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 목사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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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이번 총선은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
  • 김준수 기자
  • 승인 2020.02.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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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기도모임’ 4월 15일까지 매주 수요일 열려…정주채·이정익·김상복·이동원 목사 등 설교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 – 말씀과 순명’은 12일부터 총선이 열리는 4월 15일까지 진행된다.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 ‘말씀과 순명’은 12일부터 총선이 열리는 4월 15일까지 진행된다.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순수 기도모임’임을 표방했지만 시작부터 논란이다. 일말의 정치색, 정파성을 배제한다고 광고했음에도 그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에서 첫 설교자로 나선 홍정길 목사는 다가오는 4월 15일 총선을 두고 “체제를 선택해야 될 선거”라고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 ‘말씀과 순명’은 12일부터 선거날인 4월 1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7시에 진행되는 기도회다. 홍정길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를 시작으로 정주채 원로목사(향상교회), 이정익 원로목사(신촌성결교회), 김상복 원로목사(할렐루야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지구촌교회) 등이 설교를 전할 예정이다.

이날 홍정길 목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대하 7:14)’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홍 목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 봐도, 이번 선거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다. 좋은 사람 뽑는 선거였다. 또 친한 사람 뽑는 선거였다. 정강 정책을 보고, 어떤 정당을 선택해야 할까 하는 선거였다”며 “이번 선거는 그것을 넘어서는 한 가지 선택을 더 해야 된다. 체제를 선택해야 될 선거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취임식에서 선포했다. 그리고 3년여 지금 시간이 흘렀다.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어 “이인영 총무께서 총선 이후 정국 구상을 말하면서, 내건 정책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행했던 것들”며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나라 사회주의도 다 가 봤다. 그렇지 않나. 이 나라 경험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회주의도 경험해봤다”고 했다. 또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나라’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함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에 비유했다.

홍 목사는 “이번 (4월) 15일까지 이런 문제들을 놓고, 눈을 부릅뜨고 이 나라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체제를 통해서 계속 전달될 수 있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비춰, 어느 것이 더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에 가까운 것인지 선별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차단하고 있는 이 죄악의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이켜야 된다”고 했다.

홍 목사는 “정치하시는 분은 정치하도록 하고, 운동하시는 분은 운동 열심히 하시도록 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어지자”며 “하나님께서 곳곳의 목사님들이,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 깨어 있는 목사님들이 모여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런 은혜가 우리 속에 충만한 시발점이 되는 축복이, 이 안에 넘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고 했다.

다음은 설교 전문,

기독교인만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은 사죄의 은총입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것은 잘나고 똑똑하고 영광스러울 때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었을 때, 예수 그 이름 속에도 주께서 나를 어떻게 만나주셨는지 어느 시점인지를 그 이름 통해 말씀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니라. 죄까지 찾아서 이땅에 나를 만나주신 주님.

1965년 7월 4일 내가 너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셨다. 너는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초청 앞에 마음을 열었던 그 시간을 지금도 어제같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다 잊었어도 그 밤은 내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죄의 은총 속에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심으로 끝나지 않고, 쓸모없는 어디도 다른 사람에게 도무지 용납되지 못했던 내가 아니 나 자신도 나를 용납하지 못할 때 그분은 나를 용납해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삶을 삽니다. 내 속에 아담의 DNA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이 말에 그 유혹 앞에서 무너졌던 그 유혹은 오늘도 목회 생활하는 내게 계속 매일매일 나를 찾아와 유혹합니다. 그리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희 은사이신 박윤선 목사님이 80되시던 생일 제자들이 축하하는데, 한 마디 해달라고 그렇게 말씀했더니, 일어나셔서 말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80년 묵은 흉악한 죄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겸손하신 분이 있는가 놀랐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그 나이가 되어 보니까 그분이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흘러도 이 죄의 유혹 앞에 순간순간 넘어지는 나 아니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하는 나의 가증된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요즘 어느때보다 더 많은 시간 하나님 앞에서 하루의 일과를 모두 내려놓고 잘못들을 밝혀놓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만 이처럼 잘하지 못한가 그랬더니 사실은 기독교의 성인은 잘 나고 똑똑하고 멋진 거룩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죄악의 깊이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그러면 놀랍게 내가 죄를 짓지 않았을 때보다 더 가깝게 만나시는 하나님, 탕자가 집을 나가서 그 못된 일을 하고 과거에 똑똑하고 멋지게 잘 나가고 아버지와 기쁨의 노래를 같이 불렀던 때보다 더 뜨거운 깊은 사랑으로 만났던 때는 스스로 죽게 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떠났던 멀리 멀리에서 돌이켜 아버지 앞에 돌아옵니다.

