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ㆍ정의당 등 비판 논평 "정쟁에만 골몰"
김문수, "문재인 타도 원조는 우리" 주장...막말도 경쟁하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5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사진=평화나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5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인 군중 사이로 애국가 반주가 흐르자, 지지자들이 목청을 높여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덥수룩한 머리 위로 전기 바리깡이 지날 때마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황교안”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흐느낌까지 섞여 흘렀다. 

황 대표가 16일 오후 5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예고했던 대로 삭발식을 거행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는 의미로 최근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삭발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삭발식의 첫 테이프는 이언주 의원이 끊었다. 무소속 이 의원은 지난 10일 조국 장관을 임명한 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 아니면 이럴 수 없다"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이어 박인숙 한국당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삭발식을 가진 후 닷새 만에 황 대표가 삭발식을 통해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세 번째 삭발식의 주인공이 된 황 대표는 "저는 오늘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삭발식에 임하는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날 삭발식을 감행하는 이유를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과 조국의 사법 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은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며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짓밟고 독선과 오만의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라"고 경고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는 ”마지막 통첩을 보낸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내려와서 검찰의 수사를 받으라"고 외쳤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막아내려면 국민 여러분들께서 함께 싸워주셔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또 "저 황교안, 대한민국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비장한 어조로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날 삭발식에서 사회를 맡은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오늘 잘려 나간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살아온 우리들의 마음, 그동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성실해야 성공한다'고 믿어온 우리의 믿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지지자들, 고성에 폭언 저주까지 

이날 삭발식에는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 언론사 취재진, 유튜버, 지지자들까지 몰려 일대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폴리스라인 안에 서 있는 황 대표의 삭발식을 보기 위한 자리다툼은 물론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유튜버와 지지자들의 진입이 막히자 “경찰이 취재를 막으려한다”며 고성이 오갔다. 지지자 중 누군가는 경찰을 향해 “내가 당신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저주할 것이다”라는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삭발식이 진행되는 도중, ‘문재인 타도’라는 머리띠를 두른 한 중년 남성이 “죽여라”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평화나무> 취재진이 그에게 ‘누구를 향한 말이냐’ 묻자, “문재인은 죽어야 한다”며 “나라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 의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그들 자녀들의 특혜 등 여러 비위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한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나라가 좌익으로 물들어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의 주변에서 또 다른 지지자들이 호응을 보내오자, 함께 기념사진도 열심히 찍어댔다. 

민생 뒷전, 정쟁에만 골몰 비판도

이날 삭발식이 열린 광장의 분위기와 달리,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당이 조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는 삭발식 등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면서 결국 정기국회 의사일정이 파행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부터 예정됐던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무산됐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투쟁의 이름을 붙인 삭발은 부조리에 맞서 분투하다 그 뜻을 못다 이룬 사람들이 끝내 선택하는 절박한 심정의 발로"라며, "황 대표의 삭발은 그저 정쟁을 위한, 혹은 존재감 확인을 위한 삭발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지금은 장외투쟁과 단식, 삭발로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겨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노웅래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황교안 대표의 이날 삭발식을 "쇼"라고 비판했다. 노 의원은 "정치신인의 구태정치 답습이라니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라며 "자녀의 장관상 수상과 김학의 수사 무마 의혹 등 머리카락이 아니라, 양심의 털부터 깎으라는 것이 민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원외 당 대표라지만 틈만 나면 국회 밖에서 헛발질, 도대체 민생법안은 언제 처리하나. 깎은 머리는 다시 자라도, 한번 떠난 민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썼다. 

정청래 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황 대표가 출가 목적은 아닐 테고 잠시의 일탈이겠지만, 머리 깎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겠구먼"이라며 "그럼 나경원은?"이라고 썼다.

정의당 김동균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머털도사도 아니고 제1야당 대표가 머리털로 어떤 재주를 부리려는 건지 알 길이 없다"며 "이왕 머리를 깎은 김에 입대 선언이라도 해서 이미지 탈색을 시도해봄이 어떨까"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 대변인도 논평에서 "삭발 투쟁은 조국 청문회를 맹탕 청문회로 이끈 정치적 무능력을 면피하기 위한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국회의 역할, 제1야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황 대표는 성찰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변화와 희망의 대안 정치연대' 소속 의원은 이날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황 대표가 국민적 지지를 받다가 추락하는 것도 옛날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며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데 21세기에 20세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삭발 주인공’ 다음 주자는 누구?...유행도 아니고

황 대표의 삭발식이 진행된 가운데,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삭발을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류 전 최고위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나경원 원내대표 삭발의 시간이 왔다"면서 "당신의 진정성을 보고싶다"라고 썼다. 

또 이날 황 대표의 삭발식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하면서 “사진 찍지 말고, 같이 깎아라, 지금 구경할 땐가? 결기 보이라니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류 전 최고위원이 올린 글에는 “같이 삭발해라. 머리 삭발해도 머리는 자란다”며 류 전 최고의원의 삭발을 요구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삭발식의 다음 주자로 나설 것을 예고하고 나선 이도 있다. 바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이다. 

김 전 지사는 이날 황 대표의 삭발식이 진행되기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이끄는 ‘문재인 하야’ 집회에 참석해 “저 뒤 텐트에서 황교안 대표가 머리를 깎겠다고 하는데 저도 깎을 생각”이라며 “황교안 대표가 머리를 깎는 것은 잘 하는 것이다. 나경원 대표도 와서 깎아라”라고 요구했다. 

황 대표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졌다. 김 전 지사는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삭발을 하고 문재인 퇴진 투쟁에 동참하려 하는데 환영하느냐”며 지지자들을 향해 소리치면서도 “황 대표가 온다고 해서 기자들도 많이 왔는데, 황 대표의 주장은 ‘조국은 물러가라’, ‘문재인은 조국을 해임해라’ 정도 수준이어서 우리의 주장보다 약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광훈 목사님이 98일 전에 문재인은 미친놈이다. 빨갱이다. 미친 빨갱이에게 대한민국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며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밑에서 단식 농성을 98일째 하고 있다. 이렇게 전광훈 목사가 먼저 횃불을 들고 불을 붙였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을 약속한 김 전 지사가 삭발을 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다만, 이날 삭발투쟁을 하고 있는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앞으로 찾아와 두 손을 불끈 쥐고 무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는 김 전 지사의 모습과 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의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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