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뒤무지개재단, 19일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 개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를 개최했다. (사진=평화나무)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를 개최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광역ㆍ기초자치단체에서는 인권 관련 조례조차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보수개신교와 반동성애진영의 극렬한 반대 때문이다. 최근에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문화다양성조례까지 줄줄이 무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인권조례ㆍ학생인권조례ㆍ성평등조례 등 인권 관련 조례안을 제정하려다가 무산된 경우가 73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본래 인권조례의 정신에서 크게 후퇴해 개악되거나 폐지 위기 등에 이른 것까지 합하면 118개에 달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전국 인권 조례 실태조사 발표회’를 개최했다. 재단은 10월 1일부터 국가법령정보센터, 자치법규정보시스템, 광역ㆍ기초의회 홈페이지와 반동성애진영 사이트를 참조해 인권조례 실태를 조사 중이다. 최종 보고서는 내년 2월경에 나올 예정이다.

조사를 진행한 활동가 시우 씨는 보수개신교가 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서게 된 계기를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경험에서 찾았다. 각종 인권 관련 조례를 차별금지법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징검다리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동성애진영의 활동은 지역에 상관없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어느 지자체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한다는 입법예고를 하게 되면 반동성애진영의 주요 사이트에 해당 정보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소위 좌표 찍기 단계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나 문자를 보내는 일은 기본이다. 각 지역에 조직된 개신교연합회와 지역교회 교인들을 동원한 집회도 불사한다.

이렇게 반동성애진영의 압박이 계속되다보면 인권조례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의원들도 발을 빼기 시작한다. 심지어 도의회에서 성경을 인용하며 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한 의원도 있었다.

김용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7년 9월 7일 제4차 본회의에서 “로마서 1장 27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와 있다. ‘남자가 순리대로 여자를 쓰기를 거부하고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서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행위를 한다’는 성경구절이 있다”며 “충남의 기독교인 20.7%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며 단호하게 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2012년에는 인권조례를 대표발의 했다가 반동성애진영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입장을 바꿔 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선 의원도 있었다.

송덕빈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8년 2월 2일 열린 충청남도의회 제2차 본회의에서 “자식을 낳았으면 둘은 낳아야만 또이또이 되지 않겠나”라며 “지금 현재로 보면 하나도 낳기 싫어하는 사회가 됐다. 하나님의 성서에 나와 있는 말 그대로 저희들은 동성연애는 반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인권 조례 (폐지에) 저는 분명히 찬성을 한다”고 발언했다.

시우 씨는 2014년 성북수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가 철회되고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폐기시킨 경험이 반동성애진영에 자신감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조직화되기도 전에 반동성애진영에게 우리가 반대하면 정책도 철회될 수 있다는 승리의 경험을 주게 됐다”며 “공론장을 얼어붙게 만들어 다른 지역의 인권조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보수개신교의 반대가 없었다면 인권조례는 쉽게 제정되는 편이다. 지난 3월 본회의를 통과한 ‘동해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안’이 그런 경우다.

시우 씨는 “(반동성애진영의) 반대운동이 없다면 인권조례는 수월하게 제정되는 편이다. 좋게 보자면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형식적인 차원에서 의회를 통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선언적 차원에서 제정한다는 비판적인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며 “조직화된 반대운동을 하는 곳은 반드시 보수개신교를 거점으로 삼았다. 조직화된 인권조례 반대운동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기획이 아니라 공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장을 파괴하고 인권 정책 장체를 무력화시킨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부천시가 대표적이다. 부천시는 2017년 혐오표현 차별예방 조례, 2019년 문화 다양성 조례, 성평등 조례 개정, 인권조례, 민주시민 교육 조례 제정을 숨 가쁘게 추진하다 보수개신교와 반동성애진영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이란주 아시아인권연대 대표는 “문화다양성조례를 2012년부터 준비했다. 의원들의 이해가 높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나체촌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며 “부천시는 젠더자문관을 설치하고 싶었다. 젠더자문관을 두어 여성친화도시 재지정을 받아 국비 보조를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입법예고가 되자 모든 시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했다.

부천시에서 인권 관련 조례를 추진한 시민단체들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인권조례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인권조례가 통과되지 못했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지금 현재는 총선이 가장 문턱”이라며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우리가 지역에서 경험한 것은 총선과 인권조례도 직결되는 문제다. 지역 내에서 인권조례 제정 의지를 북돋고 있다. 어떻게 시민들에게 관심을 촉구할 수 있을까가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시우 씨도 “내년 총선이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차별금지법이 적어도 현 정부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지역단위에서의 다툼이 점점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모아지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정치적 대항의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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