세월이 그 모든 멋진 옷을 남루하게 만들었고, 그가 살았던 죄악이 그 얼굴에 덕지덕지 끼어서 몰골마저 변해버렸습니다. 그 유명한 부잣집 아들일까 동네로 돌아오는데 아무도 그의 옷에서 그의 몰골에서 그집 아들의 형체를 다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멀리 동구밖을 바라보는 아버지, 다른 사람은 지나가는데 아버지의 사랑의 눈은 그 남루한 옷을 뚫고 그 변해버린 얼굴을 넘어서서 벌떡 일어납니다.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그 힘찬 노인의 일어섬이 사랑이었습니다. 달려갑니다. 달려가는 그 달려감이 사랑이었습니다. 쫓아와서 목을 껴안습니다. 껴안는 그 손이 사랑입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을 피할 그 얼굴에 입을 맞춥니다. 온통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외칩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 내가 이로써 즐거워한다.

탕자는 이전의 죄를 짓지 않고 멋지게 살았던 때보다 가장 가깝게 하나님 아버지를 만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들이여, 우리가 지금 목회합니다. 목회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계속 죄를 범합니다. 죄를 떠나려고 하면 할수록, 죄의 깊이에 회오리 바람에 휘말립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또 넘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어제도 사죄의 기도를 드렸는데, 아침에도 사죄의 기도를 또 드려야 합니다. 창피해서 거듭 기도한다고 그말 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다가도 ‘네 죄를 자백하면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사죄의 은총을 잃어버린 때가 언제부터입니까. 설교들을 들어보면, 사죄의 은총이 강조 안 됩니다. 주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시고 믿기만 하라는데, 왜 그리 못 믿습니까. 믿기만 하라는데, 받기만 하라는데. 사죄의 은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그 품에 뛰어드는 놀라운 영광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들이 사죄의 은총의 깊이를 알면, 심령은 변화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현장이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그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자식을 키워보면, 여러분 이것이 말이 되냐고요. 그런데 왜 이 말에 감동을 잃고 있습니까.

사죄의 은총 없이는 하나님의 아들 주심을 내 것으로 실제 소유하지 못합니다. 이 사죄의 은총은 개인 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국가와 민족에게도 사죄의 은총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모여서 기도할 적에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 이런 놀라운 모습이 사실은 1885년 이땅에 복음이 선교사로 말미암아 시작될 때부터 계속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모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1907년입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내가 아간이라고 외쳐대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간이다. 그 이야기에 나는 간음했다고 외쳐대기 시작한 사람들, 나는 도적이었다고 외쳤던 사람들, 나는 이런이런 더러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 회개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회개의 고백이 끊어지지 않고 며칠이고 며칠이고 계속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땅에 성령을 기름 붓듯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2000년 동안 가장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성령이 감동한 거대한 평양 대부흥이었습니다.

이 부흥은 이것은 우리에게 성공과 승리를 안겨다 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1910년에 일제에게 식민지로 이땅이 귀속되어, 식민지의 고통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1919년 한국 민족 대표들이 고종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의논하는데, 분노에 찬 민족 지도자들이 무장항쟁 하자고 외쳐됐습니다. 이때 월남 이상재 선생은 '아니다. 이 싸움은 진리로 싸워야 되는 싸움이다. 진리의 싸움이 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진리의 싸움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산상수훈을 읽어주면서 비폭력 무저항을 말했습니다. 2000년 전 주께서 광야에서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선포했던 비폭력 무저항. 그것이 부분적으로 수도원에서 계속 잔존했지만, 시민운동으로 역사에 드러난 예는 3.1운동이었다고 말합니다.

일본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작년 3.1운동 100주년 때 그분들이 처음으로 우리 독립선언서를 읽고, 아니 그 시대에 이렇게 격조 높은 글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놀라더라고요. 그것이 다른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했던,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그것이 터져 나올 적에, 죽창 들고 나오자고 외쳐댔던 동학의 대표가 수긍하고 함께 비폭력 무저항으로 이리 밟히고 저리 죽는 것 같은 수난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난 속에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우리 하나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그들이 마음속에 경험했기 때문에 그 고난의 시기를 이겨냅니다.

나중에 민족 지도자들도 한 세기가 지나서 35년쯤 되니까 다시 ‘이 나라는 다시 독립할 여지가 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을 필두로 해서 최남선 선생, 그리고 제가 남서울교회 개척했을 적에 나왔던 주요한 선생도 '해방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데요. 그래서 일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때도 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그분들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 사랑하신다' 모든 사람이 도무지 가능성 없다고 생각할 적에, 사랑의 하나님을 붙잡던 그들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독립된다.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다.'

그리고 저들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많은 분들이 주기철 목사님을 필두로 해서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지만, 그 사랑 때문에 사죄의 은총의 그 축복 때문에 그 고통스러운 세월을 넉넉히 이기고 주님 앞에 개선했습니다.

그 중에 약관의 청년 손양원이 대일본제국 법정에서 일본을 준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꾸중하는 사자후는 지금도 기록에 남아서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이끕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실망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절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깨달은 하나님의 백성들, 회개를 통해 가장 가깝게 만난 사랑의 하나님. 우리 민족을 기어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뭔지 몰랐고, 어떤 분은 일본 천황의 항복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망했다고 울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거 아십니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뭐 친일 청산한다는 그 사람들 아버지들 도대체 그때 뭐했는가 물어봐야 해요. 대부분 자기 아버지를 욕합니다. 우리가 그랬던 나라입니다. 그때도 끝까지 견뎠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단의 사회주의자들.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 민족은 최초 투표했고, 그 투표에서 우리나라 국체를 결정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없애기 위해, 세계를 일순간에 3분의 2를 장악해 버린 공산세력이 힘을 모아 1950년 6월 25일 남침했습니다.

