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권지연, 김준수 기자] '내란선동ㆍ기부금법 위반ㆍ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전광훈 씨에 대한 혐의가 하나 더 추가될 전망이다.

3일 뉴시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전 씨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에는 사문서 위조로 의심되는 지점이 수두룩하다. 뉴시스는 전 씨의 신학대학원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짧은데 성적은 졸업 이후까지 나온 점, 대신 교단 총회장 출마 당시 애초에 직인 없는 증명서를 제출했다가 지적을 받아 한달 뒤 다시 제출한 정황 등을 꼬집었다. 

여기에 <평화나무>는 전 씨가 지난해 실촌수양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발언도 입수했다. 전 씨는 지난해 6월경 목회자 대상으로 열린 집회에서 “나는 대한신학교 야간 나온 것이 전부”라며, 동생에게 대리출석을 시켰다는 발언을 자랑처럼 했다. 

전광훈의 수상한 이력 들여다보니...

전 씨가 총회에 제출한 졸업증명서를 살펴보면, 전 씨는 대한신학교에 1978년 3월 입학해 1984년 졸업했고, 이후 2000년 2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포털 인물검색에서도 전 씨는 대한신학교 신학과 학사과정을 거쳐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전 씨가 총회에 제출한 성적증명서에는 ‘목회연구(2년)과정’을 마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적인 학위과정이 아닌, 일종의 수료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동문들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신학교가 1990년 대신대학으로 승격된 이후 안양대 신대원 석사로 편입하는 1년 과정 교육을 개설했다고 한다. 당시 편입과정을 신청한 경우,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편입과정에 등록하지 않은 경우는 2년제 연구원으로 남게 됐다는 것. 

지금은 대학 4년, 대학원 3년 등을 거쳐야 목사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통상 절차로 간주 되지만, 당시에는 2년제 연구원도 강도사고시를 보거나 목사안수를 받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전광훈 씨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성적증명서. (출처=제보)

 

5개월 속성과정에, 졸업 이후까지 간헐적 학점 수여 

그러나 전 씨의 성적표와 졸업증명서에는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전 씨의 신학대학원 성적표에는 1999년 8월 30일 입학해 2000년 2월 15일 졸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반년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또 전 씨의 성적표에는 1999년 2학기와 3학기, 2001학년 2학기, 2002년도 4학기, 2003년도 1학기까지 성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 평점 역시 우수한 편이다. 6개월 만에 학위를 수여했다는 점도 이상하지만, 이후 성적이 나온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은 전 씨가 부흥강사로 한창 활동 범위를 넓혀가던 시기다. 전 씨는 1983년 전도사 시절에 서울 답십리에서 교회를 시작해, 1995년 현재의 교회 터를 매입하고, 장위동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1998년부터는 청교도영성훈련원을 설립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세미나와 말씀 학교를 개최했다. 초창기 무료 세미나를 열기도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증언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전 씨의 졸업을 2000년이 아닌, 2003년으로 보더라도 교회 사역과 부흥강사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학업까지 우수한 성적을 받는 초인적인 면모를 보였다는 말이 된다. 

대한신학교, 당산동에 있었다? 

전 씨가 졸업했다는 대한신학교는 1948년 8월 김치선 박사가 서울 남대문에서 야간 신학교로 설립했다. 이후 1949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으로 이전, 이듬해 대한신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학교는 1962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으로 교사를 이전했고, 1969년 군종장교지원학교로 인가받았다. 1981년 2월 4년제 대학 학력인정 학교로 인가를 받으면서 기독교교육학과를 신설하고, 주간 일반학부를 설치해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행정학과·유아교육과·교회음악과·국어국문학과·신학과를 두었다. 1983년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으로 교사를 이전, 이후 1990년 대신대학으로 승격해 이후 대신대학교를 거쳐 안양대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전광훈 씨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졸업증명서.(출처=제보)
전광훈 씨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교단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졸업증명서.(출처=제보)

 

졸업증명서에 따르면 전 씨는 대한신학교가 용산구에 소재할 당시 입학해 1983년 경기도 안양시로 이전한 이듬해에 졸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씨는 야간 신학교 시절에 입학해 학력 인정 인가가 난 후 졸업했다는 얘기다. 

더 눈여겨볼 지점은 전 씨의 졸업증명서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으로 표기 되어 있는 주소지다. 안양신학교는 당산동에 소재한 적이 없다.

다만 당산동에 무인가 신학교가 잠시 운영되던 때는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청취할 수 있었다. 1985년 김영실 박사가 제7대 교장으로 취임할 무렵 김치선 박사의 아들 김세창 박사는 홍 모 목사가 시무하는 영신교회를 빌려 무인가 신학교를 잠시 설립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해당 주소지에는 현재 다른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당산동 무인가 신학교는 85년 전후로 잠시 설립됐다는 점과 전 씨가 1978년 입학했다는 점을 견주어볼 때 이 역시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안양대학교(당시 대한신학교) 관계자는 “당산동 주소지로 된 졸업증명서를 발급해 준 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전 씨가 안양대학교에 재학했는지 여부는 개인정보여서 알려 줄 수 없다고 답했다. 

1978년-1984년 대한신학교 졸업인데... 83년 교회 당회장▶86년 목사안수▶1999년-2000년 대학원 연구과정 

전 씨는 1986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안수증에 기록되어 있다. 전 씨가 무인가 신학교를 졸업했든, 학력 인정 학교를 졸업했든, 혹은 둘 다 졸업하지 않았든, 쉽게 목사 안수를 취득했다는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이는 전 씨 스스로도 인정했다. 아울러 대리출석 논란까지 지피는 양상이다.

전 씨는 지난해 6월경 목회자 대상으로 열린 실촌수양관 집회에서 “나는 대한신학교 야간 나온 게 다”라며, “그 야간도 절반은 안 갔고, 그것도 출석 일수가 모자랄 때는 동생을 대신 보냈다”라고 말 이어 “나하고 신학교 동기동창이 내가 아는 전광훈 목사는 키가 작았는데 왜 이렇게 키가 컸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평화나무>가 전 씨에게 관련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 질의했으나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편 사문서 위조에 대한 공소시효는 7년이다. 전 씨는 2014년 대신총회 총회장 출마를 목적으로 해당 문서를 발급받았다. 아울러 대리출석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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