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이정무 기획실장
이정무 민중의소리 기획실장

[이정무 민중의소리 기획실장]

  흔히 법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이른바 (혹은 , 변호사는 를 검사와 판사는 를 쓴다)’자가 붙는 직업이 여기에 속한다. 실제 근대 형법을 만든 이들은 대중의 감정에 대해서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몽매하고 흥분 잘하는이들로부터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형사법이 고안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이 밝혀진 지금에야 좀 덜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원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이 대단한 원칙처럼 사용되었다. 하지만 사법권력이건 행정권력이건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상식적 법감정과 지나치게 떨어진 판결은 존중받기 어렵다. 이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2심 판결이 그렇다.

  6일 수원고법(2)은 이 지사의 이른바 친형 입원사건과 관련하여 3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직을 잃는다. 수원고법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지사는 도지사 직을 잃게 되고, 경기도는 재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이 도지사를 선출해야 한다.

  재판의 내용을 단순화해보자. 애초 이 지사는 직권을 남용해 그러니까 불법적인 방식으로 시장의 권한을 사용하여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지사는 이 혐의와 관련해 1,2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판결문을 요약하면 (1)이 지사가 친형인 재선씨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보고 진단을 추진한 것은 맞지만 (2)이 행위가 성남시장으로서의 권한을 잘못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 지사의 행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과정에서 법을 어긴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하나 더 확인하자면 실제 재선씨의 정신질환 진단 절차는 중간에 중단됐고(이것 역시 이 지사의 결정이었다) ‘강제입원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경기도민 입장에선 이건 아주 중요하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권력이나 돈을 위해 멀쩡한 가족을 정신병자로 몰고, 강제로 입원시키는 건 막장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정치인 이전에 인간으로도 실격이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달랐던 건 다음 대목이다.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TV토론회에서는 아래와 같은 공방이 오갔다.

 

김영환 :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

이재명 :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

김영환 : 왜 없습니까? 그 보건소장 통해서 하지 않았습니까?

이재명 : 그런 일 없습니다.

김영환 : 그러면 성남시청 8층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에서 위탁한 성남시 정신보건센터에서 이재선 씨에 대해 아무런 문진이나 검진도 없이 정신병자라고 판명했습니까?

이재명 : 그거는 어머니를 때리고, 어머니한테 차마 표현할 수 없는 폭언도 하고,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고, 실제로 정신치료를 받은 적도 있는데 계속 심하게 하기 때문에 어머니, 저희 큰형님, 저희 누님, 저희 형님, 제 여동생, 제 남동생, 여기서 진단을 의뢰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직접 요청할 수 없는 입장이고, 제 관할 하에 있기 때문에 제가 최종적으로 못하게 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이 대목에서 이 지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봤다. 어떤 대목이 거짓말일까? 2심 재판부는 이 지사가 친형 재선씨에 대해 진단을 위한 절차를 어느 정도까지는 진행해놓고도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고 봤다. 즉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닌데,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것이다. 위 대화를 다시 읽어보자. 사람에 따라 거짓말이라고 보는 경우(2심 재판부)도 있겠고, 아니라고 보는 경우(1심 재판부)도 있을 것 같다. TV토론이니 결국 말싸움이고 그러다보면 저렇게 애매한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걸 굳이 거짓말이네 아니네 하고 따지는 게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예 이 지사가 아니라 경쟁자였던 김영환 후보가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볼 사람도 있을 법하다. 아무튼 2심 재판부는 이 대목 하나를 들어 이 지사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한다. 선거에서 정치인이 하는 말이 다 진실이거나 진심이라고 보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현행법이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건, 학력이나 경력 뻥튀기 같이 짧은 선거 기간에 검증하기 어려운 과장된 홍보나, 상대에 대한 흑색선전을 막기 위해서다. 위에서 나온 TV토론이 이런 경우에 속할까? 백 보를 양보해 이 지사의 말이 명백하고 고의적인 거짓말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이것이 선거를 다시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법 위반일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 똑같은 혐의를 두고 어떤 재판부는 90만 원을 선고해 살려주고’, 어떤 재판부는 120만 원을 선고해 죽인다’. 90만 원을 선고받은 정치인이 유죄를 선고받고도 웃으면서 재판정을 걸어 나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90만 원이냐, 120만 원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합리적 답변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저 판사 마음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독립된 사법부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요건이다. 정치권력은 변덕이 심하고 감정적이기 쉽다. 독점적으로 칼을 쥔 검찰은 어떤 때는 사돈의 팔촌까지 털어서 죄를 찾아내고, 어떨 때는 커다란 범죄도 눈을 감는다. 사법부가 하는 일은 이런 정치권력에 맞서서 사람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중대 범죄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막아야 하는 게 법원의 임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판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그 판결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가 하는 일이 모두 옳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건 아니다. 당장 이번 수원고법의 재판부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성향이나 자질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아마도 담당 판사는 충분히 선량하고 법에 대해 잘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렇다는 이유로 그에게 이런 중대한 결정을 맡기는 건 옳은 일일까?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권자의 54.5%는 이재명 지사를 지지했다. 2위는 자유한국당의 남경필 후보로 37.7%를 얻었다. 이 정도면 큰 차이다. 이 지사의 여러 가지 의혹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고의적으로 감춰진 것도 아니다. 이 지사는 당시에도 이미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큰 표 차이로 그를 지지했다. 수원고법의 선량하고 똑똑한판사 1인이 이 결정을 뒤집는 건 과연 민주적인 일일까? 그에게 수백만의 유권자들보다 우월한 권한을 부여한 건 도대체 누구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법원은 뚜렷한 권력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권한에 대한 통제 장치는 사실상 없다.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식 배심원 제도도 생각해봄직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법원 판결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책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며, 필자가 몸담고 있는 <민중의소리>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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