 통제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첫 번째로 나선 발언자는 서울대학교 물리대학교를 졸업한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00씨 였다.

그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과 교회에서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을 단련하기 위해 신께서 내린 시련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돼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자를 거론하며 “국민의 마음이란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은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흐름을 역행해 장관자리에 오른 조국 법무부 장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촛불을 들고 모였다”고 했다.

그는 “의혹만으로 이미 임명하기로 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기는 일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답하고 싶다”며 “오히려 검증되지 않는 자를 무언가에 쫓기듯이 서둘러 임명한 것이 나쁜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고 외쳤다.

두 번째 발언자는 전기공학부 ‘00’학번 졸업생으로 역시 재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대신 “2000년 초반 관악에 있었던 졸업생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자 대출금 갚으며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일고 소개했다.

그는 주권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줄곧 ‘두려움’을 언급했다.

“주인 됨을 얻기 위해 4·19 60항쟁 등을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맞서 싸우고 피 흘렸습니다.
그리고 주권을 다시 행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태극기 부대처럼 보이지 않을지,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나 정치 성향을 들키지 않을지, 목소리를 내면 일베 몰이를 당하지 않을지 두려웠습니다.

집회 도우미로서 포스터를 붙이면서도 무수히 많은 시선을 느끼며 겁이 났습니다. 내가 죄인일까. 포기할까”

그러나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한 이승만 정권에 맞서 저항했던 젊은이들이 느꼈을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와 ‘일베몰이’를 걱정하는 발언자의 두려움을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게 된다.

이후로 이어진 발언자들도 재학생은 아니었다. 공과대학 금속과학과 82학번이었다는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조국 법무부장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 지사,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두 서울대 82학번”이라며 “당시 학생운동을 하다 무기정학을 맞기도 했으나 그런 사상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것 들이었다”며 자신의 과거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 기득권, 재벌, 자본, 신자유주의,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자신들을 상정했다”며 “조국을 (거대 악에 맞서 싸울) 상징으로 봤기 때문에 밀어붙였으나 이렇게 하면 실패하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대학교가 19일 저녁 8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서울대학교가 19일 저녁 8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평화나무)

 

“법무장관 자격없다 지금당장 사퇴하라”
“학생들의 명령이다 지금당장 사퇴하라”
“이것이 정의인가 대답하라 문재인”

발언자들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사회자는 구호를 힘차게 외쳤고 참석자들도 따라 외쳤다. “학생들의 명령”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중년남성의 굵은 목소리와 노년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오마이 뉴스는 19일 연세대학교 촛불집회 참가자 190여명(주최측 추산) 중 대다수는 중·장년층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학생들의 속내...“정치에 이용당하는 것이 더 싫다”

집회에 참석한 공과대 4학년 남학생은 학생들의 집회 참여률이 저조한 까닭을 묻는 질문에 “1차부터 3차 집회에 참여가 저조하면서 4차 집회도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단과대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진단도 내렸다. 그는 “예를 들어 인문대나 사회과학대의 경우 긍정 여론이 우세한 반면, 공과대학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나 에너지 정책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조국 이슈에도 부정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캠퍼스 내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 같은 답변은 복수로 들을 수 있었다. 조국 장관에 대한 평가 이전에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집회 참가자가 저조한 관계로 캠퍼스를 돌며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익명 커뮤니티에는 자극적인 글도 많이 올라오는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부정 여론이 별로 안 느껴져서 긴가민가하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조국 장관도 잘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나, 이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별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크게 중요치 않은 이슈까지 크게 부풀리는 행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한 남학생은 “주변 지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중론은 비판 여론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 시위할 때마다 보수 유튜버들이 촬영하러 오는 등 다른 정치 진영에서 이용할 소지가 커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언론 행태도 공정치 않았다고 꼬집었다. 의혹만으로 기사를 내며 이례 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모습에서 분명 스크래치를 내기 위한 고의성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이 밖에 “아직 관망하고 있다”, “조국 장관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듯, 서로 말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등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서울대는 21일 저녁 6시 ‘트루스포럼’ 주최로 ‘조국 파면촉구 집회’를 이어간다. 집회 연사로는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 이강호 국제전략포럼 연구위원, 이언주 무소속 의원, 이정훈 울산대 교수 등이 나설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 붙은 트루스포럼 주최 '조국 사퇴 촉구 집회' 포스터. (사진 =평화나무)

 

언론보도, 서울대·연대·고대 주최 촛불집회에만 초점

언론은 대부분 서울대·연대·고대 소위 SKY로 일컬어지는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위해 촛불을 들었다는데만 초점을 뒀다. 특정 정치에 이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젊은 청춘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인 흔적이 없다.

서울대·연대·고대생 촛불집회가 진행된 19일 저녁 조선일보는 서울대·연대·고대생 1000여명 동시 촛불…"앞으로 전국 대학생 연대 투쟁" 공동선언문 발표 제목으로 보도를 통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생들이 19일 동시에 각 학교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며 “학생과 동문 등이 참여한 3개 대학의 촛불집회에는 약 1000명이 참석했다. 이날 집회는 각 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하지 않고, 재학생과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해 열렸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20일 낮에는 시국선언 밤에는 촛불집회… 대학가 ‘조국 분노’ 활활 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조 장관 일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연세대에서도 처음으로 촛불집회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는 19일 서울·고려·연대생들 '조국 사퇴' 집회…공동성명문 발표(종합) 보도를 통해 “서울대 촛불집회 집행부는 이날 집회를 마치기 전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집행부와 협의해 만든 3개 대학 공동성명문을 발표했다”며 "이제는 우리 순수한 청년들이 나서야 할 때다. 이번 집회를 끝으로 학교 단위가 아닌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전국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를 전국 대학생들에게 공식 제안했다”고 썼다.

YTN은 '조국 사퇴' 서울대·고대·연대서 촛불...공동선언문도 보도에서 “학생들은 부정과 위선이 드러난 조 장관뿐 아니라 장관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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