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 '전광훈' 이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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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 '전광훈' 이름 없어
  • 권지연 기자
  • 승인 2020.01.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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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 자격논란, 학위도 목사안수증도 엉터리
전광훈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연합뉴스 DB)
전광훈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연합뉴스 DB)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전광훈 씨의 측근들이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전광훈 씨의 학력위조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오히려 전 씨의 학력위조 혐의를 더 짙게 만들고 있다. 평화나무는 전 씨의 학력 증서와 목사 안수증명서가 짝퉁이라는 물증을 추가로 확보했다. 

평화나무가 입수한 1980년 대한신학교 학생 명부가 담긴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에서 전광훈 씨의 이름 석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울러 ‘전광훈 씨의 동기’를 차처하고 나온 김종대 목사(대전시민연대 대표, 대전하늘소망교회)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다. 김 씨가 전 씨를 옹호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학력 의혹까지 불거질 태세다. 

 

"1978년-1984년 대한신학교에서 전광훈 본 적 있나?" 질문에...

전광훈 씨는 대한신학교 35기(84년졸업)모임에도 나가는 등, 35기생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전 씨 스스로도 인정했듯 그는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에서 졸업하지 않았다. 

<평화나무>는 전 씨가 대한신학교에 재학했다는 1978년-1984년 사이 대한신학교 출신들과 접촉했으나 전 씨를 당시 학교에서 봤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79학번인 A목사와 81학번 B목사, 83학번 C목사 등 <평화나무>가 접촉한 목사들은 한결같이 “전광훈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계속 수소문한 결과 81학번 D목사에게서 “채플시간에 전 씨를 본 적은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전광훈이) 워낙 덩치가 커서 내 앞에 설 때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내가 놀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D목사는 “81년도에 잠깐 전 씨를 본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전 씨가 청파동 대한신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실제 정규과정을 밟은 학생이었는지에는 여전이 의문이 남는다. 아울러 적어도 전 씨가 81년 전후로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이 되는 셈이다. 

 

1980년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 입수

전광훈은 물론 동기자처한 김종대 이름도 없어

평화나무가 입수한 1980년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에는 전광훈 씨는 물론 80학번이라고 주장한 김종대 씨의 이름 모두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김종대 목사는 6일 너알아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내가 대한신학교) 80학번이다. 우리 목사님(전광훈 씨)과 공부할 때 우리 학교에 우리 교단에서는 신학교 4년을 꼬박 공부하면 목사 안수를 줬다”며 “이제 일반대학 나와 대학원 3년하면 목사 안수를 주는데 우리 시대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걸 지금와서 좌파들이 전광훈 목사를 털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교 4년과정에 대학원 과정 3년, 때로는 수련목회까지 거쳐야 하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목사 안수를 받기가 훨씬 수월했던 것은 사실이다. 

전 씨는 80학번이 아닌, 78학년인 점을 차치하더라도 1980년 대한신학교학도호국단 주소록에서 전광훈 씨는 물론 김종대 목사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는 건 왜일까. 

<평화나무>가 김종대 목사에게 ‘전광훈 씨와 동기가 맞는지’,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를 나온 것이 맞는지’등을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앞서 전광훈 씨와 같은노회(서울동노회) 소속이었던 목사의 안수증명서를 입수해 전 씨의 것과 비교해 본 결과, 전 씨의 목사안수증명서는 대신교단 노회에서 발급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대신교단 목사안수증은 노회가 발급해주지만, 전 씨의 안수증명서는 총회가 발급한 점, 2004년 당시 대신교단의 총회장은 김상록 목사였으나, 전 씨의 안수증명서에는 김상묵 목사의 이름이 기록된 점은 전 씨가 대신교단 목사가 아니라는 점에 확신을 더해준다. 아울러 전 씨의 목사안수증에는 목사안수위원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전 씨의 목사 안수증에서 의심되는 부분은 또 있다. 전 씨의 목사안수증명서에는 1986년 10월 14일 안수를 받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전광훈 씨의 교회 홈페이지에는 전 씨가 1987년 6월 7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전 씨의 목사안수증명서에는 1986년 10월 14일 안수를 받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전광훈 씨의 교회 홈페이지에는 전 씨가 1987년 6월 7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전광훈 씨 측은 "안양대 전신인 대한신학교에 1978년 입학해 4학년이 되던 해 학교가 부도가 나자 당시 당산동 소재(김세창 학장)에서 졸업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면서 "이후 대신교단에서 인재를 놓칠 수 없어 6개월 편목 과정을 이수해 목사 자격을 취득해 달라는 권면을 받고, 과정을 이수한 뒤 대신교단에서 (다시) 목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보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팩트체크 1 군대를 다녀와보니 학교가 망했다고?

대한신학교는 설립자 김치선 박사의 아들 김세창 박사가 운영하면서 빚을 많이 지는 등 재정문제를 일으키며서 문일고등학교 교장인 김영실 장로에게 학교를 넘겨주게 됐다. 김 장로는 1985년 제7대 대한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김세창 박사는 서울 당산동과 대치동, 대전 등에 대한신학교를 설립했다. 전광훈 씨는 이중 서울 당산동에서 졸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졸업연도는 1984년이다. 

그러나 김세창 박사가 서울 당산동의 영신교회에서 무허가 신학교를 설립한 것은 1986년으로 추정된다. 영신교회는 2012년경 황원석 목사가 별세하면서 경매로 넘어갔다. 

