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단식을 시작한지 장장 8일(응?)만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글을 쓰는 시점(28일) 기준으로 황 대표가 단식을 이어갈지 중단할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명분도, 절박함도 없었던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은 역대급 해프닝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언론에 공개된 자유한국당의 ‘단식 투쟁 천막 근무자 배정표’ 이야기다. 이 일정표에 따르면 11월 20일~28일 당 소속 직원들이 매일 12시간씩 4명이 한 조를 이뤄 주간과 야간에 2교대 보초를 서도록 돼 있었다. 매일 12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할 당직자 이름과 일해야 할 시간이 기록됐는데 이들 중에는 임산부 세 명도 포함됐다. 표 하단에는 굵은 글씨로 ‘당 대표님 지시사항임’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혔다. 

이들은 매 30분마다 황 대표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황 대표가 잠이 들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변 소음을 제어해야 했다. 황 대표가 일어날 시간인 새벽 3시30분쯤에는 근무를 한층 강화했다. 자유당 측은 “배정표와 수칙에 맞게 일을 하지 않는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위협도 날렸다고 한다.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황교안

이 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황 대표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면 매 30분마다 자기 건강을 체크하고, 얼마나 불안하면 새벽에 일어날 때 누군가가 꼭 옆에서 수발을 들어야 할까? 평생 의전을 옆에 끼고 살았던 황 대표는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지 않으면 극도로 불안하다. 근무표에 ‘당 대표님 지시사항임’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는 이유다. 

돌봄 노동이 제공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끼는 심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다. 누구나 조금씩 그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은 동물의 움직임과는 다르다. 노동의 종류가 동물의 움직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동물의 움직임은 본능이지만, 인간의 노동은 더 나은 삶을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은 배변 뒤 기껏해야 흙을 덮는 것으로 마무리하지만, 인간은 변기를 만들고, 하수관을 설치하고, 휴지를 제작하고, 물을 내리는 시스템을 고안한다. 배설에도 수많은 노동을 사용하는 복잡하고 고도화된 동물이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인간은 분업 시스템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이 대신 그 일을 해주고 피차의 노동을 교환한다. 예를 들어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주로 하지만, 밥은 주로 식당에서 먹고, 이동은 주로 남이 운전해주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인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분업

문제는 분업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바람에 인간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대부분의 노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나만 해도 누군가가 배설물이 쌓인 우리집 정화조를 정기적으로 치워준다는 사실을 20대가 돼서야 알았다. 

별 생각 없이 누군가가 지어준 집에서 살다보니 집을 짓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몰랐다. 매년 건설 현장에서 수 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안 것도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오는 일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급식에 하루 200인 분의 밥을 지어야 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묻어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생존에 필요한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면 이처럼 사람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이는 비주류 경제학자와 주류 경제학자 모두 동의하는 대목이다. 비주류 경제학의 거두(巨頭)인 칼 마르크스는 분업으로 인해 인간의 완성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현상을 ‘인간소외’라고 불렀다.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다. 스미스는 저서 『국부론』에 이런 말을 남겼다. 

“분업을 하면 노동으로 생활하는 국민 대부분의 직업이 매우 단순한 작업에 한정된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그런 노력의 습관을 잃어버리고, 인간으로서 최대한 어리석고 무식해진다. 정신의 활력을 잃음으로써 너그러움, 고귀함, 또는 부드러운 감정도 가질 수 없고, 사생활의 일반적인 의무에 대해 아무것도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교육받은 일 외에는 어떤 일에도 정신적으로 참을성 있게 자신의 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황교안 대표의 불안의 본질

실로 신통한 예언이다. 무려 200년 전 스미스는 황교안 대표의 불안을 정확히 꿰뚫었다. 분업화된 사회에서 다른 노동의 습관을 잃어버린 자, 그는 최대한 어리석고 무식해진다. “사생활의 일반적인 의무에 대해 아무것도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불안한 것이다. 옆에서 의전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화장실도 제대로 못 찾아갈 사람이 돼버렸다.

“교육받은 일 외에는 어떤 일에도 정신적으로 참을성 있게 자신의 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돼서 황 대표는 사법고시 공부 외에 다른 어떤 일에도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30분마다 누군가 자기의 건강을 체크해주지 않으면 불안과 걱정으로 인내력이 고갈된다. 

어떻게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상대의 노동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 그 일을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물건을 배달해주면 그것에 감사하고, 누군가가 나를 병실에서 돌봐주면 그것에 고마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인간적 완성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반면 돌봄 노동을 ‘돈만 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은 황교안 대표처럼 누가 옆에서 자신을 돌봐주지 않으면 30분마다 불안해진다.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무인도에 떨어지면 굶어죽는 게 아니라 불안해서 죽는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정치를 하면 절대 안 된다. 정치는 분업화된 한 가지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라 수백 만 가지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민중들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30분마다 돌봐주지 않으면 8일짜리 단식도 못 견디는 사람이, 자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임산부 노동자를 12시간 야간 노동으로 내모는 사람이, 어떻게 수백 만 가지 노동을 이해한다는 말인가? 

부디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완성도가 좀 더 높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돌봄 노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황교안 대표님, 지금 대표님 이야기 하는 중입니다. 딴 데 보지 말고 집중하세요!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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