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박찬주 열풍(?)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실 얼마 전까지 나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왜 박찬주 같은 삐리리한 사람에게 집착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폐청산의 상징적 희생자가 한 둘이 아닐 텐데 그 많은 적폐 중 왜 하필이면 박찬주가 영입 1호 대상이란 말인가?

그런데 6일자 『서울신문』 기사를 보고 의문이 풀렸다. 이 기사에는 <일각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가 같은 기독교도라서 박 전 대표를 영입하려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전광훈 목사는 한국당이 박 전 대장을 1차 영입 명단에서 제외하자 한국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 전 대장뿐 아니라 이번에 영입된 인사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 그렇구나! 마침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검찰에 오래 출입했던 한 선배는 “고건 씨나 반기문 씨처럼 공직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대선이라는 혹독한 검증 절차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황교안 씨는 다르다. 검사 시절 그는 기독교 왕국 건설에 매우 강한 소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쯤 황교안 대표는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종교적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은 포기를 모른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은 ‘신이 내린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견딘다. 신의 뜻을 참칭하는 자들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 제국주의의 처참한 역사  

종교 제국주의, 특히 기독교 제국주의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인륜에 어긋나는 온갖 짓을 하면서도 “이건 신의 뜻이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15세기~17세기 유럽 백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를 대거 침략했던 때가 있었다. 침략의 문을 연 인물은 ‘항해왕’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 1394~1460)였다. 그런데 당시 유럽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어느 곳에 유토피아에 가까운 기독교 왕국이 존재한다”는 신화를 믿었다. 왕국의 통치자는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인 ‘사제왕 요한(Presbyter Johannes)’이라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유럽인들은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바로 그 전설의 기독교 왕국일 것이라 제 멋대로 짐작했다. 

엔히크 왕자는 이 신화를 활용했다.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왕국과 연합해 아프리카에서 이교도 무리들을 무찌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의 군대 이름이 ‘그리스도 기사단’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물론 엔히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는 인도로 향하는 새 항로를 개척하고 싶었고, 아프리카의 막대한 자원을 탈취하고 싶었다. 이 침략으로 사람을 노예로 사고파는 처참한 노예무역이 활성화됐다.
이게 신의 뜻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엔히크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라며 신을 참칭했다. 나약한 민중들은 왜곡된 신의 권위에 복종했다. 

일본 제국주의도 마찬가지다. 일본 왕이 신(神)이라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왕을 신이라 믿었던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건 신의 뜻이다” 한 마디에 기꺼이 카미카제(神風)가 되어 목숨을 던졌다.  
빤스 목사 전광훈 씨의 선동은 어떤가? 냉정히 말해 하나님이 진짜로 전광훈 씨와 직접 소통하실 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 하나님은 “어쩌다가 저런 또라이를 창조해서…”라고 후회하실 것 같은데? 전광훈 씨도 자기가 신과 대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신의 뜻을 참칭한다. 신의 뜻을 두려워하는 신도들은 그에게 복종한다. “빤쓰를 내려라!”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1961년 심리학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험으로 평가받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 실시됐다.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의 작품이었다.

실험 개요는 이렇다. 일당 4.5달러를 주고 참가자 40명을 모은 뒤 이들을 교사 그룹과 학생 그룹으로 나눴다. 그런데 사실 이들 중 학생 그룹 20명은 사전에 짜고 고용된 배우들이었다. 실험팀은 학생(미리 고용한 배우들)의 몸에 전기충격 장치를 연결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전기충격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15볼트, 그 다음은 30볼트, 그 다음은 45볼트…. 이런 식으로 강도를 높인 충격 버튼은 무려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었다. 
미리 짠 배우들은 충격의 강도가 강해질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하지만 교사는 그게 연기인 줄 모른다. 과연 교사들은 몇 볼트까지 강도를 높였을까?

실험 직전 밀그램 팀은 “450볼트까지 높이는 사람은 0.1%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300볼트까지 올리는 사람도 3%에 그칠 것이다”라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실험 결과 무려 참가자의 65%가 450볼트까지 버튼을 높였다. 눈앞에서 상대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는데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그들은 450볼트 버튼을 눌렀다. 밀그램의 이 충격적 실험 결과는 1974년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발표됐다. 

물론 교사들 중 이 처참한 짓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150볼트쯤에서 “더 이상 못 하겠어요”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고, 300볼트쯤에서 “저러다 저 사람 죽는 거 아닙니까?”라며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밀그램 팀은 “안전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책임집니다. 계속 버튼을 누르세요”라며 이들의 악행을 독려했다. 
예일 대학교 실험팀이라는 권위, 실험팀이 책임진다는 말에 대한 신뢰, 나에게 4.5달러의 일당을 주는 고용주에 대한 복종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교사의 65%가 눈앞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450볼트의 충격을 가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복종의 무서운 점이다. 이 실험이 남긴 충격적인 결론은, 악마란 선천적인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권위에 복종하기 시작하면 “사람을 죽여라”는 부당한 명령에도 살인을 저지른다.
고작 예일 대학교라는 권위에, 4.5달러를 일당으로 주는 고용주의 권위에도 사람은 타인을 죽인다. 그런데 누군가가 만약 신의 권위를 참칭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나? 젊은이들이 신의 바람(新風)을 자처하면서 전투기에 몸을 싣고 기꺼이 자살 특공대가 된다. 동방박사 후손과 연대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유럽 백인들은 아프리카 민중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에 가담한다. “빤스를 내려라!”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악몽의 전초전일 뿐이다. 진정한 호러 영화는 아직 개봉하지도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진심으로 기독교 왕국 건설에 확신이 있고, 그가 진심으로 대통령이 되려 한다면, 지금부터 한국 사회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마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이성의 시대가 열린지 300년이 지났다. 신의 권위를 참칭하는 자들이 인류를 죽음과 증오의 늪으로 빠뜨리는 참혹한 일을 막아야 한다. 그 일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것은 더더욱 막아야 한다.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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