1985년 학교 소유주가 바뀔 시점 수습대책위원장이었던 김 모 목사는 “김세창 박사는 1985년 이후 구속됐다 나와서 1986년 영신교회가 운영하는 대한신학교 학장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으나 얼마 뒤 미국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김 박사는 미국에서도 무인가 대한식학교를 여럿 세웠다. 

그러면서 “전광훈 목사 주장은 군대를 마치고 온 1983년경 부도가 나 있었다는 건데, 학교에 재정 문제가 불거진 것은 85년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씨가 주장한 것과 연도도 맞지 않지만, 엄밀히 말해 학교가 부도났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그저 설립자의 아들 김세창 박사가 소유권을 타인에게 넘기게 됐을 뿐이다. 

아울러 83년 당시 대한신학교는 안양캠퍼스와 용산구 서계동 캠퍼스(청파동) 두곳에서 운영됐으며 안양에는 일반대 캠퍼스가 서계동에는 신학교 캠퍼스가 존재했다. 78년에 정상적으로 입학한 학생이라면 입학식과 졸업식을 모두 서계동에서 하는 것이 맞다. 학교행정도 서계동을 떠난 적이 없다. 

이후 1985년 대한신학교 7대 교장으로 김영실 장로가 취임하면서부터는 입학식과 졸업식 모두 안양캠퍼스 대강당에서 진행했다. 

대한신학교 83학번이라고 밝힌 한 목사는 “전 씨의 주장대로라면 어떻게 이후로 학생들이 입학을 했으며, 어떻게 정상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며 “해명을 해도 너무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수준이 드러난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대체 전 씨가 언제 군복무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1983년은 전광훈 씨가 이미 전도사로서 답십리에서 교회 담임을 시작하던 때다. 전 씨가 84년에 졸업했고, 대한신학교 4학년 1학기까지 다닌 것이 맞다면 적어도 83년 그는 학교에서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다.  또 81년 전 씨를 채플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전 씨가 70년대 말에서 80년 초반에 군대를 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팩트체크 2 전광훈 목사안수 대신총회 아닌 대신개혁 발급?
목사안수증 발급 총회장 “나는 모르는 일” 

김세창 박사는 1985년 대한신학교를 넘겨준 후 무인가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본인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2001년 9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대신개혁 총회로 이름을 변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씨의 목사안수증에 찍힌 총회마크는 김세창 박사가 설립한 대신개혁의 마크였다. 2004년 목사안수증을 발급받았을 당시 교단 총회장은 김상묵 목사로 적혀 있다. 

<평화나무>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김상묵 목사와 통화를 시도한 결과, 총회장까지 지낸 김상묵 목사마저도 교단의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정도로 대신개혁 교단은 군소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목사는 “당시 나는 김세창 박사가 이름만 빌려달라고 해서 당시(2003년 9월-2005년 10월) 총회장을 맡았다”며 “대전에 있는 대한신학교에는 출강도 가곤 했으나 당산동 신학교와 관련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전광훈 씨는 물론, 당시 어떻게 목사안수증이 발급된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자료를 추적한 결과, (공신력을 인정하기에는 미흡하나) 김세창 박사가 설립한 중국 국제신학원을 소개한 한 블로그 연혁표에서 2004년 서울당산동(전광훈 씨의 졸업증명서와 안수증명서 발급 주소지)로 대한신학교를 이전 대신개혁 총회를 발족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출처=블로그)

또 전광훈 씨가 황원석 목사와 꽤 막역한 사이였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추청컨대 전 씨의 목사 안수증은 당산동 무인가 신학교에서 발급했을 확률이 높다. 전 씨가 목사 안수증을 발급받기는 했는지, 실제로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는 불투명하다.

또 전 씨가 본인이 총회장까지 지낸 대신 총회에서는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팩트체크 3 “타교단에서 편목 과정 밟은 것”

7일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예장대신(강대석 목사 측) 관계자들은 7일 전 씨의 허위 학력 의혹과 관련해 반박하면서 “당시 안양대 신대원 목회연구 과정은 목회학석사(M.Div.)와 같은 정식 학위 과정이 아닌 타교단 목사의 편입, 즉 '편목' 과정이었다”며 “그러니까 전 목사가 이 과정에 입학을 했던 건, 그가 원래 이 교단 목사가 아니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편목 과정은 두 학기로 끝난다"는 주장을 실었다. 

그러나 평화나무가 접촉한 대한신학교 출신들은 “타교단 출신이 편입하기 위해서는 1년에 2학기씩 4학기에 해당하는 목회대학원 과정을 마쳐야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측에 문의했으나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안양대 신대원 관계자는 “옛날 자료여서 자료를 찾기 어려운데다 학교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만 답한 후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신교단 목사들 사이에서는 안양대학교가 전광훈 씨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도 따져볼 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학교 4년 학부도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않은 전 씨가 어떻게 대학원 편목 과정을 마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풀어야 할 숙제다. 

결과론적으로 전 씨는 적어도 대한신학교에서 정삭적으로 공부를 마치지 않았으며, 대신총회 소속 목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49대 대신총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신교단은 총회회관 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나 실제로 총회회관을 건립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부총회장과 총회장이 당선디면 교단발전기금으로 1억씩을 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면서 한바탕 혼란을 겪기도 했다. 전광훈 씨를 총회장으로 세운 것은 교단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대신측 한 관계자는 "이것이 부끄러운 우리 교단의 민낯”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체불명의 사람이 우리 교단을 흔들어놨고, 한국을 흔들고 있다. 기사가 날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목사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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