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민동기 고발뉴스 기자

“가급적 출입처를 많이 벗어나서 기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취재를 하자. 그래서 지금 현재 균질화된 뉴스를 바꿔보자. 특히 KBS는 수신료를 받고 있지 않나. KBS 뉴스나 다른 뉴스가 고만고만한 비슷한 뉴스를 하게 되면 왜 KBS는 그 돈을 받아가면서 똑같은 역할을 하느냐. 이런 질문이 실제로 있다. 그래서 다른 차별화된 뉴스를 하기 위해서 출입처 구조를 바꿔보자고 하는 것이다.”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국장이 KBS <더 라이브>에 출연해 한 말이다. KBS가 출입처 위주 시스템에 변화를 주겠다고 밝힌 이후 많은 언론이 ‘출입처 폐지’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다르다. 왜 ‘출입처 폐지’를 들고 나왔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엄경철 국장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출입처 제도는 수단이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없애건 없애지 않건, 지금 출입처 제도가 있어서 좋은 뉴스를 생산하면 누가 문제 삼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여러 가지 지적들이 많이 있다. 목적은 차별화된 뉴스다.” 

현재 ‘출입처 위주 취재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대한 주류 언론,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들의 반응은 외면과 침묵이었다. 대안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현실을 모르는 외부의 이상적인 비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필자 역시 미디어오늘 기자로 있을 때 출입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변화를 주문하는 기사를 여러 번 썼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의 벽은 굳건했다. 정권이 교체되고 한국 사회에서 개혁 열풍이 불 때도 언론과 기자들은 변화의 무풍지대였다. 필자는 그 중심에 ‘출입처 중심의 취재시스템’이 있다고 본다. 

최근 KBS의 변화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 강고한 벽에 드디어 균열이 가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변화의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필자는 뉴스수용자들의 ‘직접 행동’에 있다고 본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비판과 지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시민단체와 언론비평지들 중심으로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변화된 미디어 환경과 ‘1인 미디어’ 등장, 무엇보다 뉴스수용자들의 적극적인 뉴스 소비행태는 최근 주류 언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통상 뉴스 시청률이나 매체 신뢰도에 변화가 생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한번 고정된 채널’과 ‘신뢰하는 매체’에 대해선 시청자들이 어지간해선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뉴스수용자들은 잘못된 보도는 물론 취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시청자와 독자들은 보도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과정에서도 투명성과 진실성을 요구하고 있다. KBS의 ‘김경록 PB 인터뷰 논란’과 ‘독도 영상파문’은 과거의 관행에서 레거시 미디어들이 탈피하지 않으면 뉴스수용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엄경철 국장의 ‘출입처 취재시스템 변화’를 이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고 본다. ‘과거의 영광’과 KBS라는 울타리에 안주해선 신뢰도는 물론 존재 자체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얘기다. 

엄경철 국장도 지적했지만 비슷비슷한 뉴스를 쏟아내는 균질화 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비롯해 출입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취재시스템을 혁신하지 않고선 ‘관행으로부터의 탈피’는 어렵다. 더구나 최근 발표된 신뢰도 지표는 현재 KBS 위기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시사IN 언론 신뢰도 조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4%로 불신매체 4위를 기록했던 KBS는 이번 조사에서 15.4%로 2위를 기록하며 부정평가가 더 높아졌다. KBS는 지난 8월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기자협회 조사에서도 전년 대비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에도 KBS 신뢰도는 오히려 후퇴하는 조짐을 보였다. 

이런 신뢰도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 뭘까.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필자는 의외로 간단하다고 본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뉴스수용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뉴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다. 힘 있는 정부기관과 해당 관계자들을 주로 상대하는 ‘출입처’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과 다른방식’으로 ‘새로운 뉴스’를 선보이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시도를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뉴스수용자들은 제도권 언론에게 가시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레거시 미디어들은 그 요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언론인들이 뉴스수용자를 ‘선도하는’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변화의 무풍지대였던 KBS가 ‘출입처 위주 시스템’ 변화를 먼저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 언론인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YTN의 움직임은 우려할 만하다. YTN은 지난 22일 노종면 신임 보도국장에 대해 임명동의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찬성 49.28%, 반대 50.72%. 구성원들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노종면 보도국장안’은 부결됐다. 찬반 투표수 차이는 5표였다. 

정찬형 YTN사장은 지난 25일 사내게시판에 “사장으로서 보도국장 임명 동의 결과에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했다. “결과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런 결과가 사람에 대한 것인지, 혁신에 관한 것인지, 혁신안에 대한 문제 제기인지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고도 밝혔다. 

‘노종면 보도국장 부결’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노종면 기자가 부결 이후 입장을 밝힌 것처럼 반대 의사를 표명한 176표를 “‘혁신 거부’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지적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YTN 구성원들 개개인이 나름 고민을 통해 이 같은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결과’에 대한 뉴스수용자들의 시선과 평가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실제를 가공하는 내외부 시선에 동요할 이유는 없다”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싸운 우리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 한계와 가능성을 공유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싸운 우리가, ‘다시’ 우리 문제를, ‘우리’ 힘으로 극복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YTN지부 입장은 존중하지만, 필자는 이 같은 ‘상황 판단’이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YTN지부가 언급한 ‘실제를 가공하는 내외부 시선’이 다름 아닌 뉴스수용자를 지칭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종면 보도국장=YTN혁신’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부의 시선’인 뉴스수용자들이 보기엔 지금 YTN은 ‘출입처 폐지에 반대하는’ 기득권 언론, 40대 중심의 보도국 세대교체에 부정적인 레거시 미디어라는 이미지가 더 강화됐다는 점이다. 

YTN이 어떤 언론사로 거듭날 것인가. 이를 선택하는 건 구성원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건 YTN에 대해 최소한의 기대를 하고 있는 뉴스수용자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함께 싸운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YTN지부 입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뉴스수용자들을 어떻게 YTN 혁신과 비전에 ‘동반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대목은 아쉽다. 아니 솔직히 염려된다.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국장은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입처 시스템’에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KBS 제작가이드라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시청자의 신뢰는 한번 훼손되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는 점을 제작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또한 시청자의 신뢰는 KBS 프로그램이 정확성, 공정성, 진실성을 추구하고 실현할 때 쌓이는 것들이다.” 

뉴스수용자, 다른 말로 하면 시청자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빨리 훼손되는 반면 회복되는 것은 매우 늦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무슨 얘기냐? 지금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KBS는 그 중심에 ‘외부 시선’인 시청자를 놓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YTN은 어떤가? 뉴스수용자들을 중심에 놓고 YTN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YTN 구성원들의 몫이다. 

민동기 고발뉴스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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