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교회'에 그 원인이 있다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용민 시사평론가


십수년 전, 전북 한 소도시에 공직선거 후보자로 나선 A 씨. 선거를 며칠 앞두고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모 대형유통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여성에 기겁했다. 이 여성은 자신과 A 씨가 내연 관계였다며 ‘불륜’을 주장했다. A 씨는 그 여성과 일면식이 없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은 선거와 함께 사라졌다. A 씨는 억울하게 낙선했지만. 선거운동 당시 수사기관에 고발한들 선거 전에 진실을 소명할 수 있었을까? 가짜뉴스의 위력을 설명할 때마다 드는 예이다. 

물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경우는 달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배우 B 씨가 자신과 불륜관계였다고 얼굴을 드러내고 폭로했다. 그러나 B 씨가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묘사하면서, 이것이 허위 주장의 근거가 됐다. 즉, 그 묘사는 거짓이었다. 기실 ‘불륜관계임’을 주장하는 것은 B 씨의 발설만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 지사가 ‘불륜관계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심히 어려웠다. 하늘이 이 지사를 도왔던 것이다.  

가짜뉴스를 무색무취한 생화학 물질로 비유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설득이 되고 그 극악한 마타도어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 모든 이성은 도륙난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처음에는 의심하게 하지만, 두 번 세 번 똑같은 맥락과 똑같은 지향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면 설득’되는 게 허위정보이다. 이는 1월 8일 KBS1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해 대학교수, 목사 등 보수 성향 개신교인들과 토론할 때도 절감했던 바다. 보수 패널들은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김정은 체제의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자기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걸고 나온 사람들이 이런 근거 없는 루머를 떠들어댄 것이다. 이는 그들 인식의 반경에 ‘카톡발(發) 뜬소문’이 포위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일반 교인은 오죽할까 상상해보자. 카톡으로 가짜뉴스가 도착한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괘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발신인이 평소 존경하고 관계가 돈독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교우이다. 이들로부터 ‘기도 제목’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전송되는 정보에 대해서도 홀대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메시지에는 ‘우리 그룹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같은 정치지향을 가져야 한다’라는 압박도 내재했다. 교회에 더이상 안 다닐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문자를 보낸 상대에게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따져 묻기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국가미래연구원이 발행하는 온라인매체 ‘ifs POST’의 박상기 대기자는 여러 연구결과를 토대로 “상대적으로 더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덜 미신(迷信)적이고, 음모(陰謀)성 정보를 덜 받아들이고, 듣기에는 심오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공허한 주장들을 덜 수용”한다고 했다. 최신정보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팩트체크 매체가 출현하고 있지만, ‘진실 검증’만으로 온전한 가짜뉴스 퇴치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의 주의 주장도 의심할 줄 아는 ‘질문’의 문화가 시급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후죽순 격 개신교 발 가짜뉴스에서 ‘질문 없는 신앙’을 점검할 지점은 없을까?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가 미치는 진정한 나쁜 영향 중 하나는 몰이해에 만족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왜 기독교에서는 질문이 불온시 되는 것일까?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2005년 대구에서 했던 설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감증명서를 끊어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똥”이라는 발언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 유명한 ‘빤스 발언’도 나왔다. 그렇다. 목사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강요하는 문화에 뿌리가 있다.

그런데 뿌리의 출발점은 전광훈이 아니다. 이 나라에 기독교를 이식(移植)한 미국의 보수적 장로교회라 하겠다. 거센 이성의 도전 앞에 19세기 교회는 근본주의 신학과 종말론 신앙으로 중무장했다. 끝 모를 보수화의 길을 달렸다. 그 길로 항만 태평양 횡단 배에 오른 ‘벽안의 전도자들’은 한국 땅에 도달해 교회를 세우고 조선인을 전도해 세력을 확장해갔다. 한국 개신교가 다른 나라에 비해 극도로 보수화된 이유는 또 있다. 분단으로 남북 대치 상황이 심화하는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상실한 서북지역 교인 약 40%가 월남해 친미 반공주의 교회를 고착화했다. 제주 4.3 학살은 상당수 그들의 소행이었다. 

1960년대 교회의 부흥과 번영은 당시 군사정권의 압축성장의 기치와 맥을 같이 했다. 싸구려  기복신앙으로 현실에 순치된 안정적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교회는 일그러진 시대에 봉사했다. 그러한 교회에 대해 권력은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즉 교회는 당대 권력과 더없이 견실한 파트너십을 꾸렸다. 그러다가 1980년대가 들어선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시대의 대의가 되고, 각성한 시민계급이 대두된다. 낡은 지도력, 낡은 가치를 앞세운 교회는 저항을 받았다.  하지만 함부로 '공산주의 추종자'로 몰며 대화의 기회를 박찼다.

교회의 방어적 태세는 ‘맹종’의 강요로 치환 됐다. 제왕적 목사 리더십은 세습, 횡령, 성추행, 막말 및 가짜뉴스 유포 등으로 비화됐다. 마침내 교회에 대한 기성 언론의 비판이 이어졌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합리적 비판적 신자 대중의 이반은 가속화됐다. 이로써 교회에서는 무조건적 “아멘” 외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여기까지 질문이 사라진 교회, 그 암울한 배경사이다. 세습으로 물의를 빚은 한 대형교회 이야기이다. 지배자나 다름없는 원로목사는 교회에서 교인들이 모여 성경공부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 교회에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기보다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취지일 것이다. 정말 큰 교회는 바보 교인만 필요로 한다. 

‘질문 있는 교회’란 비단 교회 운영에서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성서와 성서 밖 여러 교양을 거침없이 습득하고, 목사는 물론 자신에게 줄기차게 묻는 것이다. 토론과 설득이 있는 교회인데 가짜뉴스를 주고받으며 거짓에 지배당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교회개혁은 ‘질문하는 교회’와 동전의 이면이다. 

김용민 정치평론가/평화나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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