준비 없었던 그들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가서 부산에 모여서 정치 지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망명정부 세우기 위해 일본으로 가야 되나 하와이로 가야 되나 그러고 있을 적에 부산 초량교회에 목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독립된 나라로 바꿔주신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주신 것에 매몰되어 무얼 더 가질까 외쳤던 자기들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언제 이 나라가 끝나는가 그럴 적에, 이제까지 별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유엔이 모여가지고 한국의 파병을 결정하고, 세계 16개국의 젊은이들을 이땅에 보내서 이 나라를 다시 살려주는 이 나라 제2의 시작을,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씨앗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했던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그 주변에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부정투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4.19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때 대학생이었습니다. 모든 현장의 증언자이기도 합니다. 참 세월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백성이 반대하면 물러나야지. 그가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국가 실패한 사람들이,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물러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양심이 있어 민심 속에 하나님 음성을 듣고, 지팡이 들고 경무대를 나온 것이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 시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하는 것.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자매 여러분. 제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1987년 미국 메릴랜드 한 대학 캠퍼스를 빌려서 제2회 코스타를 했습니다. 한 260여명의 학생들이 유학생들이 모여가지고 말씀을 공부하고 복음을 듣고 신학적인 여러 주제들을 강의들을 들었던 그때, 박종철이 죽었다는 그리고 젊은 대학생들이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자기 몸을 불사른다는 비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하던 것을 모두 제쳐놓고 그 밤을 온통 눈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나라 살려주세요. 그리고 귀국했습니다. 학생 단체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데모 나가는 애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기도하고 자빠졌냐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곳곳에서 교회에서 믿음의 젊은 청년들이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모두 자동차를 타고 가서 빵빵 누르라니까, 시내를 질주하면서 경적을 울리자고 연락이 오면 모두 경적을 울리고, 시청 앞을 광화문을 활주했던 데모들. 오피스에서 일하던 넥타이 매고 나온 사람들도 모두 쫓아 나와서 함께 데모대에 참석했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6.29로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고 직접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을 뽑고, 그리고 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을 선출함으로, 1948년 8월 15일 시작된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실제의 시작이 됐습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기껏 된 것이 30년이 못 됩니다. 세계에서 실제로 자유 민주주의를 이렇게 통 크게 경험한 나라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십시오. 눈물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셔서 용납해 주신 주님.

우리는 이번 4월 15일날 투표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 봐도, 이번 선거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입니다.

이제까지 선거는 대부분의 경우입니다. 좋은 사람 뽑는 선거였습니다. 또 친한 사람 뽑는 선거였습니다. 정강 정책을 보고, 어떤 정당을 선택해야 할까 하는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그것을 넘어서는 한 가지 선택을 더 해야 됩니다. 체제를 선택해야 될 선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그 고통 속에 여기까지 온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취임식에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3년여 지금 시간이 흘렀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6일날 2월 6일인가요. 이인영 총무께서 총선 이후 정국 구상을 말하면서, 내건 정책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행했던 것들입니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일단의 사회주의 나라들 잘 운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나라 사회주의도 다 가 봤거든요. 그렇잖아요. 이 나라 경험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회주의도 경험해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까지 안 한 나라가 딱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토머스 모어 경이 썼던 유토피아라는 책에 기록된 이상향의 세계. 아무도 못 가봤어요. 아직.

또 하나는 조지 오웰이 1984년. 빅 브라더가 정보를 완전히 차단해서 모든 사람을 로보트처럼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회.

나는 그것이 실현 안 될 줄 알았습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같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AI가 발달되어서 안면인식 기술과 몸의 형태 인식 기술까지 있어서, 얼굴을 몰라도 몸짓을 보고 찾아낸데요.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가 될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아마 이번 15일까지 이런 문제들을 놓고, 눈을 부릅뜨고 이 나라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체제를 통해서 계속 전달될 수 있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춰, 어느 것이 더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에 가까운 것인지 선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차단하고 있는 이 죄악의 장벽이 무너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돌이켜야 됩니다.

우리 목사들부터 나의 죄를 내놓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키는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당에도 한국 키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당에게도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갈 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들아. 하나님께 돌아서자. 그 역사의 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손바닥 바꾸시듯이 역사를 마음대로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왜 그분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는 계속 불안해야 합니까? 우리는 오늘 읽었던 성경 본문을 다시 마음으로 되새길 뿐 아니라,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선포하고자 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는 여기에 서십시다.

정치하시는 분은 정치하도록 하고, 운동하시는 분은 운동 열심히 하시도록 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어집시다. 하나님께서 곳곳의 목사님들이,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 깨어 있는 목사님들이 모여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보다 앞선 일은 안 되지 않아요. 그런 은혜가 우리 속에 충만한 시발점이 되는 축복이, 이 안에 넘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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